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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입은 신사가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데 ~ 왜 맞을까 왜 맞을까 원인은 한 가지 돈이 없어 ~ 들어갈 땐 폼을 내어 들어가더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 매다가 ~ 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 매를 맞누나 매를 맞누나 ~ ”
한복남의 히트송 <빈대떡 신사>다. 한복남(韓福男)은 1919년 평안남도 안주 출신으로 본명은 한영순이다. 현인과 남인수, 백년설 등과 함께 한국 가요의 초창기를 이끈 견인차로 평가받고 있다. 1943년에 ‘빈대떡 신사’로 데뷔했고 6.25 한국전쟁 이후엔 도미도 레코드사를 창립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작곡을 하기 시작하였다. 황정자의 <처녀 뱃사공>과 <오동동 타령>, 김정구의 <코리안 맘보>에 이어 송민도의 <나의 탱고>는 물론이요 김정애의 <앵두나무 처녀>에 더하여 손인호의 <한 많은 대동강>과 허민의 <백마강> 등 불후의 명곡을 양산했다.
<빈대떡 신사>가 마음에 콕 다가오는 건 비단 내가 빈대떡을 즐기는 서민이어서가 아니라 노래 가사의 내용이 자못 해학적이어서 웃음까지 동반하는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근사하게 양복까지 차려 입은 신사가 하지만 요릿집 문 앞에서 매를 맞는 건 오로지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그 얼마나 현실적인가!
예나 지금이나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을 하지 못 한다. 사람을 만나서 밥이든 술을 먹더라도 내가 돈을 내는 게 훨씬 낫다. 가난은 빈곤(貧困)이라는 슬픔에 갇혀 친화력마저 소극적으로 묶이게 만드는 단초로 작용한다.
그렇긴 하지만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가 “돈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하라”는 글을 올려 국민적 지탄과 원성까지 자초한 걸 보자면 돈에 관한 관념의 차이를 어찌 갖느냐 역시 인성(人性) 이상의 가치를 점유한다 하겠다.
빈대떡은 전(煎)의 하나로서 녹두를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긴 후 맷돌에 갈아 나물, 쇠고기나 돼지고기 따위를 넣고 프라이팬 따위에 부쳐 만드는 음식이다. ‘부침개’로도 불리는 빈대떡은 비나 눈이 오는 날에 술과 함께 먹으면 더 감칠맛이 난다.
한데 빈대떡은 재료와 손이 많이 간다. 따라서 이와 아류의 음식으로 쉬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게 계란프라이다. 그러나 작금 계란이 아니라 한 판에 무려 1만 원이 훌쩍 넘는 ‘금란(金卵)’이 되면서 우리 같은 서민들은 계란마저 먹을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게 되었다.
어제 들른 단골식당에서 계란찜이 사라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데 이 같은 처참한 현실이 도래한 것은 사실 예견된 것이었다. ‘최순실 게이트’에서 기인한 무능한 대통령의 한계와 이에 부화뇌동(?)한 정부의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여파의 무기력한 대응으로 인해 전국의 양계농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에 빠진 형국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행은 이제라도 서둘러 봉합에 나서야 한다. 설상가상 이틈을 타고 라면과 주류 등까지 값이 오르는 바람에 시중에선 남편의 월급과 아이의 성적만 빼곤 다 오르는 세상이라는 푸념이 원성의 봇물을 이루고 있다.
계란은 프라이 말고 쪄먹어도 맛있다. 더욱이 나처럼 야근이 잦은 경비원의 입장에서 찐 계란은 야식으로 여간 든든한 게 아니다. 하지만 계란이 아니라 ‘금란’이 되었으니, 더욱이 대부분의 마트에선 이마저도 구경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보자면 과연 현 정부는 국민과 농가(양계 등의)를 위해 무얼 하는가를 새삼 묻지 않을 수 없다. 계란조차 마음대로 사먹을 수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 값비싼 요릿집의 출입은 그야말로 화중지병(畵中之餠)이다.
<빈대떡 신사> 노래처럼 ‘아버지가 모아둔’ 재산은커녕 먹고 죽을 약값마저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정이나 빈대떡이라도 먹고자 한다면 아내를 조르거나, 자신이 손수 집에서 밀가루에 신김치나 썰어서 얹은 빈대떡이나 부쳐서 먹고 볼 일이다.
돈 한 푼 없는 건달이 언감생심 요릿집이 무어냐? 맞아도 싸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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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