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124. 빨간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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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124. 빨간 우산

그래야만 비로소

  • 승인 2017-05-08 00:01
  • 홍경석홍경석


“비 오는 날 아침은 언제나 내 맘을 설레게 해 ~ 우연히 내 우산과 똑같은 빨간 우산을 쓴 소녈 봤어 ~ 한참을 망설이다가 건넨 말 "저 어디까지 가세요? 때마침 저와 같은 쪽이네요 우산 하나로 걸어갈까요?" ~ ”

김건모의 <빨간 우산>이다. 지금이야 우산도 패션시대이다 보니 형형색색의 고운 우산들이 지천이다. 하지만 지난 1960~70년대 사용하던 비닐우산은 바람이 불면 뒤집어져서 찢어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버리지 않고 이를 실 따위로 꿰매 재사용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당시엔 그만큼 살기가 힘들었다는 방증인 셈이다. 아내와 열애를 하던 시절에도, 이후 결혼하여 반 지하의 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할 적에도 우리의 곁에 비닐우산은 여전했다. 그때 우리의 살림살이는 비키니 옷장 하나에 수저 두벌, 요강과 석유곤로뿐이었다.

지지리도 가난했기에 외식이라곤 매달 내가 월급을 타는 날 딱 하루에만 국한되었다. 그 즈음 우리가 살았던 천안의 중심가엔 삼겹살이 아주 맛있는 식당이 있었다. 그 집이 내 월급날 우리 부부의 단골식당이었다.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역시 지글지글 익어가는 삼겹살과 가장 잘 어울리는 황금의 궁합이었음은 물론이다. 거기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면 아내는 마치 진수성찬을 먹고 온 사람인 양 그렇게 행복해했다.

월급날의 유일한 외식이었는지라 그날 비가 내린다손 쳐도 우리의 삼겹살 사랑은 여전했다. 비록 찢어질 듯 울어대는 비닐우산이었을망정 우린 남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늘 그렇게 행복만 한 건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모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따라서 허구한 날 비보다 술에 젖어서 귀가하는 날이 잦았다. 그러자 하루는 아내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서운함의 비수를 꺼내는 게 아닌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나 술에 취해서, 그것도 자정이 다 돼서야 집에 오는 이유가 뭐여? 나한테 불만 있어?” “그럴 리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 내일 보따리 싸서 우리 집(친정)으로 갈 껴.” 술김에도 겁이 덜컥 났다.

아내가 ‘한성질 하는’ 때론 매서운 여자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이튿날 나는 출근하면서 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꽉 잠갔다. 그러나 출근해서도 일은 당최 손에 잡히지 않았다. 걱정이 돼서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달려와 문을 땄다.

그러자 마치 날 잡아먹을 듯 날카롭게 쏘아보는 아내의 눈이 꽤나 무서웠다. “미안해! 다시는 술 먹고 늦지 않을게.” 그렇게 두 손 모아 싹싹 빌어서 아내의 가출, 아니 어쩌면 ‘영원한 탈출’의 작심을 겨우 봉쇄시켰지만 제 버릇 개줄까?

그로부터 36년이란 세월의 강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술을 사랑하는 민족으로 굳건하니 말이다. 서민스럽게 나는 지금도 소주를 사랑한다. 소주 안주론 단연 삼겹살이 최고다. 삼겹살은 비 오는 날에 먹으면 더 맛있다.

‘가정의 달’ 얘기를 하자니 아이들이 새삼 묵직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세월은 여류하여 나와 아내는 반백의 중년이 되었고 아이들은 서른이 넘었다. 아직도 총각인 아들에 반해 딸은 작년 봄에 결혼을 하고 소위 ‘품절녀’가 되었다. 효자인 아이들은 지금도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집을 찾는다.

올해도 마찬가지인데 천만다행으로 세 아이, 즉 아들과 딸 그리고 사위가 모두 좋은 직장에 다닌다. 반면 올 어버이날이 되어도 자녀가 취업을 못 했거나 직장이 있는 경우일지라도 급여가 적어서 집에 왔다 갈 형편이 어려운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걱정은 하늘처럼 크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엔 이번 어버이날에 집에 안 와도 된다며 부모님이 먼저 자녀들에게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잦다고 하니 적이 안타깝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다시금 활황으로 전환되어 취업에 힘들어하는 젊은이들도 취업의 기쁨을 누렸으면 좋겠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이 꾸무럭하다. 야근을 나가는 나의 뒤를 아내가 빨간 우산을 챙기며 따라나섰다. 어버이날 집에 올 아들과 딸 부부에게 맛난 반찬을 해주려 장에 간다는 것이었다.

빨간 우산은 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5월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2017 세계 노동절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상징물이라는 의미로써 빨간 우산을 들고 행진하여 더욱 눈길을 끈 바 있다.

근로자가 행복한 나라가 진정 복지국가라고 생각한다. 김건모의 가요처럼 ‘비 오는 날 아침은 언제나 내 맘을 설레게 해’라든가, 우산을 매개로 인연이 닿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아름다운 그녀와의 우중(雨中) 데이트 역시 그 관건과 핵심은 바로 안정된 정규직으로의 취업이 아닐까 싶다.

그래야만 비로소 “오! 세상은 아름다워~ 그래 그래서 다들 살아가나봐 ~”라는 만족까지 온전히 자리를 잡으리라.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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