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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일부터 근무복이 하복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상의는 하늘색 계통의 반팔 와이셔츠만 착용한다. 그동안 넥타이에 더하여 두터운 겨울철 양복까지 걸치느라 다소 거추장스러웠던 입성이 단출해졌다.
다만 조석으로 일교차가 심한 까닭에 야근을 하자면 춥다. 따라서 아웃도어용 패딩을 옷장에 넣어두고 있다. 근무복이 바뀌기 전에는 긴팔의 흰 와이셔츠를 직접 입고 출근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출근해서는 달랑 넥타이만 매면 곧바로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복의 반팔 와이셔츠는 집에서 미리 다려 두었다가 한꺼번에 가져간다. 사흘 연속 근무인 까닭에 출근 전에 세 벌의 와이셔츠를 종이가방 따위에 ‘숨겨서’. 이 같은 이유는 연전 근무복으로 말미암아 된통 곤욕을 치른 경험의 발생 이후부터 고착화되었다.
그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돌아가 본다. 그날도 야근을 하는 날이었다. 오후 3시가 넘어서 꽤 더웠기에 잘 다린 반팔 와이셔츠만을 입은 채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5분을 기다려야 도착한다며 버스도착 안내시스템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따가운 햇살을 피하느라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저만치서 내 또래의 남자가 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다짜고짜 “아저씨 경비쥬?”라고 묻는 게 아닌가. 순간 당혹스러움이 마치 뜨거운 카푸치노 커피를 머리 전체에 뒤집어쓰는 듯 했다.
“아닌디유, 근디 아저씬 누구유?” 그 남자는 생면부지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달리 언죽번죽 말도 잘 했다. “실은 나도 아저씨랑 같은 (직업의) 경비원이유. 근디 곧 퇴직하게 생겨서유. 아저씨 직장에선 혹시 경비원 새로 안 뽑아유?”
나는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우린 아직 그런 계획 읎슈. 그리고 난 경비원 아니래두유!” 그리곤 시선을 버스도착 안내시스템으로 홱 돌려버렸다. ‘빌어먹을 버스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겨?’
그 남자는 나의 강경모드에 조금은 당황했던지 이후론 함구하였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그 남자의 정체가 새삼 궁금했기에 창문을 통해 새우 눈으로 슬쩍 훔쳐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연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버스가 두어 정류장을 지나치자 비로소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 그 사람이 처음 본 날더러 경비원이라고 한 건, 분명 내가 착용한 이 경비원 복장 때문이렷다? - / - 근데 왜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중적 대답을 했을까? -
그랬다. 그가 나에게 “아저씨 경비쥬?”라고 물었을 때 당황한 나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날렸다. 그랬음에도 곧 이어선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선 경비원을 새로 뽑을 계획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긴 뭐 예전 방송했던 모 개그 프로그램의 유명 멘트처럼 사람이 “당황하셨어요?”의 경지에 이르면 내가 지금 대체 뭔 소릴 하는 건지도 모를 만치 횡설수설하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여하간 그 이후로 여름이 되면 경비원 근무복을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종이가방 등에 ‘숨긴’뒤 직장으로 이송하여 착용하는 습관으로 고착화했다.
“해 저문 어느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에 ~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 날 ~ (중략)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가요를 듣자면 이어지는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일 년도 버틸 거야’ 라는 가사에 마음이 가 꽂힌다.
브라보(Bravo)는 이탈리아어로 ‘잘한다’, ‘좋다’, ‘신난다’ 따위의 뜻으로 외치는 소리를 뜻한다. 그렇지만 이 땅의 대부분 경비원들은 그 브라보와는 거리가 먼 직업군에 속하는 게 현실이다. 우선 박봉이 그러하며 비정규직 내지 1년 단위의 계약직이란 한계가 발목을 잡는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비정규직을 일컬어 ‘우리 시대의 슬픈 엑스트라’라고 정의했다. 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을 반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들……. 요행히 재계약을 할 때도 심한 모멸감을 느끼는 감정은 정규직은 도무지 알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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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관둬. 당신 말고도 일할 사람은 줄 서 있어”라는 등의 모욕은 정규직 노조원들에겐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의 상실이란 측면에서도 지독한 트라우마의 각인에도 다름 아니다. 이러한 윤리적 패러독스(paradox)의 빈발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고 해서 곧바로 바뀌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여전히 잠복돼 있다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경비원의 복장은 어디서 누가 보더라도 단박 드러나는 신분이자 ‘소같이 부려먹고 개같이 쫓아내는’ 자본주의의 비열한 논리도구가 아닐까도 싶다. 비록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시는 당하지 않는 경비원 사회의 구축이 새 정부에선 부디 착근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다면 내 어찌 경비원 복장을 굳이 숨기려 하겠는가. 군인과 경찰, 소방관과 간호사, 그리고 교정직과 항공사 승무원 등 제복만으로도 충분히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자긍심을 느끼는 이들처럼 그렇게.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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