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78. 이정표 없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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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78. 이정표 없는 거리

막차는 씁쓸하다

  • 승인 2017-03-21 00:01
  • 홍경석홍경석


“이리 가면 고향이요 저리 가면 타향인데 ~ 이정표 없는 거리 헤매 도는 삼거리길 ~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 세 갈래길 삼거리에 비가 내린다 ~”

김상진의 히트곡 <이정표 없는 거리>다. 이정표(里程標)는 도로 상에서 어느 곳까지의 거리 및 방향을 알려 주는 표지를 뜻한다. 또한 어떤 일이나 목적의 기준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만취하거나 경황이 없을 때는 이정표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사이버대학에 재학 중일 때 때가 되면 정기모임 겸 단체교육을 받았다. 충북 영동에 위치한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학습장으로 썼는데 2박 3일의 교육을 마치는 날엔 대망(?)의 뒤풀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주와 맥주를 시작으로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면 직접 담근 각종의 과일주와 약주까지 총망라되어 술상에 올랐다. 덕분에 자정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음주와 백가쟁명의 시사토론이 뒤범벅되었다.

술에 약한 이들은 아무 데나 널브러져 잠에 빠져들었고 나처럼 ‘술발’이 강한 이들은 새벽녘까지도 술잔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대저 술에는 장사가 없는 법! 만취하여 정신마저 혼미했으나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라며 자리를 떴다.

그러자 행정실장님이 자신의 차로 황간역까지 태워다 주셨다. 허나 열차 안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수원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해프닝의 단초가 되었다. 술이 덜 깨긴 했지만 ‘수원역’이라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정신이 되돌아온 덕분이었다.

얼마 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버스 사고를 당한 대학이 2박 3일간 마시기 위해 무려 8천병에 가까운 소주를 구입했던 것으로 드러나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아울러 ‘그 사건’은 신입생 정보 제공과 학생 간 소통 강화를 표방하며 떠나는 학교 밖 오리엔테이션이 여전히 술잔치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많은 이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단초까지 되었다.

고등학교라는 어떤 구속의 단계를 벗어나 자유분방한 대학에 입성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오리엔테이션을 비롯해 엠티(MT)와 이런저런 축제와 동아리 활동 등은 자연스레 술 문화와의 만남까지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에도 경계해야 하는 건 당연히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기왕지사 위에서 열차 얘기를 한 김에 곽재구 교수의 <사평역에서>라는 시를 지나칠 수 없다.

-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중략)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 막차를 기다리는 초조한 승객들의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는 양 그렇게 실감이 청철한 시다.

그렇긴 하지만 막차란 역시나 씁쓸하다. 더욱이 그 막차를 놓치면 영락없이 노숙을 하거나 아님 여관 내지 여인숙이라도 찾아 몸을 뉘여야 하는 때문이다. 다음 주 일요일엔 죽마고우들과의 모임이 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올해는 한 번도 참석을 못하여 친구들의 원성과 지탄이 천안천(天安川)을 범람하고도 차고 넘친다. 하여 꼭 갈 작정인데 그러나 벌써부터 걱정인 건 다시금 만취하여 이정표조차 분실할까봐서이다.

과거엔 젊었기에 만취하여 (천안)삼거리 길에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의 좌고우면 늪에 빠진다손 쳐도 사뭇 객기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늙수그레의 떨거둥이 같은 작자가 그리 한다면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임에.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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