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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자료들을 보면 지난 '역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사진은 당구를 치는 장면이다. 1988년도에 찍은 걸로 봐서 얼추 30년이 다 된 사진이다. 그때나 지금 역시도 나는 당구를 못 친다.
어쩌다 당구를 친다손 쳐도 80점으로 시작하는데 소위 '삑사리'라고 하는 큐 미스가 더 난다. 그래서 이기기보다는 지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대저 지는 건 의식적으로 기피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지금도 당구는 가까이 하지 않는다.
하여간 이 사진을 찍었을 당시는 어떤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할 때였다. 그 즈음 아침부터 비가 내리면 영업사원들은 회사 근처의 당구장으로 모였다. 그리곤 짜장면을 시켜먹으면서까지 온종일 죽때렸다.
처음엔 뭘 모르고 부화뇌동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깨달았다. 그처럼 농땡이나 치는 직원들과 어울린다는 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거라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지만 영업사원은 반대였다.
영업사원은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었)다. 따라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처럼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떼거리' 하이에나가 아니라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외로운' 표범"이 되어야만 했다.
하이에나는 정글의 청소부다. 비겁함의 상징으로도 곧잘 비유되는 하이에나는 일껏 잡아놓은 사자나 호랑이의 먹잇감까지 채뜨리는 얌체족이다. 반면 표범은 비록 굶어 죽을지언정 신사(紳士)의 품위를 잃지 않는 동물이다.
이런 까닭에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그동안 노래방에 가서도 그야말로 '원 없이' 불러봤다. 애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다. 그로부터 혼자서 철저하게 영업활동을 하였는데 덕분에 줄곧 높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업사원의 처우는 형편없었다. 말로는 "영업만이 살 길이다!"를 주창하면서도 정작 그들이 먹고살만한 토양을 마련해주는 경영주(사장)는 없었다. 예컨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도래해도 보너스는커녕 싸구려 비누세트나 달랑 하나 주는 게 고작이었다.
세월은 여류하여 영업사원을 그만 둔지도 꽤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라는 사고방식, 즉 영업사원적 마인드엔 변함이 없다.
여전히 보잘 것 없는 이 풍진 세상이 그나마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처럼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는 때문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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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