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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슬픈 밤에는 등불을 켜요 ~ 고요히 타오르는 장미의 눈물 ~ 하얀 외로움에 그대 불을 밝히고 ~ 회상의 먼 바다에 그대 배를 띄워요 ~” 영사운드가 부른 <등불>이다.
등불은 등에 켠 불이기도 하지만 앞날에 희망을 주는 존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등불의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있어 그 희망의 등불이 돼 주는 대상은 단연 가족이다.
어제 퇴근길에 후배와 술잔을 나누었다. 요즘 경제난이 심각하여 고민이라고 했더니 “저는 아직도 아이가 대학에 다니기에 돈이 들어가는 반면 선배님은 두 아이가 모두 대학까지 마치고 번듯한 직장까지 다니니 무슨 걱정이십니까?”라며 되레 면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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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준열한(?) 꾸짖음이 이어졌다. “더욱이 따님은 서울대까지 나온 자타공인의 재원이거늘 뭘 그리도 푸념이십니까?” “그야 그렇지만......” 서울대학교 성낙인 총장이 지난 3월 2일 입학식에서 일갈했다.
“오늘 이후 '서울대학교'라는 단어는 여러분 머릿속에서 지우십시오. 이것이 제가 서울대 학생, 그리고 졸업생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선배로서 서울대인이 된 첫날 후배들에게 드리는 조언입니다”라며.
이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연루된 서울대 출신이 많아서 서울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진 데 대한 자기반성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한편 지난 1월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 그리고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서울대 출신들을 ‘부끄러운 동문’으로 선정한 바 있다.
아무튼 성 총장의 말처럼 ‘서울대’라는 이름에 도취되면 오만함과 특권 의식까지 생기기 쉽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팔불출의 거듭되는 자랑이지만 서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딸은 겸손하고 예의바르며 효심까지 도드라진 어떤 익자삼우(益者三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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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출처=http://choouk.kr/722 |
나는 딸의 그러한 모습에서 새삼 서울대의 어떤 ‘품격’까지를 보곤 한다.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 대학 졸업반 학생들이 우리나라의 이화여대에서 졸업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이화(梨花)가 중국어로 돈을 벌게 한다는 의미의 리파(利發)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라고 하는데……. 그런데 이로 말미암아 이대 학생들은 어이가 없다고 하니 피식 웃음이 솟는다. 이러한 웃지 못 할 상황의 전개는 역시도 이대의 품격(品格)과 가치(價値)까지를 덩달아 높이 쳐주는 것이 아닐까 싶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과 대만엔 아마도 이대만한 대학이 없으니까 그러는 것이라며 긍정 마인드로 봐줄 수도 있는 것임에. 등불과도 같은 열정과 희망의 근저는 그 사람의 열끼(눈동자에 드러나는 정신의 담찬 기운)에서부터 드러난다.
또한 낯꽃피는 얼굴의 밝은 빛과 미소는 덩달아 타인에게도 화기(和氣)를 전이시키는 작용까지 한다. 등불은 그처럼 미래까지 밝히는 역할에도 충실하지만 ‘어둠’이란 반대의 경우라면 판이하게 전도(顚倒)된다.
우선 시난고난의 건강과 재정상태를 시작으로 매사 시르죽어 기를 펴지 못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게 더 심해지면 심지어 구들더께(늙고 병들어서 방 안에만 들어박혀 있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의 처지로까지 추락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요즘엔 누추한 내 신세의 한탄에 밤에도 적이 슬프기 일쑤다. 따라서 그처럼 슬픈 밤에는 등불을 켜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지라 그런지 몰라도 정답게 피어나는 밀감 빛 안개는 요원하다. 만경(晩境)된 등불이 깜박거린다. 형광등을 갈아야겠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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