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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 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란 시다. 이 시를 읽노라면 차마 간장게장을 먹을 수조차 없어진다. 한데 꽃게 엄마는 왜 알들에게 "불 끄고 잘 시간이야"라며 거짓말을 했을까. 이는 자신으로선 당면한 죽음과 최후를 어찌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만 알들에겐 차마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음에 그리 했지 싶다.
이러한 꽃게 엄마의 어떤 톨레랑스(tolerance), 즉 용인(容忍)과 관용(寬容), 그리고 아량(雅量)과 내성(耐性)은 비록 작위적이긴 하되 만인의 심금을 울리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평소 간장게장은 비린내가 싫어서 안 먹는다.
그러나 요즘 한창 제철인 꽃게찜이나 얼큰한 꽃게탕이라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간장게장의 슬픈 운명과 톨레랑스 얘기를 꺼낸 건, 지난 시절 소년가장 시절의 고생담을 잠시 되돌아보기 위함에서다.
고향 역전에서 구두닦이를 하기 전엔 신문팔이에 이어 시외버스에 올라선 껌도 팔았다. 그런데 이미 껌을 씹고 있는 사람에겐 별무효과(別無效果)였기에 모나미볼펜을 함께 팔았다. 최초의 출시가 지난 1963년이라고 하니 모나미의 역사 또한 내 나이와 얼추 비슷한 셈이다.
그렇게 껌과 볼펜을 함께 팔자면 때론 불쌍하다며 아무 것도 받지 않고선 당시로선 거금이었던 1천 원이나 주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부모의 재력과 능력이 너무 좋아서 아무런 노력과 고생을 하지 않음에도 풍족함을 즐길 수 있는 자녀들을 지칭하는 '금수저' 출신은 먹고 살 걱정을 안 해도 된다.
반면 나와 같은 '완전 흙수저'는 만날 뭐 빠지게 일해 봤자 늘 그렇게 쪼들리기 일쑤다. 언젠가 나처럼 초등학교 졸업 후 껌팔이 등으로 전전했던 사람이 중·고교를 검정고시로 통과하고 내처 사범대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는 과거사를 지닌 입지전적 교장선생님의 기사를 봤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나 또한 공부를 왜 아니 하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병이 든 아버지와 먹고살자면 당시의 공부는 내게 있어 정말이지 사치의 영역이었다. 지인 중에 딱히 하는 일도 없이 그러나 고가의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이가 있다.
앞으로 물려받을 유산도 많아서 그처럼 여유작작하다고 했다. 반면 나는 박봉의 경비원인지라 허구한 날 쪼들리기 일쑤다. 추석연휴가 다가온다. 하지만 추석에도 근무해야 하는 까닭에 반갑지 않다.
다만 사랑하는 아이들이 집에 온다는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구태여 자위(自慰)의 파롤(parole)로써 반가움을 동원코자 하는데 이게 물론 실정법 위반은 아니겠지?
"그 옛날 아버지가 앉아있던 의자에 ~ 이렇게 석고처럼 앉아 있으니 ~ 즐거웠던 지난날에 모든 추억이 ~ 내 가슴 깊이 밀려들어요 ~ 언제였나요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 아버지는 여기 앉아서 ~ 사랑스런 손길로 나를 어루만지며 정답게 말하셨죠 ~"
정수라의 히트송 <아버지의 의자>다. 껌팔이에 이어 신문팔이도 모자라 구두닦이 등으로 연명해야만 했던 지난날의 소년가장은 이제 이순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건, 사랑스런 손길로 아이들을 어루만질 따스한 손을 지니고 있다는 거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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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