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183. 어느 날 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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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183.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육십이더라

  • 승인 2017-07-08 00:01
  • 홍경석홍경석


하루가 다르게 그 성장세가 가파른 세종시를 찾았다. 모 정부기관에서 뽑는 시민기자의 면접 때문이었다. 비가 흩뿌리는 대전역 앞에서 승차한 1001번 BRT 시내버스는 불과 50분 만에 정부 세종청사 북측에 내려놓았다.

대전과 달리 세종시엔 무지막지한 폭염이 발호하면서 행인들에게 구슬땀을 강요하고 있었다. 다만 세종시를 가로지르는 금강만큼은 넉넉한 폭우 덕분에 수량이 풍부하여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이윽고 도착한 모 정부기관. 면접을 앞둔 사람들이 속속 도착했다.

20대에서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의 연령대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가나다 순서에 의거하여 나는 가장 마지막에 발랄한 여대생과 함께 면접을 보게 되었다. “우선 본인의 소개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면접관의 질문에 준비했던 바를 거침없이 토로했다.

“중학교라곤 문턱도 밟아보지 못 한 가난뱅이 베이비부머 세대인 올해 59세의 무지렁이입니다. 하지만 못 배운 게 한이 된 까닭에 수십 년 동안 독학과 독서로 내공을 쌓았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여덟 군데의 기관과 매체에 글을 올리는 시민기자로 성장했습니다. 소위 자식농사에도 성공했는데 제가 쓴 이 책의 발간 동기는 바로 거기서 태동했습니다.”

아울러 미리 준비한 나의 저서를 선보이는 파격의 행보까지 아끼지 않았다. “대단하십니다!”라는 칭찬이 화답으로 돌아왔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일기를 잘 쓴다고 상도 많이 받았다. 이러한 토양 덕분일까?

지금도 글을 쓰지 않으면 손이 근지러워 견딜 재간이 없다. 시민기자로 활동한 지도 어언 15년이 돼 간다. 시민기자를 처음 시작할 적엔 40대 중반의 나이였다. 그래서 시민기자의 교육이나 모임이 있어 나가면 중간축에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마저 역전되었다.

얼마 전의 또 다른 시민기자 회동에선 내가 가장 최고령자로 부상(?)했음이 이 같은 주장의 반증이다. 이런 걸 보자면 새삼 그렇게 세월의 빠름을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니 육십이더라’ 라는 말이 전혀 견루(堅壘)가 아님을 역시도 느끼게 된다.

아울러 황진이가 읊었다던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로 흘러가니 옛 물이 있을 쏘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아 가고 아니 오더라”는 세월의 무상(無常)을 주제로 한 시조가 되레 정겹다. 아울러 정수라의 <어느 날 문득>이란 가요가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어느 날 문득 돌아다보니 ~ 지나온 모든 게 다 아픔이네요 ~ 날 위해 모든 걸 다 버려야 하는데 ~ 아직도 내 마음 둘 곳을 몰라요~” 사람은 누구라도 고생의 언덕과 때론 파란만장의 험지를 순례(?)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의 지난날 간난신고는 그 어떤 사람보다 ‘월등한’ 간곤(艱困)의 길을 점철했다. 생후 첫 돌 무렵 사라진 엄마는 우리 부자(父子)에게 엄청난 고생의 길을 활짝 열어놓는 계기를 마련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무리 공부를 잘 했을망정 입학금조차 없는 가난한 집 아이를 받아주는 중학교는 전무했다. 공부 대신 돈을 벌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소년가장의 아픔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출구 없는 미로였다.

모정이 너무도 그리웠음에 비교적 빠른 나이에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그리곤 나름 최선을 경주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목수생 (乾木水生)과도 같은 가난의 덫은 지금껏 역시도 불변의 계궁역진(計窮力盡)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살고 있는 것은 두 아이가 자타공인의 효자인 덕분이다. 또한 아내 역시 가난에 이골이 난 까닭에 고침사지(高枕肆志)의 긍정 마인드로 무장하곤 그 어떤 부자(富者)조차 부러워하지 않으니 이 어찌 감사한 일이 아닐손가.

세종시에서의 면접을 흡족하게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지인 형님과 술을 나누게 되었는데 화두는 나이에 집약되었다.

“제가 오늘 면접을 보면서 느꼈지만 세월처럼 빠른 게 또 없더군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저 또한 정년퇴직 후엔 인생 이모작이란 투철한 정신으로 더 분발할 작정입니다.” 이에 형님의 덕담이 돌아왔다.

“동생은 시민기자 경력만 얼추 20년에 육박하는 베테랑 기자라는 걸 나는 잘 아네. 따라서 동생의 붕정만리(鵬程萬里) 역시 더 멋진 글쓰기에 집약하고 몰입하는 게 어떨까 싶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혹자가 이르길 사람은 착각의 동물이라고 했다.

이 말이 맞는 건 ‘돌아보니 육십이더라’라는 감흥의 더께와 일치하는 때문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큼은 나이를 먹지 않을 것이란 착각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애써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는 건, 늙은 말의 지혜(智慧)라는 뜻으로 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까지 있음을 일컫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사자성어가 강왕하게 뒤를 받쳐주는 때문이다.

면접은 끝났으니 이제 남은 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이달의 미션은 000에 대한 취재입니다. 좋은 글과 사진 부탁드립니다.”라는 낭보가 건들마(남쪽에서 불어오는 초가을의 선들선들한 바람)처럼 시원스레 도착하리라 믿는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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