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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인십색(十人十色)처럼 사람은 다들 좋아하는 게 다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가족 빼고) 친구와 술, 그리고 신문과 책이다. 매일 아침에 만나는 신문과는 별도로 서가(書架)엔 아직도 읽지 않은 따뜻한 신간이 열권이나 포진하고 있다.
신문은 새벽의 싱그러움까지를 잉태하고 찾아온다. 그중 집에서 만나는 신문은 어떤 아저씨의 오토바이 뒤에 실려서, 회사로 배달되는 신문은 역시도 어떤 아줌마와 지국장님의 오토바이 신세를 지고 있다.
집에선 신문을 주마간산(走馬看山)으로 본다. 반면 야근을 하면서 만나는 신문은 비교적 정독하는 편이다. 그래야 가뜩이나 안 가는 시간을 좀 더 빨리 가라며 재촉할 수 있어서다. 요즘 사람들은 종이신문을 잘 안 보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지하철과 시내버스에서도 종이신문을 보는 이는 얼추 ‘구석기 시대’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그렇게. 하지만 과거엔 그러지 않았다. 필자가 언론사에서 밥을 먹을 때였던 지난 2000년 당시 A일보의 발행부수는 자그마치 243만 부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과 달리 그 즈음엔 보통 4인가구가 어떤 기본이었으니 그렇다면 A일보만 약 1천만 명에 육박하는 독자가 그 신문을 본 셈이다. 따라서 이는 곧 ‘언론권력’이란 세간의 평가와도 부합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후 신문은 계속하여 발행 부수 역시 적극적(?) 감소로 돌아섰다. 얼마 전 신문 부수 공식 인증기관인 한국ABC(Audit Bureau of Circulation)협회로부터 말미암은 <2016년 기준 일간지 유료 부수 결과>가 보도되었다.
이에 따르면 A일보는 125만 4297부 인증을 받아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2위를 차지한 신문은 72만 9414부, 3위를 차지한 신문은 유료 부수 71만 9931부라고 했다. 고로 이를 2000년에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반 토막’이 난 결과에 다름 아니었다.
2000년 당시 필자는 모 언론사에서 출간하는 시사 주.월간지의 마케팅 부장으로 일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종이신문과, 마찬가지로 종이로 만든 시사 주‧월간지 역시 전성기였다. 덕분에 필자는 월 신규고객만 400~500명이나 창출하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다.
그런 까닭에 지사장님으로부터 심지어는 “홍 부장은 판매의 달인이자 전설”이라는 극존칭까지를 별도의 보너스로 받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김완선은 “이젠 잊기로 해요~ 이젠 잊어야 해요 ~”라면서 <이젠 잊기로 해요>의 가요를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좋았던 시절은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가 아닌 지난 과거였음에 다들 그렇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사람 없는 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까지 해 봤자 별무효과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젠 잊기로 해요’가 되어버린, 증발된 전설이 신문의 갈피에서 아쉽게 펄럭거린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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