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158. 브라보 마이 라이프

  • 문화
  • 가요는 삶의 축

[가요는 삶의 축] 158. 브라보 마이 라이프

경비원 복장 이야기

  • 승인 2017-06-12 00:01
  • 홍경석홍경석


지난 6월1일부터 근무복이 하복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상의는 하늘색 계통의 반팔 와이셔츠만 착용한다. 그동안 넥타이에 더하여 두터운 겨울철 양복까지 걸치느라 다소 거추장스러웠던 입성이 단출해졌다.

다만 조석으로 일교차가 심한 까닭에 야근을 하자면 춥다. 따라서 아웃도어용 패딩을 옷장에 넣어두고 있다. 근무복이 바뀌기 전에는 긴팔의 흰 와이셔츠를 직접 입고 출근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출근해서는 달랑 넥타이만 매면 곧바로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복의 반팔 와이셔츠는 집에서 미리 다려 두었다가 한꺼번에 가져간다. 사흘 연속 근무인 까닭에 출근 전에 세 벌의 와이셔츠를 종이가방 따위에 ‘숨겨서’. 이 같은 이유는 연전 근무복으로 말미암아 된통 곤욕을 치른 경험의 발생 이후부터 고착화되었다.

그때로 타임머신을 타고 잠시 돌아가 본다. 그날도 야근을 하는 날이었다. 오후 3시가 넘어서 꽤 더웠기에 잘 다린 반팔 와이셔츠만을 입은 채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5분을 기다려야 도착한다며 버스도착 안내시스템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따가운 햇살을 피하느라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저만치서 내 또래의 남자가 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다짜고짜 “아저씨 경비쥬?”라고 묻는 게 아닌가. 순간 당혹스러움이 마치 뜨거운 카푸치노 커피를 머리 전체에 뒤집어쓰는 듯 했다.

“아닌디유, 근디 아저씬 누구유?” 그 남자는 생면부지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는 달리 언죽번죽 말도 잘 했다. “실은 나도 아저씨랑 같은 (직업의) 경비원이유. 근디 곧 퇴직하게 생겨서유. 아저씨 직장에선 혹시 경비원 새로 안 뽑아유?”

나는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우린 아직 그런 계획 읎슈. 그리고 난 경비원 아니래두유!” 그리곤 시선을 버스도착 안내시스템으로 홱 돌려버렸다. ‘빌어먹을 버스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겨?’

그 남자는 나의 강경모드에 조금은 당황했던지 이후론 함구하였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그 남자의 정체가 새삼 궁금했기에 창문을 통해 새우 눈으로 슬쩍 훔쳐보았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연신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버스가 두어 정류장을 지나치자 비로소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다. - 그 사람이 처음 본 날더러 경비원이라고 한 건, 분명 내가 착용한 이 경비원 복장 때문이렷다? - / - 근데 왜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중적 대답을 했을까? -

그랬다. 그가 나에게 “아저씨 경비쥬?”라고 물었을 때 당황한 나는 아니라고 거짓말을 날렸다. 그랬음에도 곧 이어선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선 경비원을 새로 뽑을 계획이 없다는, 말도 안 되는 답변을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긴 뭐 예전 방송했던 모 개그 프로그램의 유명 멘트처럼 사람이 “당황하셨어요?”의 경지에 이르면 내가 지금 대체 뭔 소릴 하는 건지도 모를 만치 횡설수설하는 경우도 없진 않겠지만.

여하간 그 이후로 여름이 되면 경비원 근무복을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종이가방 등에 ‘숨긴’뒤 직장으로 이송하여 착용하는 습관으로 고착화했다.

“해 저문 어느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에 ~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 날 ~ (중략)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가요를 듣자면 이어지는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일 년도 버틸 거야’ 라는 가사에 마음이 가 꽂힌다.

브라보(Bravo)는 이탈리아어로 ‘잘한다’, ‘좋다’, ‘신난다’ 따위의 뜻으로 외치는 소리를 뜻한다. 그렇지만 이 땅의 대부분 경비원들은 그 브라보와는 거리가 먼 직업군에 속하는 게 현실이다. 우선 박봉이 그러하며 비정규직 내지 1년 단위의 계약직이란 한계가 발목을 잡는 때문이다.

혹자는 이러한 비정규직을 일컬어 ‘우리 시대의 슬픈 엑스트라’라고 정의했다. 같은 일을 하고도 월급을 반밖에 받지 못하는 사람들……. 요행히 재계약을 할 때도 심한 모멸감을 느끼는 감정은 정규직은 도무지 알 수 없으리라.


