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전쟁(獨蘇戰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소련이 벌인 전쟁(1941∼1945년)이다. 소련에서는 이를 대조국전쟁(大祖國戰爭)이라고 한다. 소련은 1939년 8월 독일과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1940년 가을부터 발칸 문제로 독일과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1941년 6월 22일 독일은 히틀러의 무모한 명령에 따라 180만 대병력을 투입하여 소련을 기습 공격한다. 전쟁 초기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이어 레닌그라드를 넘어 모스크바까지 진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소련의 방위력이 의외로 강하여 독일의 단기 결전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더욱이 혹독한 겨울 추위로 인해 독일군은 수세에 몰리게 된다. 1942년에 이르러 독일군은 전선을 남방으로 확대하여 8월부터 스탈린그라드를 공격하였으나 그 또한 실패하고 남부전선에 그대로 묶여 있는 상태가 된다.
그 해 11월부터 소련군은 대반격을 전개하여 1944년 1월에는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탈환한다. 이어 독일군 점령 하에 있던 동유럽 제국을 탈환하여 제2전선의 전개를 유리하게 이끌어 나간다. 내처 1945년 4월엔 독일의 베를린에 진격하였고, 5월 8일엔 독일의 무조건 항복까지 이끌어 내면서 마침내 전쟁이 끝난다.
‘독소전쟁’은 유대인 대량학살 외에도 당시 독일군 사상자의 80%(1천 3백만 명)와 더불어 소련에서는 무려 28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가 발생했다.
#2.
미일전쟁(美日戰爭)은 1941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본이 미국을 기습공격하면서 빚어진 전쟁이다. 시기가 독일과 소련이 벌인 전쟁 당시와 비슷한 이 전쟁은 당시 중립국의 모양새를 띠었던 미국이라는 벌집을 일본이 건드린 참혹한 결과로 나타났다.
일본이 이른바 작전명 ‘도라도라도라’를 앞세워 하와이에 대한 포격을 시작하면서 미국은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 공격을 진행하게 된 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전쟁 발발 즈음 미국은 일본의 철강수출을 금지했다고 한다.
이어 원유 수출금지와 미국 내 일본자산의 동결, 일본 선박의 파나마 운하 통과 거부 등의 조치를 통해 일본을 위축시키고자 했다. 이에 원유 봉쇄는 유전이 없는 일본에겐 치명적인 위협이 된 까닭에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요구에 응하여 강점한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 내지 무력 침공을 더욱 확대하여 동남아시아의 자원 획득을 시도하는 따위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따라서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격의 의도는 태평양에서의 미국 해군력을 무력화 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결과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이 나면서 ‘대일본제국’의 면모까지를 구기게 된다. 이는 우리의 8.15 해방과도 맞물리는 것이어서 더욱 의의가 크다.
요즘 영화판을 열대야 이상으로 달구고 있는 방화 ‘군함도’와 ‘박열’이 흥행 쌍끌이로 등장한 건 괜한 현상이 아니다.
#3.
한국전쟁(韓國戰爭)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이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일본의 통치 지역이었던 한반도는 군사적인 편의에 따라 38선을 경계로 남북한은 미.소 양군에 의하여 분할, 점령되기에 이른다.
적화통일에 광분한 김일성은 약 500명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고문단만을 남긴 채 철병을 완료한 남한을 기습 공격한다. 당시 북한은 소련과는 ‘조.소 군사비밀협정’을, 중공과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다수의 양국 병력까지 확보하고 있던 상태였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남한을 구하고자 미국은 일본 동경에 있던 미 극동군 사령관인 맥아더 원수에게 한국의 전선을 시찰하게 한다. 맥아더는 이후 미 국방성에 지상군 파견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세가 호전되면서 맥아더 장군은 김일성에게 무조건 항복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은 되레 중공군의 참전을 획책하면서 한국전쟁은 장기전으로 접어들기에 이른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역전되고 북한군은 다시 38선을 넘어 남진한다.
이후 어찌어찌 휴전이 성립되긴 했으되 6·25 한국전쟁이 한민족 전체에게 끼친 피해는 말할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자료에 따르면 남북한을 합친 인명의 손실은 무려 520만 명이라고 하니 참으로 엄청난 참화가 아닐 수 없다 하겠다. 따라서 이 같은 전쟁이 다시는 있어선 안 되겠다는 건 국민적 상식이다.
김일성 - 김정일 - 김정은으로 이어진 유례없는 ‘3대 세습’으로 권력을 잡은 북한 김정은의 기고만장이 연일 뉴스를 달구고 있다. 또 다시 이뤄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의 발사가 유엔 안보리에서 다뤄지고 있지만 언제까지 유엔마저 북한에 휘둘릴지 자못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위에서 독소전쟁(獨蘇戰爭)과 미일전쟁(美日戰爭)에 이어 한국전쟁(韓國戰爭)까지를 새삼 되돌아봤다. 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듯 자강불식(自強不息)의 강력한 국방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언제라도 주변국 내지 강대국에 먹잇감이 될 수 있는 게 시대적 흐름이자 역사다.
더욱이 한반도는 예부터 지정학적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득실의 주판알이 마구 튕기는 화약고와도 같았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서둘러 우리 또한 핵무장을 해야 된다는 주장을 펴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미국이 동의할 지는 미지수다. 아니 솔직히 미국을 믿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이미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고 집요하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시급한 건 바로 우리도 이젠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만무방과도 같은 북한의 독재자에게 휘둘릴 건가? 중국에게 있어 북한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인지라 결코 버릴 수 없는 ‘회심의 카드’다.
“깊은 산 옹달샘이 더러워졌다고 오염되었다고 깨끗한 물 담으면 다시 깨끗해져 ~ 그것보단 더러운 물 모두 퍼내 버린다면 다시 샘물은 깨끗해질 거야 ~” 구피의 <다 잘 될 거야>라는 노래다.
깊은 산의 옹달샘이 오염되었어도 깨끗한 물을 담으면 다시 깨끗해질지 모르겠지만 적화통일에 눈이 먼 김정은의 무지막지 행태라는 오염(汚染)은 우리의 핵무기의 개발 등 강력한 제어장치의 준비 없이는 막기 힘들다.
993년(성종 12)에 거란이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다. 거란은 장수 소손녕을 보내 항복을 강요했다. 이에 당시 외교관이었던 서희(徐熙)는 적장을 찾아가 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거란을 위해서도 좋다고 설득해 전쟁을 가까스로 막았다. 외교는 대화가 관건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라면 그 이상 노력해야 한다.
과거에 “속지 마라 소련에, 믿지 마라 미국에, 일어날 거다 일본”이란 유행어가 회자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중도(中道)적 제스처로 현혹하는 중국에도 속지 말자”를 추가코자 한다. 문재인 정부는 어서 미국을 설득하라. 다시금 전쟁이 터지면 국정농단 주역 최순실의 유행어처럼 우리 국민들은 ‘다 죽는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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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