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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에 실린 사과문 |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를 마라 ~ 이리저리 살았을 거라 착각도 마라 ~ 그래 한 때 삶의 무게 견디지 못해 긴긴 세월 방황 속에 청춘을 묻었다 ~ 어허허 어허허 속절없는 세월 탓해서 무얼해 ~ 되돌릴 수 없는 인생인 것을 ~ 지금부터 뛰어 앞만 보고 뛰어~ 내 인생의 태클을 걸지 마 ~” 진성의 히트곡 <태클을 걸지 마>이다.
지난 주 아침에 배달된 종이신문에 모 그룹의 사과문이 게재되었다. 내용인즉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 거액의 임금을 체불한 사실이 드러난 부분에 대한 사과였다. 순간 ‘벼룩의 간을 빼먹지!’라는 분개심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국민적 공분의 대상으로까지 떠오른 이 그룹에선 무려 4만여 명의 아르바이트(학생 포함) 노동자에게 83억 7200만 원이나 되는 임금을 체불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정부 조사로 밝혀지면서 소비자들의 비난이 커지자 그처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지 싶었다.
주지하듯 지금은 오너리스크(owner risk)가 상당한 폭발력을 지닌 즈음이다. 따라서 기업이 무언가 현저하게 잘못한 부분이 드러나면 소비자들은 곧바로 ‘불매운동’이란 반동의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다.
아들이 대학에 합격한 뒤 알바를 시작했다. 필자의 글 중 제15화 <남자라 울지 못 했다>에서도 밝혔듯 아들은 힘든 택배를 야간에 했다. 그러나 정작 임금을 받을 당시엔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면서 이틀치나 빼먹고 지급하였다. 이에 분개하는 아들을 보며 기성세대로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아들의 만류로 쫓아가서 따질 분풀이를 겨우 참았으나 한동안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다.
직장의 건물 1층엔 커피숍이 있는데 종업원은 알바 학생들이다. 알바는 시간 단위의 시급을 받는 입장이다. 여기에 공부까지 하자면 여간 힘들고 고달픈 게 아니다. 더욱이 소위 ‘진상손님들’에 의한 스트레스까지 받자면 알바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셈법이 쉬 도출된다.
따라서 비단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이 아닐지라도 내 아들과 딸이란 생각만 한다손 쳐도 어찌 감히 시급까지를 빼먹을 수 있단 말인가? 현재 대기업의 대리인 아들은 올해 과장으로 승진 예정이다.
알바를 하던 시절 고생을 많이 한 까닭인지 하여간 누구에게나 사면춘풍(四面春風)의 인품까지 소문이 짜한 아들이다. 알바생이 고생을 하면서 일하지만 그들도 집에 돌아가면 그 집안의 소중한 아들이자 딸이다.
진적위산(塵積爲山)이란 티끌이 쌓여 산이 된다는 뜻을 지닌 ‘작은 것도 쌓이면 큰 것이 됨’의 비유이다. 알바생들의 시급마저 떼먹은 기업은 정말이지 기업도 아니다. 이러한 기업은 국민적 지탄과 불매운동이란 또 다른 진적위산(塵積爲山)의 자초까지를 부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태클(tackle)은 축구에서, 상대편이 가지고 있는 공을 기습적으로 빼앗거나 그런 기술을 뜻한다. 또한 럭비와 미식축구 등에서 공을 가진 공격수를 저지하기 위하여 수비수가 공격수의 아랫도리를 잡아 쓰러뜨리거나 공을 뺏음까지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를 배려와 존중의 정상적 사회생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여간 비겁한 추태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지난(至難)한 과정과 혹독한 시절을 경험하며 잡초처럼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지난날은 어떻게 살았냐고 묻지 말라는 말은 온당한 것이다. 또한 한 때 고단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일정 기간 방황을 했다손 쳐도 이 역시 시빗거리로 삼아선 안 된다. 중요한 건 지금이며 현재다.
풍요의 내일을 향해 앞만 보고 열심히 뛰는 사람들, 특히나 고단한 알바(생)들의 임금마저 떼먹는 후안무치는 그 사람 인생의 앞을 막는 ‘태클’로 간주될 뿐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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