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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많은 내 가슴에 봄은 왔는데 ~ 봄은 왔는데 알고도 모르는 체 알면서도 돌아선 선생님 선생님 ~ 아 아~ 사랑한다 고백하고 싶어도 여자로 태어나서 죄가 될까봐 ~ 안녕 안녕 선생님 이 발길을 돌립니다.”
조미미의 히트곡 <선생님>이다. 50년도 더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어 본다. 내 첫사랑의 대상이기도 했던 여인은 바로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이셨던 채효숙 선생님이시다. 나는 이 선생님의 존함만 떠올려도 지금껏 여전히 흠모와 존경심, 아울러 사랑까지를 더불어 느끼게 된다.
모든 결과엔 원인이 존재한다. 따라서 왜 50년도 더 지난 선생님과의 과거지사까지를 지금껏 기억하고 있는지부터 밝히고 볼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선생님께는 교사로 재직 중에 만나고 헤어졌던 그 숱한 제자 중의 하나인 터인지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어려서 추억은 어쩌면 평생을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나는 너무도 박복했던 나머지 생후 첫돌 무렵에 그만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 바람에 한창 젊은 나이였던 아버지께선 궁여지책으로 당시 같은 동네서 사시는 할머니께 나의 양육을 맡기셨다.
매달 얼마간의 돈을 드리는 조건으로. 그러나 나를 키우시면서 정이 흠뻑 든 유모 할머니께선 다음부터는 아예 돈도 받지 않으며 철철 넘치는 사랑으로 그렇게 길러주셨다. 돈을 벌고자 객지로 나간 아버지보다 할머니하고만 사는 날이 많았던 즈음에 여덟 살의 나이가 되어 나도 국민(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근데 가히 파죽지세의 기세로써 공부를 잘 하니 당시 담임선생님이었던 채 선생님께선 어찌나 나를 위하고 아껴주셨는지!
“엄마도 없는 녀석이 어쩜 그리 공부는 똑 소리 나게 잘 하는 거니? 아무튼 너는 지금처럼만 열심히 하면 이담엔 분명 잘 살 거야. 그러니 절대로 기죽지 말거라!” 마치 어머니와도 같은 선생님의 총애로 말미암아 그때는 ‘정말+진짜로’ 행복했다.
당시 학교로 찾아오는 가족 하나 없었던 가련한 처지의 당사자가 바로 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촌놈 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채 선생님께선 진정 화로보다 더 뜨거운 제자사랑까지를 아낌없이 쏟아주시면서 나를 잘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50년도 더 지난 세월이지만 그 때의 감사함에 목이 메어 나는 지금도 그 선생님의 존함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51년 전, 충남 천안의 성정국민학교에서 재직하셨던 채효숙 선생님 ~
진정 천사보다 아름다운 성정까지를 지니셨고 성춘향 이상으로 미모까지 출중하셨던 당신께선 현재는 지금 어디서, 또한 어떻게 참 아름답게 늙고 계실까요? 천사와도 같았던 당신이 정녕 그립습니다. 제 존경의 바로미터인 선생님을 꼭 한 번만이라도 기필코 뵙고 싶습니다!
그리곤 맛난 식사의 제공에 더하여 그동안 제가 잡초처럼 살아왔던 지난(至難)한 과거사까지도 모두 다 일러바치고 싶네요. 이는 마치 동화작가 정채봉 님이 썼던 ‘어머니의 휴가’에 등장하는 글처럼 말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왜냐면)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눈 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이어선) 숨겨 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임을 잘 아시겠죠?
제게 있어 가요 <선생님>은 결코 예사롭지 않습니다. “꿈 많은 내 가슴에 봄은 왔는데 ~ 봄은 왔는데 알고도 모르는 체 알면서도 돌아선 선생님 선생님 ~ 아 아~ 사랑한다 고백하고 싶어도 남자로, 더군다나 제자로 태어나서 죄가 될까봐 ~”
결국엔 발길을 돌린 게 바로 저니까 말입니다. 선생님의 건강을 빕니다. 그리고 선생님과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채효숙 선생님.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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