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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서점에 가도, 도서관에 들러도 행복하다. 매달 보는 책에 '월간 좋은 생각'이 있다. 지난 9월호에선 '폴란드 접시'라는 글이 유독 그렇게 마음을 울렸다.
내용은 글을 쓴 이가 폴란드에서 살 때 겪은 일이다. 옆집에 할머니 여의사가 살았는데 북한에서 바르샤바 공대로 유학 온 북한남자를 사랑했단다. 하지만 그 남자가 갑자기 소환되면서 생이별을 했다.
그녀는 억장이 무너졌지만 북한은 의약품도 부족하다는 그 남자의 편지에 무려 수십 년 동안이나 약과 생필품을 보내주었단다. 글쓴이는 '(전방에서 복무 중인 아들을 떠올리며) 조금만 떨어져도 이토록 보고 싶은데 그녀는 긴 세월 그리움을 어떻게 견뎠을까'라며 글을 맺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만 그렁거리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올해가 가면 나도 이순의 나이가 된다. 따라서 무려 59년 동안, 그러니까 올해의 내 나이만큼이나 되는 엄청난 세월동안 나는 그리움을 가슴에 묻으며 살아왔다.
그 그리움, 아니 사실은 '미움'의 대상은 바로 다름 아닌 어머니다. 아무리 아버지의 주사가 심했다곤 하더라도 그렇지 어찌 그리 핏덩이에 불과한 겨우 생후 첫 돌 즈음의 아들인 나까지 버리고 가출한 걸까. 또한 단 한 번도 찾지 않았던 것일까…….
"당신만을 사랑하고 믿어온 이 마음을 ~ 정주고 정을 뺏고 가버린 당신은 모르리 ~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뜨거운 이 눈물을 ~ 당신은 모르리 진정한 나의 마음을 ~" 이미자의 <당신은 모르리>다.
무려 60년 가까이나 이별이 계속되었으니 어머니는 언제든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나의 당신을 향해 믿어온 이 마음을 철저히 배신한 셈이다. 어쨌건 부전자전이랬다고 나 또한 선친을 본받아 지금도 여전히 두주불사다.
하지만 아내는 입때껏 달아난 적이 없다. 어제는 아들이 사준 대하구이와 꽃게탕으로 술을 거나하게 마셨다. 쉬는 오늘 아침엔 아들의 구두를 닦았다. 모처럼 집에 온 아들이, 하지만 중요한 행사장에 가는 터였기에 실로 오랜만에 구두를 닦았던 것이다.
간난신고의 소년가장 시절 남의 구두를 닦노라면 흡사 나의 박복한 인생을 닮았다고 느낄 때도 없지 않았다. 까만 구두약의 색깔과 같이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먹빛 미래처럼 그렇게. 그래서 한 때는 불땔꾼(심사가 바르지 못하여 하는 짓이 험상하고 남의 일에 방해만 놓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처럼 막 살았던 적도 있었다.
공연히 애먼 사람을 패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개과천선(?)하게 된 건 오로지 아내 덕분이다. 내 사랑의 분신인 듬직한 아들에 이어 금지옥엽 딸까지 보게 되자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모님의 사랑까지를 두 배 이상으로 돌려주리라 다짐했다.
비록 돈은 없었지만 사랑과 칭찬을 행사하는 데는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일정을 잘 마친 아들은 아까 회사와 집이 있는 경기도 H시로 올라간다며 전화가 왔다. 이제 다음 달이면 추석이다.
그럼 아들에 이어 딸과 사위도 집에 올 것이다. 나는 죽을 때까지도 여전히 '아들바보'에 이어 '딸바보', 그리고 '사위바보'에 이어 '며느리바보'까지 될 것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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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