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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처럼 빠른 건 또 없다. 6.10 민주항쟁이 어느새 30주년을 맞았으니 말이다. 지난 1987년의 6월 시민항쟁 즈음, 사랑하는 딸은 출생한 지 겨우 다섯 달이 지났을 때였다.
당시엔 나도 독재정권에 격분한 나머지 소위 ‘넥타이 부대’에 편승하였다. 그리곤 중앙로에서 시위를 벌이곤 했다. 그러나 최루탄 냄새를 묻히고 귀가하는 나를 아내는 걱정이 가득한 눈과 입으로 힐난의 날을 새파랗게 세우곤 했다.
“당신이 무슨 민주투사여?” + “우리 딸내미가 이제 겨우 다섯 달 됐는데 데모하다가 당신이 경찰에라도 잡혀가면 우린 어쩔 겨?” “……”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과연 민주의 과실을 달콤하게 맛보고 있는가?
민주(民主)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민주는 기실 부자와 상류층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란 편견을 지니고 있다.
영화 <대립군>을 보면 “나라가 망해도 우리 팔자는 안 바뀌어!”라는 주인공 토우(이정재)의 대사가 당시 대립군의 막막한 처지를 대변한다. 이를 끄집어낸 것은, 우리 사회 역시 빈자는 여전히 부자의 이른바 갑질과 횡포에 무기력한 ‘비민주시대’에 살고 있음을 은연 중 비꼬고자 하는 의도에서다.
즉 빈자는 정부와 정권이 바뀌더라도 여전히 가난의 족쇄에서 탈출하기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과제로는 단연 ‘시급 1만 원 시대’의 창출이 돋보인다.
이 안이 실행되는 경우, 박봉에 시달리고 있는 필자의 경우에도 분명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풍선효과의 그것처럼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이다. 최저임금을 1만 원 수준으로 올리게 되면 편의점이나 카페, 그리고 마트 외에도 소규모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될 게 뻔하다.
따라서 시급 1만 원이 되레 직원 해고의 사유와 빌미로 작용되고 설상가상 취업(시장)의 비민주화 바람(일부러 고용을 거부하는 따위의)까지 거세지지 않을까 하는 게 솔직한 걱정이다.
“그리운 님을 찿아 님을 찿아 천리 길 ~ 보고 싶어 내가 왔네 산 넘고 물 건너서 ~” 박우철의 히트송 <천리 먼 길>이다.
이 노래가 예사롭지 않은 건, 6.10 민주항쟁 30주년을 맞으며 비로소 개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시급 1만 원 시대가 하지만 자칫하면 그 목표마저 상실되어 마치 끈 떨어진 부표처럼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의 먹구름이 자욱해서다.
이는 이어지는 이 노래의 가사에 그 답이 명료하다. “그러나 변해버린 사랑했던 그 사람 ~ 한번 준 마음인데 그럴 수가 있을까 ~ 천리 먼 길 찿아왔다 돌아서는 이 발길 ~” 시급 1만 원을 싫어할 직원과 고용인은 없을 것이다.
반면 사업주의 입장에선 어쩌면 흡사 점령군인 양 거세게 밀어붙이는 새 정부의 ‘강압적 비민주주의’로까지 비쳐질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런 경우가 다발한다면 이건 바로 독재정권이었던 지난 30년 전으로의 후퇴이며, 또한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의 교각살우(矯角殺牛)까지 될 수 있음을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음은 상식이다. ‘경제적 비민주주의’를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이 땅의 빈자와 고용인들에게 ‘(더 나은 질의 삶을 목표로) 천리 먼 길 찿아왔다 (그러나 허무하게) 돌아서는 이 발길’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새 정부와 기업계와의 유기적이고 충분한 대화, 그리고 민주적 절차에 따른 해법의 도출이 시급하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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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