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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의 졸업식이 다가왔다. 하지만 학교보다 생업이 급했던 나는 그날도 학교에 갈 수 없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역전에 나가서 구두를 닦았다. 엄동설한의 찬바람이 뺨을 때리며 꾸짖었다.
“이 녀석아, 너도 어서 학교에 가서 졸업식을 해야지! 그래야 졸업장을 받을 거 아니겠니?” 그러나 나는 강하게 손사래를 쳤다. “그깟 초등학교 졸업장 하나 달랑 받아봤자 뭐하니? 중학교조차 갈 수 없는 처지이거늘.”
뼛속까지 괴롭혔던 삭풍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 잠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저만치로 사라졌다. 그랬다. 당시 나는 소년가장이었다. 따라서 병이 드신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자면 나라도 나서서 벌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했어도 돈이 없는 가난뱅이 집안의 장남은 중학교 진학조차 사치로 치부되었다. 때문에 졸업식 당일에도 호구지책의 방편으로 구두를 닦으면서 눈물을 머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후가 되자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이 우르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그중엔 부모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추측컨대 짜장면을 사 먹으러) 가는 듯 보이는 초등학생들도 다수였다. 나는 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다시금 내 처지를 비관했다. 세월은 흘러 결혼을 하고 아들에 이어 딸을 슬하에 두었다.
아버지께선 내 아들이 불과 세 살 때 작고하셨다. 따라서 이듬해 태어난 딸은 제 할아버지의 모습을 전혀 기억할 수 없다. 하여 내가 받지 못한 모정(母情)과 부정(父情)을 모두 쏟아 부으며 두 아이를 사랑과 칭찬으로만 기르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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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이미 학교에선 유일무이 명문대 합격증을 받아두고 있던 딸은 졸업식 날 자그마치 일곱 개의 상을 휩쓸었다. 그날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대상(大賞)까지 받으면서 덤으론, 그날 참석한 학부모님들의 이구동성 부러움과 시샘까지를 동시에 받았다.
“쟤는 대체 누구기에 상이란 상은 다 받는 겨?” “내 말이, 아무튼 저 학생의 부모는 얼마나 좋을까?” 그랬다. 나는 그날 너무도 행복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마치 ‘눈물의 파티’인 양 그렇게.
아빠인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딸이 대신 일궈냈다는 뿌듯함이 그 눈물의 구성(構成)이었음은 물론이다. 나도 후일 나이 오십이 넘어서 3년 과정의 사이버대학을 졸업했다. 그렇긴 하지만 어찌 딸이 받은 대학과 대학원의 그 빛나는 졸업장의 가치에 필적(匹敵)하랴.
조용필의 히트곡 <눈물의 파티>에선 이런 가사가 돋보인다. “파티 파티가 시작될 때 나는 너를 보고 말았네 ~ (중략) 우리들은 이렇게 외면하고 있지만 서로가 괴로운 표정을 말없이 보고 있겠지 ~”
그럼 왜 ‘우린 처음 본 사람처럼 그냥 서로 인사만 하네’와 같은 현상이 빚어진 것일까. 그건 정상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받는 졸업장은 ‘파티’에 다름 아니지만 반대로 돈이 없어서(혹은 기타의 이유로) 상급학교에 진학치 못 하는 가난한 학생의 입장에선 그 졸업식이 파티가 아니라 차라리 괴로운 눈물이었다는 셈법의 비유가 아닐는지 싶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가 바야흐로 졸업시즌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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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