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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다 볼 곳 없네 ~ 정말 높이 올랐다 느꼈었는데 내려다 볼 곳 없네 ~ 처음에는 나에게도 두려움 없었지만 어느새 겁 많은 놈으로 변해 있었어 ~ ” 윤태규의 <마이웨이>라는 곡이다.
대선 정국으로 선회되면서 새삼 정치, 그리고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고찰이 두드러지는 즈음이다. 최근 일독한 <쉽게 읽고 되새기는 고전 - 사회계약론>은 장자크 루소가 원저자이며 김성은이 역자로써 발간했다.
이 책은 ‘정치는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다’를 필두로, 그러나 ‘인간은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를 거쳐 ‘국민은 정부를 폐기할 수 있다’ 등 다방면에 걸쳐 국민 주권의 정당성을 언급한다. 우리나라 국민에겐 국방과 납세, 교육과 근로의 4대 의무가 있다.
주지하듯 주권은 국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론 어떤가? 갑은 무시로 을을 괴롭히고 힘없는 을은 가난과 핍박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저자의 주장인 ‘국민은 투표일에만 자유롭다’를 예사로이 볼 수 없게 만든다.
선거의 중요성은 두말 할 나위조차 없이 중차대한 잔치이다. 더욱이 대선은 일국의 통치자를 뽑는 선거임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렇지만 정작 선거일이 되면 날씨 탓을 하거나 아님 여행 따위 등을 핑계로 선거 자체를 아예 보이콧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한데 더 웃기는 건, 그처럼 투표조차 안 한 사람이 대통령이 뭣 하나라도 잘못하면 외려 더 화를 낸다는 사실이다. 나 하나쯤이야 빠져도 괜찮겠지 라는 무관심은 결코 민주시민이 할 행동이 아니다.
이는 또한 <마이웨이> 가사처럼 ‘어느새 겁 많은 놈으로 변해’ 버리는,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종의 악수(惡手)인 까닭이다. 따라서 ‘주권을 유지하려면 국민이 모여야 한다’(P.128)에 방점이 찍히는 건 당연한 정서의 순항(順航)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의 파도를 넘지 못한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군주나 대통령 개인이 주권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가 그 주권을 가진다’는 상식을 저버린 때문의 결과이다. 강도가 칼을 내밀며 복종을 강요한다면 당신은 어찌 하겠는가?
잠시나마 복종하는 척이라도 해야만 그나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까지 복종하는 건 물론 아니다. 따라서 강도가 한눈을 파는 순간 내지 강도가 집을 나서는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하기 마련이다.
폭군에게 복종하는 백성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척하는 것일 뿐, 기회만 생기면 반란을 일으키고 새로운 왕을 세우는 게 바로 민중이다.
결론적으로 바람직한 민주주의야말로 진정한 마이웨이인 셈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제2항이 각별하고 새로운 즈음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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