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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한번 나도 한번 누구나 한번 왔다 가는 인생 ~ 바람 같은 시간이야 멈추지 않는 세월 ~ 하루하루 소중하지 미련이야 많겠지만 ~ 후회도 많겠지만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걸 ~ 붙잡을 수 없다면 소풍 가듯 소풍 가듯 ~ 웃으며 행복하게 살아야지 ~”
추가열의 <소풍 같은 인생>이다. ‘소풍’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야외에 나가는 경우를 의미한다. 또한 학교에서 자연 관찰이나 역사 유적 따위의 견학을 겸하여 야외로 갔다 오는 일도 포함한다. 소풍엔 합당한 여유와 만족이 담보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2017 유성온천문화축제’는 명실상부와 명불허전의 소풍과 여유, 그리고 만족과 기쁨이 어우러진 큰잔치였다. 5월12일 ‘멋진 소리 색소폰 유성구합창단’의 공연을 시작으로 14일 ‘퓨전난타’에 이르기까지 사흘간 치러진 이 행사는 100여 개의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돼 유성으로 소풍 온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발이 행복한 ‘온천족욕장’은 발 디딜 틈이 없는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으며 온천수를 활용한 버킷챌린지와 물총대첩은 더 많은 관람객들의 참여까지 이끌었다. 계룡스파텔의 메인무대를 포함해 푸드트럭존과 먹거리존, 온천건강체험관과 한방족욕카페 등도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에 소재한 유성온천(儒城溫泉)은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새 왕도의 후보지를 물색하기 위하여 계룡산에 들렀다가 이곳에서 목욕하면서 유명해졌다고 전해진다. 유성의 온천은 이처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얼추 방치되다시피 했던 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07년부터였다.
유성에 정착한 일본인 가운데 스즈끼(鈴木松吉)가 봉명동 유성천 남쪽에 있는 온천탕 부근을 개발하고 1910년에는 대전온천주식회사를 창설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뜨거운 온천을 특히 좋아하여 유성온천의 처음 손님들은 일본인들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었다는 설도 있다.
‘공주갑부’로 소문난 김갑순(金甲淳)이 유성관광호텔 자리에 온천장을 처음 신설하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김갑순은 일제 강점기 충남 공주 출신의 사람이다. 다양한 공직을 역임한 그는1930년에는 약 3300만㎡(1000만평)의 대토지와 유성온천, 조선신문사, 공주읍 시장, 승합차회사 등 여러 기업을 소유한 갑부가 되었다고 한다.
충청남도의 도청이 대전 지역으로 옮겨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식산은행에서 저리의 은행 돈을 빌려 대전역 주변의 땅을 선점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김갑순은 그렇다면 탐관오리의 전형이라 하겠다.
1938년 당시 대전 시가지의 토지 면적이 190만7400㎡(57만 8천 평)이었는데, 그 중 김갑순의 소유지가 72만6000㎡(22만 평)이나 되었다는 건 그가 얼마나 대단한 부호였는지를 쉬 가늠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김갑순의 엄청난 부는 해방과 더불어 몰락하게 되는데 이를 보자면 ‘권불십년’처럼 영원한 부자는 없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온천은 고혈압과 만성위염, 만성습진과 관절염, 그리고 부인병 등에도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부병에도 특효가 있다고 하여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 바로 유성온천이다. ‘온천으로 점핑, 즐거움으로 힐링, 아이들은 점핑, 어른들은 힐링’이란 슬로건으로 치러진 ‘2017 유성온천문화축제’는 수십 만 인파를 끌어 모으면서 덩달아 관광대전의 입지를 더욱 두텁게 만드는 토대를 구축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톡톡히 누렸다.
누구라도 소풍 같은 인생을 지향한다. 건강에도 딱 좋은 유성온천에 소풍을 가 보자. 인근의 계룡산 산행(山行)과 과학연구단지의 산책은 보너스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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