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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예쁜 나의 님이여 당신을 사랑해요 ~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가도 나는 그대를 사랑해요 ~ 하늘이 우릴 부르는 날까지 그저 그렇게 머물러주오 ~ 사랑아 나의 사랑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 어제처럼만 오늘처럼만 우리 사랑을 칭칭 감아라 ~”
남수란이 부른 <그대를 칭칭>이란 가요다. 노래로만 보자면 연인을 향한 열렬한 구애와 사랑의 표현이 절절한 하소연으로 축을 이룬다. 하지만 내가 이 노래를 보는 시각은 사뭇 다르다. 즉 그 사랑의 대상은 연인이 아닌 어머니란 사실이다.
작년 가을 죽마고우의 모친께서 영면하셨다. 그래서 장지까지 따라가 얼마나 오열했는지 모른다. 그건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과거 나에게 베풀어주신 각별한 모정(母情)이 축적되고 담보된 때문이었다.
얼굴조차 알 수 없는 나의 친모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지 불과 첫 돌도 안 되었을 무렵 영원히 종적을 감추셨다. 때문에 ‘엄마 없는 아이’로 자라면서 얼마나 고독하고 슬펐고 또한 힘들었는지 모른다.
이 아들보다 술을 더 사랑했던 아버지께선 중차대한 가장의 책무마저 방기하셨기에 나는 급기야 소년가장까지 되었다. 당시는 통행금지가 엄존하던 살벌한 시기였다. 따라서 자정이 넘은 시간임에도 술을 사오라고 닦달하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 잠’이라도 자자면 그 친구의 집을 찾아가야만 했다.
오밤중임에도 뜨거운 밥과 국을 챙겨 주시며 아랫목에 잠자리까지 만들어 주셨던 참 고마웠던 그 어머니……. “쯧쯧~ 엄마도 없는 녀석이 고생이 정말 너무도 심하구나!” 친구 모친의 그 말씀에 눈물이 쏟아지면서도 이를 억제하느라 입안으로 눈물을 삼켰다.
허나 그럴 적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그리고 기시감(旣視感)은 덩달아 폐부까지 찔러대곤 했다.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 작년에 사위를 봤다. 딸 이상으로 사위를 사랑하는 아내다.
딸과 사위가 집에 오면 아내는 거실에서 자고 자신의 방을 두 사람에게 내준다. 내 방은 아예 안 들어오는 때문이다. 어쨌든 사위에게까지 뭣 하나라도 맛난 걸 해서 먹이려는 아내의 모습을 보자면 새삼 그렇게 어머니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렇다. 이 세상의 어머니는 그런 것이다. 아낌없이 모든 걸 내주는 그런 천사 같은. 혹자가 이르길 사람의 성격이라는 것은 유아기 때부터 서서히 형성되어 청년기에 그 정체성이 더욱 견고해진다고 했다.
때문에 ‘벌써 어른’이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직 아이’처럼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철부지 아이와 같은 사람도 실재하지 싶다. 후자의 경우가 바로 나다. 나는 지금도 간혹 꿈을 꾸자면 어머니를 동아줄로 칭칭 감고픈 충동에 휩싸인다.
“네 엄마는 정말 예뻤지!”라던 생전 아버지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럼 뭐하나? 60년이 다 되도록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엄마였거늘. 견우와 직녀도 해마다 한 번 쯤은 오작교(烏鵲橋)에서 만난다고 했는데.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대를 칭칭> 가요를 듣자면 ‘꽃보다 예쁜 나의 님’, 즉 어머니를 그림으로조차 그릴 수 없음에 마음엔 그예 시퍼런 비수까지 들어와 박히는 것이다. 백년이 가고 천년이 가도 나는 어머니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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