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60. 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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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60. 빙점

일진월보(日進月步) 단상

  • 승인 2017-02-27 00:02
  • 홍경석홍경석


“이 몸이 떠나거든 아주 가거든 ~ 쌓이고 쌓인 미움 버려주세요 ~ 못 다 핀 꽃망울에 아쉬움 두고 서럽게 져야하는 차가운 빙점~ 눈물도 얼어붙은 차가운 빙점~”

국민가수 이미자의 또 다른 히트송 <빙점>이다. 빙점(氷點)은 물 따위가 어는점, 즉 결빙(結氷)을 가리킨다. 엄동설한에 발가벗겨져 집을 쫓겨났는데 설상가상 차가운 물까지 그 위에 붓는다면 이는 곧바로 빙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꼴이다.

특검에 의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격 구속되면서 세인들의 시선은 다음의 두 가지로 양분되었다. 하나는 “이제야 비로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한국식 법치의 병폐가 사라져서 후련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쪽은 “대통령의 요구에 거부할 재벌이 과연 어디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필자의 시각 역시 후자에 무게가 더 실린 편인데 가뜩이나 암운에 휩싸인 한국경제는 ‘최순실 게이트’가 또 다른 악재로 작용했다. 때문에 일부 대기업의 경우, 진작 치러졌어야 했을 신입사원 공채마저 연기되고 있다는 현실은 이러한 심각성의 방증이다.

아무튼 구치소든 교도소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바뀐다고 한다. 정신적 충격과 공황감은 논외로 치더라도 교도관들 앞에서 속옷을 벗고 항문검사까지 마쳐야한다는 얘길 듣자면 그게 바로 ‘인간적 빙점’이 아닐까 싶다.

오래 전 친구의 형님께서 사람이 사망하는 교통사고를 내서 대전 교도소에 수감이 되었다. 멀리서 사는 친구인지라 나에게 면회를 부탁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면회를 갔는데 처음엔 죄책감에 말도 잘 않던 형님이셨다.

하지만 갈수록 특유의 긍정적 입담까지 살아나 면회를 잘 왔다 싶었다. “형님, 그 안에 계시니 답답하고 모든 게 짜증만 나시죠?” 그러나 형님의 답변은 의외였다.

“아냐. 여기도 사람 사는 데라서 그런 걱정은 말게. 또한 교도소는 ‘인생학교’란 말 들어봤지?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는 까닭에 꽉 막혔던 내 삶의 발전과 지식의 충전에 있어서도 가히 일진월보(日進月步)의 속도를 붙이고 있으니까. 또한 교도관님들도 하나 같이 좋은 분들이라서 만날 덕담까지 공짜로 많이 듣고 있지. 아무튼 출감하는 대로 자네와 술 잔 한 하세.” 사람은 어쩌면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불확실성의 세상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밤새 안녕’이란 말도 있듯 멀쩡했던 사람이 순식간에 저승길로 떠났다는 비보는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우리나라엔 53개의 교도소에 약 5만 8천여 명이 수감돼 있다고 한다. 사람이 이 풍진 세상을 사노라면 예기치 않았던 죄를 지을 수도 있음이다.

그렇지만 그 죄를 씻고 나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면 이는 바로 빙점에서 명지바람(보드랍고 화창한 바람)으로 치환되는 또 다른 계기와의 만남이 아닐까 싶다. 복역 후 만기 출소한 그 형님을 다시 뵌 건 친구 아들의 결혼식장에서였다.

“형님, 그동안 ‘빙점의 칼바람’(교도소의 또 다른 비유) 속에서 고생 많으셨지요?” 그러자 형님의 언죽번죽한 답변이 금세 포복절도로 이어지게 하였다. “무슨 소리! 거기는 바람조차 들어오지 않는 무풍지대라고.”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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