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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 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세상이 싫던가요 벼슬도 버리고 기다리는 사람 없는 이 거리 저 마을로~ 손을 젓는 집집마다 소문을 놓고 푸대접에 껄껄대며 떠나가는 김삿갓~”
원로가수 명국환의 <방랑시인 김삿갓>이다. 이 노래를 듣자면 김삿갓의 풍찬노숙(風餐露宿)까지 떠올라 마음이 짠해진다. ‘방랑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삿갓의 본래 이름은 김병연(金炳淵)이다.
신동이 났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머리가 좋고 글재주가 뛰어나 향시에 나가 급제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과 처자까지 버리고 방방곡곡을 떠돌며 해학과 풍자의 시를 읊었다.
그의 별칭이 ‘삿갓’으로 불린 까닭은, 그가 평소 ‘삿갓 립(笠)’이란 뜻의 김립(金笠)이라는 가명을 쓴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죽장(대지팡이)에 삿갓을 쓰고 조선시대의 산수를 넘나들며 해학과 풍자로 한세상을 떠돌았기에 그리 회자되지 싶다.
김병연은 명문 안동 김 씨의 일가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익순이 높은 벼슬을 지내 남부럽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병연이 다섯 살 때(순조 11년, 1811) 평안도 일대에서 홍경래가 주도한 농민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선천에서 부사를 지내던 김익순은 농민군에 항복하여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러다가 농민군이 관군에게 쫓길 때에는 농민군의 참모인 김창시의 목을 1천 냥에 사서 조정에 바쳐 공을 위장하였다.
그러한 이중 인격의 행위가 드러나자 김익순은 참형을 당하였고, 비열한 인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김삿갓의 어머니는 집안 내력을 철저히 숨기고 병연에게 공부를 시켰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병연은 열심히 공부하여 입신양명을 위해 과거를 준비했다.
결국 향시에 나가 장원을 하였으나 자신이 그토록 의기에 차서 비방하였던 김익순이 자신의 친할아버지임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자책과 번민에 빠져든 그는 고행에 가까운 방랑을 시작하였다.
설 연휴를 앞두고 만날 회사로 택배를 가지고 오는 택배회사 직원이 안내데스크로 왔다. 야근을 하고자 교대를 마친 오후 7시 무렵이었기에 밖은 진즉 어둠이 점령하고 있었다. “로비가 어두워서 택배의 송장(送狀)이 안 보여 부득이 이리 왔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잘 보이게끔 별도의 등을 하나 더 밝혀주었다. 한데 그 직원이 든 송장은 자그마치 한아름의 분량이나 되었다. 궁금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기에 물었다. “그게 모두 몇 개입니까?” “육백 개요.” 순간 나도 모르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600개요? 그걸 하루에 어찌 다 배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자정까지 일한다손 쳐도 당연히 못하죠. 좌우간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배달해보고 안 되는 건 내일로 미루는 수밖에는 요.”
그 직원의 ‘택배 600개의 애로(隘路)’ 사항을 듣자니 새삼 택배회사 직원들의 힘겨움과 아울러 그렇다면 이는 마치 방랑시인 김삿갓의 그것처럼 어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의 지독한 고행이 아닐까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에 쫓기다보니 제때 식사를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며 그래서 위장병 등의 병까지를 줄줄이 달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물론 하루에 600개나 되는 엄청난 물량의 배당은 ‘설 특수’라는 일시적 현상이긴 할 터이다.
그렇더라도 택배의 시장 환경 상 빠른 배송은 비단 택배회사의 직원 뿐 아니라 고객(손님)의 입장에서도 응당 빨리 받고픈 건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김장철의 김치 같은 상품은 그야말로 시간과의 싸움이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택배시장은 ‘로켓배송’이란 광고에서도 볼 수 있듯 시간의 단축이 화두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 가뜩이나 시간에 쫓기는 택배회사 직원의 입장에선 더더욱 죽을 맛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요즘은 택배가 도착하기 전 안내문자가 온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답신을 하는 고객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니 참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택배회사 직원들은 이 춥고 어려운 시절에도 변함없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형 아파트의 경우엔 6층까지 상품을 들고 뛰어 올라가야 한다.
이 같은 어려움을 모르는 고객은 없으리라. 그래서 하는 말인데 택배가 도착하기 전에 오는 안내 문자엔 담당 직원의 휴대전화번호도 함께 뜬다. 이러한 경우, “날도 추운데 수고 많으십니다.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을 테니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오십시오.”라는 훈훈한 답신을 보내는 건 어떨까.
택배를 받으면서 뜨거운 음료라도 건넨다면 서로가 기분 좋은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김삿갓은 조상을 욕보인 죄로 유리걸식(流離乞食)의 고생을 사서 했다. 그렇지만 택배 회사 직원들은 오로지(!) 처자식과 먹고살려고 그 힘든 택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삿갓은 기껏 술 한 잔만으로도 허허~ 웃으며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를 떠돌았을지 몰라도 택배 직원들은 근무 중에 술 한 잔조차 마실 수 없다. ‘로켓배송’보다는 ‘안전배송’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가 되길 바란다. 뭐든지 서두르면 탈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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