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175.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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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175. 보릿고개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음식

  • 승인 2017-06-29 00:01
  • 홍경석홍경석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 가슴시린 보릿고갯길 ~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 초근목피에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

‘안동역에서’의 히트로 단번에 스타덤에 뛰어오른 진성의 <보릿고개>라는 노래다. ‘보릿고개’는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보리는 미처 여물지 않은 5~6월(음력 4~5월)을 뜻한다.

특히나 농촌생활에 있어 식량사정이 매우 어려운 고비를 대변(代辯)한다. 춘궁기(春窮期) 또는 맥령기(麥嶺期)라고도 불렀던 보릿고개를 비교적 풍족하게 먹고 자란 지금의 청소년들은 전혀 알 리 없다. 또한 딱히 알 필요도 없다.

배를 굶는다는 것처럼 궁상맞고 처량한 건 또 없으니까. 하지만 필자와 같은 베이비부머들은 지난했던 보릿고개 시절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혼식을 장려한 정부의 강력한 시책은 그 시절 역시 여전히 보릿고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의 소산이었다.

집에서 가져온 도시락에 일정비율의 보리가 섞여있지 않은 날엔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각오해야 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그 즈음엔 학교서 급식빵도 주었는데 이는 당시가 다들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다는 증표인 셈이다.

지독했던 가난, 그리고 개인적 인생의 곡절과 파편(破片) 따위 등으로 말미암아 중학교라곤 구경도 못해봤다. 다만 초등학교 시절엔 공부를 썩 잘했다. 따라서 학교서 상장이라도 받아오는 날이면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고 시내로 나갈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리곤 회심(!)의 짜장면과도 만났는데 때론 탕수육이란 ‘거대한’ 음식과 만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다 아는 바와 같이 탕수육은 ‘달고 신맛이 나는 고기’라는 뜻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한입 크기로 썰어 간장과 후추 등으로 양념한 후 녹말가루를 입힌 다음 기름에 튀긴다.

이어 그 위에 설탕과 식초를 넣어 걸쭉하게 만든 소스를 부어 먹는 음식이다. 한데 이 탕수육이 실은 어떤 ‘굴욕의 음식’이란 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탕수육은 아편전쟁 직후 수세에 몰린 중국인들이 영국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개발한 음식이라는 굴욕의 역사가 담겨 있다. 1842년 청나라가 영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함에 따라 홍콩은 15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에 따라 홍콩과 광저우 등지에 많은 영국인들이 이주해 왔으나 이들은 음식 문제로 불편을 겪었고 급기야 중국 측에 항의까지 하게 된다. 이에 중국인들은 육식을 좋아하는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고 서투른 젓가락질로도 잘 집어먹을 수 있는 요리를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탕수육이다.

쉬는 날에는 곧잘 아내와 함께 외식을 즐긴다. 이는 빈번한 야근 탓에 본의 아니게 ‘독수공방’하는 아내를 배려한 이 남편의 최소한의 예의다. 이러한 외식의 범주에 중식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요즘 중국음식점에 가면 이른바 ‘세트 메뉴’라 하여 A코스를 주문하면 탕수육 한 그릇에 짜장면 내지 짬뽕을 한 그릇씩 추가해주는 시스템이 성행하고 있다. 그런데 ‘보릿고개’를 뼈저리게 경험한 때문인지 필자와 아내 역시 그 A코스가 식탁에 올라봤자 채 반도 먹질 못한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속담이 전혀 낯설지 않은 이유다. 아무튼 그래서 가급적이면 면(麵)을 찾는다. 짜장면보다 간짜장을 즐기는 아내에 반해 필자는 짬뽕 대신 우동을 선호한다. 근데 이 우동 역시 필자의 개인적 감흥으론 탕수육처럼 굴욕의 음식, 아니 ‘눈물의 음식’이란 공식이 접목됨을 느끼게 된다.

쌀 음식이 발달한 우리나라에 비해 일본은 우동문화가 발달했지 싶다. 일본의 5대 우동으론 사누키 우동(讃岐うどん)과 이나니와 우동(稲庭うどん), 미즈사와 우동(水沢うどん) 외 고토 우동(五島うどん), 그리고 키시멘(きしめん)이 꼽힌다고 한다.

이밖에도 가케 우동(かけうどん)과 덴푸라 우동(天ぷらうどん)등 각종의 우동들이 맛의 자웅을 겨루고 있다는데 아직 일본엔 가보지 않은 터여서 그 실상을 알 순 없는 노릇이다.

다만 여기서 우동을 나름 ‘눈물의 음식’으로 정의한 것은 일본작가 구리 료헤이가 쓴 <우동 한 그릇> 때문이다. 소설가 구리 료헤이(くりりょうへい)는 1954년생이다. 따라서 필자와 비슷하게 ‘얼추’ 베이비부머 세대의 나이라는 생각이다.

베이비부머는 각 나라의 사정에 따라 그 연령대가 다르다. 미국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6년부터 1965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지칭한다. 우리나라에서는 6.25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에 태어난 세대를 이르고, 일본의 경우엔 1947년부터 1949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를 베이비붐 세대라 한다.

어쨌거나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우동 한 그릇>은 마치 필자의 과거와 현재를 고스란히 점철한 작품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보릿고개> 노래가 이어진다.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 아야 우지마라 배 꺼질라 ~” 너무도 가난했음에 가슴시린 보릿고갯길을 넘어야 했으며 주린 배를 잡으며 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우시던 그 어머님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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