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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구독하는 신문은 아침 일찍 도착한다. 그 신문에서 작년 말 모 기자가 쓴 ‘이러려고 서울대를?’이란 기사를 유심히 읽었다. 기사의 골자는 이랬다.
기자 자신 역시도 ‘한국에서 제일 간판 값을 쳐준다는’ 서울대학교의 문을 나선 지 5년 남짓 됐지만 대학 간판의 위력은 벌써 50년치를 체감한 기분이라고 했다. 기자가 된 덕분에 '최순실 청문회'를 남들보다 반 발자국 가까이서 지켜봤단다.
그렇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보면서 커다란 실망감을 느꼈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기를 쓰고 공부한 덕분에 서울대를 나오긴 했으나 “공부 잘한 게 다 무슨 소용인가를 다시 묻게 했다”고도 밝혔다.
그러면서 기자는 “학벌? 그거 다 헛 거다.”라며 마무리를 지었다. 이 기사의 나흘 뒤엔 같은 신문에서 <서울대 ‘부끄러운 동문상’ 1위 우병우>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 기사의 내용 역시 “오죽하면 (우리)나라의 큰 도둑은 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말이 있겠느냐”는 서울대 졸업생의 인터뷰 내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딸 역시 서울대 출신이다. 그러나 늘 그렇게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효심 또한 심청의 뺨을 칠 정도로 곱고 착하다. 반면 나는 중학교조차 진학하지 못한 무지렁이다. 때문에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불학의 고통에 몸부림쳤다.
‘우리 아이들도 더 자라면 결혼을 할 텐테…. 또한 손자손녀까지 볼 것인데 그 녀석들이 할아버지는 학교를 어디까지 나왔냐고 물었을 때 나는 과연 어찌 대답할 것인가….’ 깊은 고심 끝에 20년 이상 지속해온 나름의 독학과 독서에 더하여 3년 과정의 사이버대학에 입학했다.
지천명을 넘긴 소위 ‘꼰대’의 주경야독 힘든 과정이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 했다. 덕분에 졸업식 날엔 학업우수상까지 수상했다. 비록 서울대에 비하자면 조족지혈의 졸업장이자 학력이었지만 나로선 서울대 못지않은 자부심까지를 흠뻑 안겨준 영광의 모두였다.
여세를 몰아 수필가로 등단했으며 지난 2015년 12월엔 생애 첫 저서까지 발간했다. 기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수의 월간 언론사에서는 내게 취재본부장 자리를 주었다. 지역의 또 다른 시사월간지 회사에선 객원 논설위원까지 하고 있다.
한데 이 모든 게 실은 ‘내 일을 사랑하는 용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본업이 경비원이다. 하지만 최저생활비도 안 되는 저 급여인 까닭에 투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글은 좀 쓸 줄 아는 재주가 있어 술값 이상은 매달 벌 수 있다.
박봉의 경비원이라도 3년 뒤엔 나도 ‘정년퇴직’이란 함정에 걸리게 된다. 따라서 그 전에 안정된 직장을 구해두는 게 관건이다. 지금이야 ‘객원’ 논설위원의 신분이지만 그 객원을 뗀 ‘정식’ 논설위원이 되는 게 나의 바람이자 꿈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아니 필시 초졸 학력 출신의 언론사 논설위원이란 첫 기록까지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첫(始)은 세상의 수많은 단어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그 길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충분히 상상 이상의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고까짓 것 사랑 때문에 ~ 빗속을 거닐며 추억일랑 씻어버리고 한잔 술로 잊어버려요 ~ 어차피 인생이란 이별이 아니더냐 ~ 울지 마 울긴 왜 울어 바보처럼 울긴 왜 울어 ~ ” 나훈아의 노래 <울긴 왜 울어>의 1절 가사이다.
너무나 하고팠던 게 바로 공부였다. 현실은 그러나 너무나 냉갈령하고 비참했다. 때문에 중학교는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 했다. 그렇지만 “학벌? 그거 다 헛 거다.”라고 했던 모 기자의 냉소처럼 번드르르한 학력보다는 실력을 내공으로 길렀다.
남자가 울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더군다나 이순이 가까운 중늙은이가 운다손 치면 더 궁상맞다. 학력보다 실력이 중시되는 사회가 정립되길 소망한다. ]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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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