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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불출의 면구스러운 자화자찬 행색으로부터 이 글을 시작한다. 사랑과 칭찬의 금지옥엽으로 키운 딸은 초등학교서부터 전교 1등을 질주했다. 이 같은 여세는 중학교까지 이어졌다.
중학교 3학년 즈음 하루는 땅이 꺼질 듯한 고민의 숙제를 얼굴에 가득 담고 딸이 하교했다. “우리 딸한테 무슨 일 있는 겨?” 딸은 담임선생님께서 “넌 공부를 잘하니 외고에 가는 게 어떻겠니?”라고 하셨단다. 그러나 정작 딸은 그럴 맘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생각과 ‘인권’까지를 존중하는 터다. “그까짓 걸 가지고 뭘 고민해? 네 소신대로 해.” 결국 딸은 일반고를 갔고 내처 서울대로 직행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금 교육행정이 격랑의 파도를 만났다.
그 핵심 축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외국어고와 자율형 사립고(이하 외자고)의 폐지라는 것이다. 이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등 친(親) 전교조 교육감들이 폐지 움직임에 호응하고 나섰다.
반면 외자고 등 해당 학교의 학부모와 교장, 단체들은 집단 반발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자사고 학부모연합회는 기자회견에서 심지어 “정권마다 뒤집히는 교육 정책으로 말미암아 아이(학생)들이 실험용 생쥐가 되고 있다”며 공약 철회를 촉구하기에까지 이르렀다.
필자는 그 어느 편도 아니다. 또한 그럴 맘도 없다. 다만 객관적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자 한다. 우선 교육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뀌는 조변석개(朝變夕改)가 아닌 백년대계(百年大計)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기본관념조차 없이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교육정책을 아침저녁으로 뜯어고치기 일쑤였다. 그 바람에 이 땅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풍랑에 표류하는 외로운 돛단배가 되곤 했다.
외자고 폐지에 앞장서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자면 이들의 폐지 주장이 그 얼마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지 금세 드러난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딸이 대원외고를 나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두 아들은 명덕·대일외고, 전교조 광주지부장 출신인 장휘국 광주교육감의 아들은 과학고를 나왔으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딸이 한영외고와 이공 계열을 거쳐 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즉 자신들은 이미 외자고의 ‘수혜를 보았으며’ 또한 자제들이 외자고를 졸업하고 원하는 대학(대부분 명문대로)에까지 진학한 마당이니 “다른 사람들에겐 이런 기회를 아예 박탈해야 한다”는 심보(?)에서 기인한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관망이다.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은 얼마 전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는 사립학교를 마치 자기 호주머니 속 물건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외자고 폐지 움직임에 대하여 크게 개탄했다.
아울러 <수학의 정석> 저자인 그가 지난 2003년부터 평생 모은 돈 439억 원을 상산고에 쏟았으나 만일 그리 된다면(외자고 폐지 확정 시) 무용지물이 될 게 뻔한 학생들의 기숙사마저 텅 빈 상태로 거미줄을 치게 놔둘 생각이라며 분개했다.
어떠한 정부든 취임 초기엔 이른바 ‘개혁’이라 하여 이전 정부의 것들은 다 적폐(積弊)라며 뒤집고자 한다. 그렇지만 바꿀 게 있고 그렇지 않을 것이 엄존하기 마련이다. 신분상승의 사다리였던 사법시험이 5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를 대체할 로스쿨이 사시처럼 신분상승 사다리가 될 지 안 될 지의 여부는 전문가가 아니기에 생략하련다. 다만 새삼 강조코자 하는 건 교육은 정권이 바뀌면 덩달아 ‘그때그때 달라요’가 되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집에 먼지가 좀 끼었다고 해서 아예 불을 지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위에서 여식의 서울대 진학을 ‘자랑한’ 건 다 이유가 있다. 굳이 외자고에 가지 않더라도 본인만 잘 하면 얼마든지 소위 명문대를 갈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외자고는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다. 따라서 이에 따른 일반고의 상대적 박탈감 등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외자고의 무조건 폐지보다는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의 개선과 함께 일반고의 외자고 못지않은 투자와 병행한 당당한 경쟁력의 제고가 아닐까.
송대관은 <오래오래>라는 자신의 히트곡에서 “오래오래 사랑 주고 싶어요 ~ 오래오래 사랑 받고 싶어요~”라고 했다. 백년대계가 지향점이 돼야 할 교육 역시 그 본질은 오래오래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되어야 옳다.
‘공약’이라는 것은 때론 자승자박의 덫이 될 수도 있다. 합당치 않은 공약은 안 지켜도 된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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