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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모 출판사 사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대단한 허풍쟁이였다. 자신이 운영하는 학원에 나와 책을 잘 쓰는 법을 배우라고 꼬드겼다. 일정 기간의 글쓰기 수업을 마치고 나면 자신이 책임지고 책을 발간해 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러면서 “벤츠를 타는 건 시간문제”라고 떠벌렸다. 하지만 나는 그 사장의 말을 당최 신뢰할 수 없었다. 우선 벤츠를 타자면 월수입이 최소한 500만 원 이상은 되어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당장 먹고 죽을 약값조차 없는 터에 그 같은 상상은 충분한 망상으로 금세 귀착되었다.
다음으로, 약 두 달 여의 글쓰기 수강을 받는 금액 역시 1천만 원을 훌쩍 넘는 고액이었기에 그 역시 나로선 결코 믿을 수 없는 불신의 강(江)이었다. 이후 몇 번이나 쪽지가 왔지만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고 삭제해버렸다.
여자의 로망이 명품 백이라면 남자는 단연 외제차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랬다고 그 차가 벤츠라고 하면 왠지 그렇게 더욱 ‘있어 보인다’. 지난 6월 메르세데스 벤츠가 국내에서 7783대를 팔면서 수입차 업계 역사상 최초로 한 달 기준 최대 실적을 올렸다.
동월(同月) 일본에서 팔린 벤츠는 6500대였다고 한다. 한데 일본보다 인구도 현격하게 적은 우리나라에선 외려 더 많이 팔렸다니 이쯤 되면 한국인들의 ‘통 큰 배짱’까지를 보는 듯 했다. 어쨌든 국내 판매 수입 차 3대 중 1대가 벤츠였다는 사실엔 놀라움을 숨길 수 없었다.
동창 중에도 외제차를 타는 친구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그 친구가 부럽지 않은 건 나는 벤츠보다 더 좋은 차가 있는 때문이다. 그건 바로 시내버스다. 버스카드로 1250원만 내면 무려 4번이나 차를 환승할 수 있다.
요즘 같은 무더위 때는 에어컨까지 빵빵하여 정류장에서 흘렸던 땀방울까지 금세 뽀송뽀송 말려준다. 야근일 적엔 오후 3시경 시내버스에 오르지만 주간근무일 경우는 새벽 첫차인 05시45분 발 버스에 탑승한다.
그러자면 새벽 일터로 나가는 이들을 ‘단골손님’으로 보게 된다. 그들은 나처럼 5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의 연령대로서 한 집안의 가장 내지 주부, 그리고 어머니들이다. 늙을수록 일을 해야 건강하다는 건 상식이다. 또한 그래야 성장한 자녀들로부터도 구박을 당하지 않는다.
그렇긴 하지만 뻔한 박봉의 급여로 일을 해봤자 벤츠를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타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면 왠지 모를 서글픔의 먹구름이 마구 몰려오는 듯한 느낌을 버리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라디오를 켜고 달리는 시내버스에 앉아~ 의미도 없는 먼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다가~ (중략) 추억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박성신의 <추억으로 달리는 버스>이다.
한 달에 한 번씩 고향 죽마고우들과의 모임이 있다. 그럼 일부러 터미널에서부터 시내버스를 타고 약속장소에 간다. 차창 밖으로 그 옛날 친구들과 같이 공부했던 초등학교가 지나가고, 헐려서 사라진 방앗간 자리엔 근사한 건물이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보자면 그게 바로 추억으로 달리는 버스에 다름 아니다.
지난 7월 9일 경부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인해 50대 부부가 숨지고 8명이 부상하면서 운전기사의 ‘피로 버스’가 화두에 올랐다. 회사 근처에 104번 종점이 있는데 버스기사들을 위한 그 어떤 휴식공간조차 전무하다.
시민의 발인 시내버스를 움직이는 버스기사님들에 대한 충분한 휴식과 복지시설의 확충은 이제라도 서두를 일이라고 본다. 피로에 시달리고 시간에 쫓기는 버스는 승객들의 마음까지를 덩달아 불안으로 덜컹거리게 만든다. 시내버스는 ‘벤츠보다 좋은 차’이거늘.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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