“싫으면 관둬. 당신 말고도 일할 사람은 줄 서 있어”라는 등의 모욕은 정규직 노조원들에겐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의 상실이란 측면에서도 지독한 트라우마의 각인에도 다름 아니다. 이러한 윤리적 패러독스(paradox)의 빈발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고 해서 곧바로 바뀌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여전히 잠복돼 있다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경비원의 복장은 어디서 누가 보더라도 단박 드러나는 신분이자 ‘소같이 부려먹고 개같이 쫓아내는’ 자본주의의 비열한 논리도구가 아닐까도 싶다. 비록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시는 당하지 않는 경비원 사회의 구축이 새 정부에선 부디 착근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다면 내 어찌 경비원 복장을 굳이 숨기려 하겠는가. 군인과 경찰, 소방관과 간호사, 그리고 교정직과 항공사 승무원 등 제복만으로도 충분히 <브라보 마이 라이프>의 자긍심을 느끼는 이들처럼 그렇게.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맥도날드·세종시립박물관' 차례로 오픈… 고운동 정주여건 좋아진다
  2. 정부 국가철도망 계획에 대전시 역량 집중해야
  3. 경주역 KTX 9월1일부터 증편
  4. 아산시, 골목형상점가 4곳 추가 지정
  5. 인공위성 기업 컨텍-AP위성, 루마니아에 지상국 시스템 전수
  1. 대전시 2037년 전력자립도 108% 달성 관건은 '주민 수용성'
  2.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6년 8월7일 금요일
  3. 대전상의, 최원철 공주시장 예방… 지역경제 협력방안 논의
  4. 대전혁신센터, 대전창업허브 입주기업 7개사 모집
  5. 표준연, 국산 반도체 공정용 가스 '품질평가 체계' 구축

헤드라인 뉴스


230쌍 예약 대전 월평동 불법 예식장…서구의회 예비부부 피해 대책 촉구

230쌍 예약 대전 월평동 불법 예식장…서구의회 예비부부 피해 대책 촉구

대전 서구의 한 무허가 예식장이 구청으로부터 형사 고발과 이행강제금 부과 등 행정조치를 받았으나, 불법 영업을 이어가고 있어 대전 서구의회가 예비부부 피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전 서구의회 청년의원 일동은 7일 오전 10시 의회 앞에서 적법한 영업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운영 중인 서구 월평동의 모 예식장에 대한 소비자 피해 방지와 유사 사례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해당 업체는 공연장 용도로 건축 허가를 받았으나 예식 영업을 했고, 일반음식점 영업 신고 없이 음식을 조리하고 제공 했다. 서구청은..

LH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1만가구 돌파…피해 인정도 4만건 넘어
LH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1만가구 돌파…피해 인정도 4만건 넘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 실적이 1만가구를 넘어섰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된 사례도 4만건을 돌파한 가운데 정부는 피해주택 매입 절차를 단축하고 계약 전 위험을 점검하는 예방 지원도 확대하고 있다. 7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세사기피해자 등 결정 및 피해주택 매입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LH가 매입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은 1만256가구로 집계됐다. 피해주택 매입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2024년 90가구에 불과했던 매입 실적은 지난해 상반기 977가구(월평균 163가구), 하반기 3924가구(월..

`위안부` 기림절, 세종서 만난다… 역사의 아픔 치유, `평화의 장`
'위안부' 기림절, 세종서 만난다… 역사의 아픔 치유, '평화의 장'

오는 10일부터 14일까지 세종시에서도 '기림절' 의미를 되새기는 사진전과 시민 행사가 차례로 열린다. 사진전은 이 기간 세종시청 1층 로비에서 선보이고, 기림의 날 시민 행사는 14일 오후 6시 30분부터 세종호수공원 앞 평화의 소녀상 일대에서 진행된다. 세종여성회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평화의 뜻을 나누기 위한 자리로 마련하고 있다. 세종여성회(대표 이혜선)가 주최·주관하고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조상호)가 후원하는 '제14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절 기억주간 사진전'은 오는 10일부터 14일까..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안전모를 착용합시다’ ‘안전모를 착용합시다’

  • 극한 폭염 속 안전한 열차 운행을 위한 선로관리 극한 폭염 속 안전한 열차 운행을 위한 선로관리

  • ‘폭염으로 단축 영업합니다’ ‘폭염으로 단축 영업합니다’

  •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