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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아서 하는 밴드 |
“나의 낡은 오토바이는 부릉 부릉 부릉 ~ 골목길을 질주하네 온 동네 구석구석으로 ~ 부릉 부릉 부릉 신문을 실어 나른다 ~ 익숙한 자명종 소리에 반쯤 감긴 두 눈을 비비고 ~ 으라차차차차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서면 ~ 새벽 어르스름한 별빛 말이 없는 가로등 ~ 도둑고양이와 인사를 하고 자 이제 시동을 걸까 ~ 나의 낡은 오토바이는 부릉 부릉 부릉 ~ 골목길을 질주하네 온 동네 구석구석으로 부릉 부릉 부릉 ~ 신문을 실어 나른다 ~”
좋아서 하는 밴드가 부른 <신문배달>이다. 어제는 초등학교 동창회가 있었다. 그래서 대전에 사는 동창들 넷과 만나 친구의 승용차에 올라 고향인 천안으로 출발했다. 차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중, 한 친구가 우리들이 어렸을 적 신문팔이를 했던 시절을 추억의 창고에서 꺼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집안이 어려워서 신문배달에 이어 신문팔이까지 했었지, 마치 경석이처럼.” 그렇게 말한 친구는 공무원으로 성공한 동창이다. 반면 나는 직업마저 어수룩한 경비원이다. 다만 작가와 기자로 필명을 날리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그 친구를 압도하지만.
친구의 말이 이어졌다. “00이란 친구도 나를 따라 잠시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신문의 양도 많고 힘이 든다며 어느 날 갑자기 배달을 안 나갔지 뭐니.” “그래서?” “신문지국 총무가 쫓아와서 그렇게 무책임한 놈이 어딨냐며 마두 두들겨 팼지.” “......!”
양손으로 신문을 두텁게 쥔 당시의 나는 소년가장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동분서주 신문을 배달했고 나머지는 역전과 시외버스 차부에서 팔았다. 미래의 꿈을 꾸면서 암팡지게 그렇게 신문을 판 것이다.
세월은 여류하여 황혼을 건너는 중이다. 비록 벌어놓은 돈은 없으되 주변에선 자식농사에 성공했다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배가 고파 못 견디는 중’이다. 반드시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까지 떨칠 야심이 불끈한 때문이다.
스마트폰 등으로 뉴스를 보는 독자들이 급증하면서 종이신문 정기구독자가 20년 사이 무려 5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는 1996년 같은 조사 때의 69.3%와 비교하면 약 5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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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아서 하는 밴드 |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도 집에서 두 종류의 종이신문을 구독한다. 회사로는 세 종류의 신문이 들어오는데 마찬가지로 정독하면서 배울 것을 갈무리하거나 메모하는 습관 역시 불변하다.
친구와 지인들이 나를 일컬어 자식농사에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찬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명실상부 우리나라 제일의 직장과 대학을 다니고, 졸업한 때문이다. 한데 아니 땐 굴뚝에선 연기가 날 리 없듯 이러한 업적의 도출엔 신문의 공이 컸다.
예전의 직장에선 신문이 무려 20여종 가까이나 들어왔다. 남들은 하루 지난 신문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를 열심히 읽으며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는 부분을 반드시 오려서 집에 가지고 갔다.
이러한 어떤 ‘투자’가 이뤄진 까닭에 아이들의 성적 또한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신문은 예나 지금 역시도 불변의 정보와 지식 화수분이다. 새벽 2시와 오전 7시에 정확하게 배달되는 회사 유입의 신문은 오늘날 나를 작가와 기자로 까지 성장시켜준 일등공신이다.
한국신문협회는 올해 제61회 신문의 날 표어 대상에 “신문을 펴는 즐거움, 정보를 향한 설레임”을 선정했다고 한다. 나의 종이신문 사랑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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