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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춘기는 그야말로 출구 없는 미로이자 장마철의 깜깜한 먹구름과도 같았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어머니에 항상 술만 끼고 사셨던 홀아버지의 방황과 거듭되는 주사(酒邪)의 횡포…….
그러한 가장의 무기력은 급기야 나를 중학교조차 갈 수 없게 만들었다. 대신 소년가장이 되어 역전으로 내동댕이쳐졌다. 신문팔이에서부터 구두닦이에 이어 차부의 시외버스에 올라가 주전부리 따위를 팔았다.
내가 벌지 않으면 우리 부자는 고스란히 굶어야만 했던 그 시절이 나로선 영원히 망각할 수 없는 내 사춘기의 흑역사(黑歷史)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한 만치의 소득은 도무지 거둘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부자(富者)로의 진입을 완강히 거부하는 세상의 싸늘함은 럭비공처럼 날아와 면상을 들이박기 일쑤였다. 자연스레 불과(?) 열일곱의 나이에 쓰디쓴 소주의 맛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질려서 나만큼은 술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거늘.
점차로 양이 늘어난 소주는 내게 있어 고달픈 인생살이를 잠시나마라도 잊게 해 주는 일종의 진통제였다. 그 ‘진통제’에 더하여 역전에 즐비한 불한당들에게 맞지 않고자 복싱을 배웠다. 한데 어설피 배운 운동은 도리어 건달 된다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괜한 시비를 걸어 무고한 행인을 패대기치기도 다반사였으니까.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자포자기의 억하심정이 그처럼 엉뚱한 결과를 낳은 것이었다. 그렇게 암울한 시절의 사춘기를 벗어나기 직전인 열아홉의 나이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나와 달리 그녀는 한마디로 천사였다. 웃는 모습은 중국 고대 4대 미녀 중 하나였다는 서시(西施)를 닮았고 청량한 음성 또한 옥구슬이 데굴데굴 구르는 듯 했다. 자연스레 그녀에게 첨벙 빠져들었다.
그녀와의 뜨거운 열애 시절은 그래서 시계바늘에 못이라도 박아놓았는지 그녀를 보고파서 기다렸던 당시의 하루가 꼭 한 달처럼 길기만 했다. 신유는 <시계바늘>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사는 게 뭐 별 거 있더냐 욕 안 먹고 살면 되는 거지 ~ 술 한 잔에 시름을 털고 너털웃음 한번 웃어보자 세상아 ~ 시계바늘처럼 돌고 돌다가 가는 길을 잃은 사람아 ~ 미련 따윈 없는 거야 후회도 없는 거야 ~ 세상살이 뭐 다 그런 거지 뭐 ~”
그녀와의 만남은 사춘기 시절 일시적이나마 무모한 주먹질이나 해댔던 나의 경거망동까지를 근원적으로 치유케 해주는 동기까지를 제공했다. 유리조각이 박힌 것처럼 아팠던 슬픔의 가슴까지를 봉합해주었다.
4년을 연애한 뒤 가정이라는 둥지를 꾸렸다. 세상이 포기한 폐인일지라도 희망이 있다면 그건 바로 ‘가정’이라는 울타리일 터. 아들에 이어 딸까지 보게 되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용기가 활화산처럼 용솟음쳤다. 아울러 내가 받지 못하고 느낄 수 없었던 부모의 사랑까지를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퍼부었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힘인 법이다. 덕분에 두 아이 모두 사춘기 역시도 별 탈 없이 무난하게 넘길 수 있었다. 이제는 직장인이 되어 맡은 바 위치에서 확고한 존재감까지를 과시하고 있는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반면 우리부부의 이마엔 밭고랑이 깊어졌고 머리카락 역시 백발이 반을 넘긴 지 오래다. 따지고 보면 인생은 가요 <시계바늘>처럼 시계바늘로 돌고 돌다가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건 부모는 부모답게 자녀를 사랑과 칭찬으로 일관하여 미래의 동량으로 키워야 옳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인생의 끝자락에 이르러서도 “미련 따윈 없는 거야, 후회도 없는 거야!”라는 당위성의 종착역에 닿을 수 있으리라. 인생의 시계바늘은 그 누구도 결코 되돌릴 수 없음이기에.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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