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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을 하자면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그 지하철에서 쉬 볼 수 있는 게 액자에 담겨져 있는 ‘사랑의 편지’다. 그럼 눈 여겨 보곤 하는데 역시나 글 하나 하나가 힘이 될 때가 많아서 참 좋다.
어느 날인가도 새로이 바뀐 사랑의 편지 글을 보았다. 그러자 아래에 “독자의 감동적인 글(사연)을 받는다”는 문구가 맘에 와 꽂혔다. 그래서 퇴근하자마자 즉시 써서 송고했다. 그 결과의 회신을 어제 이메일로 받았다.
액자의 사이즈에 맞게 가감첨삭을 했으니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다시 답신을 해달라고. 그렇게 정리된 글은 오는 7월이나 8월 경 전국의 지하철에 걸릴 거라고. 하지만 딱히 수정할 부분이 없었기에 re 기능을 사용하여 답신을 보냈다.
“적극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 필자가 쓴 글이 지하철에 걸리게 되면 아래에 <홍경석 / 경비원 겸 작가>로 표기될 성 싶다. 맞다. 나는 본업이 경비원이다. 그러나 하는 일은 참 많다. 무려 아홉 군데나 되는 언론과 기관 등지의 매체에 글을 올리는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의 벌이는 ‘쥐알봉수’에 불과하다. 이는 시민기자(굿모닝충청)와 객원기자(충청포스트), 그리고 정책기자(국토교통부)와 홍보블로그 기자(대전광역시) 역시 한정된 예산의 까닭으로 말미암아 원고료가 적어서다.
즉 다다익선의 구조가 아니라 월 1회 기사에 국한되는 등 한계가 명료하다는 것이다. 아예 원고료 자체가 없는 곳도 있는데 하는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을 올리는 건 필자가 평소 글쓰기에서 쾌감을 느끼는 ‘작가’인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경비원 작가의 애환(哀歡)일 수밖에 없다. 최근 김동인의 단편소설 <감자>를 한국 흑백영화로 봤다. 여기엔 주인공 복녀(윤정희)와 그녀의 20년 연상 남편(허장강)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 남편은 무위도식에 틈만 나면 잠이나 자는 실로 한심한 작자일 따름이다.
이에 그녀는 남편까지 벌어 먹이느라 심지어는 노류장화(路柳牆花) 노릇까지 불사한다. 그처럼 모진 고생을 하는 데도 결국엔 종말이 안 좋다. 중국인 왕 서방에 의해 그녀가 손에 쥐었던 낫으로 되레 죽임을 당하는 때문이다.
물론 소설이니까 그런 작위적 상황이 설정되었으리라. 이 영화를 보면서 ‘차라리 그 낫으로 무능한 남편을 죽일 것이지 애먼 중국인은 왜 죽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예나 지금이나 가난한 자는 세상살이가 참으로 힘들다는 걸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효녀가수 현숙은 <내 인생에 박수>에서 “저 달이 노숙했던 지나온 세월 눈물 없이 말할 수 있나 ~”라며 과거를 회상한다. 아울러 “인생 고개 시리도록 눈물이 핑 돌고 ~ 내 청춘은 꽃피었다 지는 줄 몰랐다 ~”며 마냥 젊은 날만 지속될 줄 알았노라고 실토한다.
그러면서도 열심히 살아온 삶이었기에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고 마무리를 하고 있다. 화무십일홍처럼 우리네 인생 역시 다 그런 거다. 다만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역시나 자신이 잘 하는 일과 즐기는 일에 있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며칠 전 필자가 독자모니터로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 3대 메이저 신문 중 하나인 모 신문에 ‘작가의 직업’이란 글이 실렸다. 여기서 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작가들이 출판 편집자나 잡지 기자, 글쓰기 지도 강사, 대학 문예창작 교수 직업을 갖고 작품 활동을 병행한다”고 밝혔다.
그럼 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한 마디로 글만 써서는 밥을 먹을 수 없는 때문이다. “따라서 전업 작가라 하더라도 작가의 직업은 늘 둘 이상이다”라는 필자의 고찰에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이다. 더욱이 전국의 그 엄청난 지하철 승객과 독자들까지 내 글과 만날 수 있다는 건 작가로서 커다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7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나 또한 열심히 살고 있는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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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