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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되었으니 직원들도 응당 귀향길에 올라야 옳았으리라. 그래야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을 뵙고, 가족친지들과 어울려 술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乙로 치부되는 직업군의 사회적 약자들은 추석연휴의 휘영청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궁벽(窮僻)에 내몰릴 따름이었다.
어쨌거나 한가위에 가장 보고픈 이는 단연 '어머니'다. 이는 우리 집의 경우에 있어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아이들이 온다고 하니 아내는 추석 전부터 고무되어 바리바리 장을 봐왔다.
가뜩이나 고삭부리 아낙이거늘 두 손이 떨어져 나갈 만치 장을 본 실로 우둔한 아내가 아닐 수 없었다. 한데 사실은 그런 '재미'가 엄마라는 직업의 어떤 쾌감이 아닐까도 싶다. <처음처럼 신영복의 언약> (저자 신영복/ 출간 돌베개) P.147에 보면 [그리움]이란 글이 더욱 눈길을 끈다.
- "미술 시간에 어머니 얼굴을 그린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그 친구에게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림은 '그리워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뿐입니다." -
실로 촌철살인의 명구(名句)가 아닐 수 없었다. 추석에 가장 그리고자 하는 대상은 단연 어머니일 터. 초등학교 시절의 언젠가, 급기야 나의 신분이 '엄마 없는 아이'라는 사실로 발각된 적이 있었다. 이에 노골적으로 괄시하고 깔보는 급우마저 생겨났다.
그로부터 극심한 우울증이 시작되었다. 더께처럼 찌든 가난이야 그렇다 칠 수 있었지만 엄마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손가락질까지 받는다는 건 참을 수 없는 모욕의 극치였다. 하여 공부보다 나를 우습게 하는 녀석들을 향한 응징이 우선이었다.
방과 후 학교 뒤편으로 불러내서 두들겨 팼던 건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예리한 칼에 베인 듯 아팠던 건,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이 난다'는 의미의 야심성유휘(夜深星愈輝)처럼 세월이 깊을수록 모정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만 간다는 걸 새삼 절감했다.
최근 일독한 신영복 선생의 '언약'을 담은 글과 그림을 수록한 잠언집인 『처음처럼』은 요즘 한창 인기몰이 중인 캘리그라피의 전형과 정수까지 보여주고 있어 이 책에 대한 소유감(所有感)이 더욱 묵직하다.
'신영복의 서화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2007년 초판이 출간되었던 이 책은 근 10년 만에 새롭게 개정신판으로 출간되었다. 신영복 선생이 직접 쓰고 그린 글과 그림 가운데 그 고갱이들을 가려 모았기에 누구라도 쉬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처음처럼'은 소주 브랜드로의 제자(題字)로 써줬대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 대가로 받은 1억 원을 마지막으로 재직했던 성공회대학의 장학금으로 기탁했다고 해서 더 존경스러웠던 이 책은 언제 들여다봐도 저자의 정의(情意)가 읽히는 '모본단(模本緞 = 짜임이 곱고 윤이 나며 무늬가 아름다운 비단)'의 집합이다.
P.25의 [꽃과 나비]를 한 번 더 들여다본다. - "꽃과 나비는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저렇게 아름답게 자라지 않느냐." 어린 아들에게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신 분이 있습니다. -
쥐뿔도 해준 게 없었으되 가난뱅이 이 아비를 탓하지 않고 오로지 자강불식으로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둔 아이들은 그렇다면 '꽃과 나비'의 전형(典型)이 아닐까 싶다. 어제도 효자 아들과 딸에게서 우리부부의 안부를 묻는 문자가 왔다. "모진 바람 불어오고 휘몰아쳐도 ~ 그대는 나를 지켜주는 태양의 사나이 ~ 가진 것은 없다지만 순정은 있어 ~ 너와 나는 나와 너는 꽃과 나비지 ~" 방주연의 <꽃과 나비>다.
'아픈 기억을 잃는 것은 지혜이며 아픈 기억을 대면하는 것은 용기다'라고 한 저자의 금언을 되새긴다. 아이들이 참 고맙다. '처음처럼' 우리 앞으로도 불변하게 사랑하자꾸나. 눈보라가 몰아쳐도 비가 내려도 아이들은 언제나 나를 지켜주는 따뜻한 태양의 감사함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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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