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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는 아가씨가 예쁘다네 ~ 짧은 머리 곱게 빗은 것이 정말로 예쁘다네 ~ 온 동네 청년들이 너도나도 기웃 기웃 기웃 그러나 그 아가씨는 새침데기 ~ 앞집의 꼴뚜기 녀석은 딱지를 맞았다네 ~ 만화가게 용팔이 녀석도 딱지를 맞았다네 ~ 그렇다면 동네에서 오직 하나 나만 남았는데 ~ 오! 기대 하시라 개봉 박두 ~”
송창식이 부른 <담배 가게 아가씨>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시기와 경로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기록과 문헌 등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광해군 때인 1608년 ~1618년쯤 일본에서 전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담배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남쪽 나라에서 왔다고 해서 ‘남령초’ 혹은 ‘담바고’, ‘연초’ 라고 불리다가 시간이 흐른 뒤 담배로 불렸다는 설도 없지 않다. 아울러 지금과는 사뭇 다르게 옛날 사람들은 담배가 해롭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심지어 담배를 의약품 대용쯤으로 여겼다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 처갓집에 가는데 다시금 담배 한 보루를 샀다. 장모님께선 여전히 애연가인 까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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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달라 담배 가격이 껑충 뛰었다. 따라서 가장 싼 담배라 해도 담배 열 갑이 든 한 보루는 자그마치 4만 원이나 된다. 하여 돈이 없는 국민은 담배조차 사서 피울 수 없는 지경에까지 몰렸다. 의지가 약한 까닭에 나 또한 여전히 담배를 태운다.
그러면서도 전방위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 금연광고 따위는 무시로 죄책감을 느끼게도 한다. ‘나도 담배를 끊어야 하는데!!’ 아들과 딸은 집에 올 적에 이런저런 선물을 사온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제 아비인 내가 좋아하는 담배는 단 한 갑조차 사오지 않는다.
이는 내 건강을 고려한 것이라곤 하되 솔직히 약간은 섭섭한 것도 사실이다. 가요 <담배 가게 아가씨>의 발표 시기는 1986년이니 어느덧 31년이나 되었다. 이 노래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흡연자를 마치 범죄자 취급하듯 하는 세태는 단연코 없었다.
오히려 시골버스를 타면 버스 안에서 어르신께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 또한 낯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담배를 제목으로 한 가요는 이밖에도 진송남의 ‘담배연기’와 선우영의 ‘담배 연기 부르스’, 임병수의 ‘담배연기처럼’ 등이 있다.
최근 담뱃갑의 흡연 경고그림을 기피하거나 반발하는 흡연자들로 인해 편의점 알바생들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주지하듯 지난 2016년 12월 23일부터 보건복지부의 금연정책 일환으로 ‘담뱃갑 경고그림 의무화’가 시행되고 있다.
이를 좇아 현재 담배공장에서 반출되는 모든 담배제품의 담뱃갑의 앞과 뒷면엔 폐암과 후두암, 구강암과 심장질환의 위험물질 함유 전파 외에도, 심지어 성기능장애 등 10종의 경고그림이 표출되어 시판된다. 그야말로 강공(强攻)의 총공격인 셈이다.
그러나 경고그림 의무화 이전에 반출된 담배들이 아직도 이들 경고그림 담배와 뒤섞여 유통되는 까닭에 경고그림이 없는 담배 사재기 현상마저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부 흡연자들 가운데 일부는 담뱃갑 경고그림에 반발하며 경고그림이 없는 담배를 요구하거나 특정 경고그림을 기피하는 사례가 빈발해 편의점 알바생들이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그럴 거면 담배를 끊지 뭣 하러?”라는 빈축이 당연히 성립된다. 그러나 매사는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내가 금연자라고 해서 흡연자를 범죄시하고 더욱이 왕따 시키는 것도 모자라 매도까지 하는 행위는 다분히 지독한 이기주의라고 보는 시각이다.
갑 당 2000원씩이나 올린 담배 가격으로 인해 정부가 거둬들인 세수증대는 천문학적 규모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흡연자를 토끼몰이 하듯 냉대하는 정부의 어떤 이중 잣대는 어처구니마저 없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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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담배가게 아가씨' 공연 장면 |
금연하면 건강에도 좋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이다. 그렇지만 힘든 노동을 하다가 담배 한 대 태우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인 노동자들의 고충을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담배를 꽤나 사랑했다는 정조 대왕은 어린 시절부터 암살 위협과 아버지의 죽음 등 스트레스가 극심하여 일찍부터 담배를 입에 댔다고 알려져 있다. 담배를 백해무익 하다곤 하지만 때론 정서안정 등의 긍정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제 우리 동네 담배 가게에도 담배를 파는 아가씨는 진즉 사라지고 없다. 짧은 머리 곱게 빗은 처자는 커녕 꾸부렁 늙은이 둘이서 담배를 팔아 연명(延命)하는 허술한 구멍가게만 눈에 띈다. 담배 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는, 시류를 읽지 못 하는 식자(識者)들이 얄밉다.
자신은 담배를 안 태운다는 이유만으로, 담배를 태우는 이들을 마치 미친 개 패듯 하는 건 언필칭 배운 자들의 교만 아닌가? 진짜로 예쁜 처자가 모습을 드러내기에 온 동네 청년들의 설레는 로망이기도 했던 우리 동네의 담배 가게 아가씨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흡연도 때론 인권(人權)이거늘.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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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