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75. 정으로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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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75. 정으로 사는 세상

네가 꽃이다

  • 승인 2017-03-18 00:02
  • 홍경석홍경석


“세상에 흔한 것이 여자의 눈물 거기에 약한 것이 남자의 마음 ~ 이래저래 몇 번 빠져들어도 사랑 그게 뭔지 잘 몰라 ~ 세월에 맡겨두기엔 아까운 청춘 ~ 사랑에 웃고 이별에 울어 무엇이 남더냐 ~ 세상만사 뒤돌아보면 가슴 깊이 스미는 건 정 뿐이더라 ~~”

주현미의 노래 <정으로 사는 세상>이다. 정(情)은 마음속에서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이란 뜻이다. 이 정은 남녀를 불문하고 적용된다. 부모님에 대한 정에서부터 친구, 또는 직장 동료 간에도 정이 성립된다.

하물며 부자간의 정이야 더 말해서 무엇하랴. 딸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 경제난이 가장 심각했다. 사업과 장사에서 연전연패하면서 남은 거라곤 대추나무에 걸린 연처럼 빚만 무성했다.

따라서 가련한 이 가장의 발걸음은 늘 그렇게 허방다리에 빠진 양 후들거리기 일쑤였다. 미국의 철학자 월터스토프는 “고통의 골짜기에서는 절망과 쓰라림이 양조된다. 그러나 품격 또한 제조된다. 고통의 골짜기는 영혼을 빚어내는 계곡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경험해보건대 그건 순전히 거짓말이요 또한 언어의 유희(遊戲)일 따름이었다. 빈곤의 질곡이 어찌나 깊었던지 심지어 딸의 학교등록금조차 마련해 주지 못 하는 때가 실재했다. 따라서 비록 함구했지만 딸은 이 못난 아빠를 그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러면서 남몰래 흘린 눈물은 또한 비 오는 날을 상회했을 것이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아빠의 눈에는 훤히 보이는 게 바로 딸의 눈물이었다. 딸의 눈물을 보면서 반드시 재기하리라 이를 악물었다. 그랬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고통의 골짜기로 냉랭했다.

딸이 학교에 가고 난 뒤엔 일을 나갔지만 손에 잡힐 리 없었다. 퇴근길에 소주잔을 앞에 두자면 소주보다 눈물이 더 많이 담겨서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어느 날 등교하기 전 미리 써놓은 메모지를 딸의 가방 안에 밀어 넣었다. 거기엔 다음과 같이 썼다.

- ‘네가 꽃이다. 그래서 예쁘다! 우리 힘내자!!’ - 그 메모지 덕분이었을까……. 그날 이후로 딸은 눈에 띄게 명랑해졌다. 뿐만 아니라 마치 흥부의 박처럼 좋은 소식까지 잇따라 물고 왔다.

학교에선 딸이 최우등 성적자라며 등록금 면제에 이어 최신형 학습용 컴퓨터를 집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임대까지 해 주었다. 여세를 몰아 이후 딸은 대학 수시모집에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합격했다.

합격증을 출력해서 주던 날, 나는 딸이 너무나 고맙고 미안해서 참 많이 눈물을 쏟았다. <정으로 사는 세상>에선 세상에 흔한 것이 여자의 눈물이라고 했지만 요즘 여자들은 강하고 독해서(?) 잘 울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 그것도 가족군(家族群) 여자의 눈물을 봐야 하는 남자의 마음은 여전히 약한 게 사실이다. 아울러 세월에 맡겨두기엔 아까운 청춘이란 가사는 맞는 거다. 어느새 내 나이도 내년이면 ‘6학년’이라니 실로 어이가 없다.

“절대 후회하지 마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캐롤 터킹턴의 명언이라지만 실패와 빈곤을 여기에 이입(移入)시키자면 차원이 달라진다. 딸이 결혼한 지 어느새 1년이 지났다.

결혼 전엔 그렇게나 이 아빠를 찾던 녀석이었는데 이젠 제 서방에게 그 정이 다 이사를 갔는지 문자를 보내오는 빈도 역시 눈에 띄게 줄었다. 그래서 조금은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보자면 어쨌거나 세상만사 뒤돌아보면 가슴 깊이 스미는 건 정 뿐이더라.

우리 사는 세상이 물질적 재단보다는 정이 우선 하였으면 참 좋겠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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