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286. 남의 속도 모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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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286. 남의 속도 모르면서

예절이 상실된 세상이라지만

  • 승인 2017-10-3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하춘화512
"미안하지만 담배 하나만 얻을 수 있을까요?" 젊은 친구 하나가 그렇게 다가왔다. "아, 댁이 새로 입사해서 일한다는 사람이구려?" "네, 맞습니다." 흔쾌히 담배를 하나 꺼내 주었다.

한데 그게 '빌미'가 되었다. 툭하면 찾아와선 다시금 담배 '구걸'을 하는 그 젊은이의 정체가 궁금했다. 직장상사에게 물으니 리모델링한 3층의 중요한 시설물 경비로 새로 뽑은 인력이라고 했다.

같은 직장이라곤 하되 업무가 전혀 다른 장르인 까닭에 딱히 마주칠 일은 없는 상태(였)다. 그렇긴 하더라도 그렇지 한 눈에 보기에도 내 아들보다 어려보이는 친구가 잊을만 하면 찾아와 담배를 달라니 시나브로 기가 막히기 시작했다.

의지가 약한 터여서 여태 담배를 못 끊고 있다. 따라서 광고 등지에서 금연을 하라고 '협박'을 하고, 마트에서 담배를 한 갑에 4천 원 이상이나 주고 사자면 늘 그렇게 이유 모를 죄책감까지 들곤 한다. 제기랄, 이놈의 담배는 애당초 만나는 게 아니었는데……!

그러면서 철없던 지난 시절 담배를 배웠던 때가 어떤 흑역사(黑歷史)의 껄끄러움으로 다가오기 일쑤다. 여기서 말하는 '흑역사'는 없었던 일로 해버리고 싶은 과거의 일을 가리킨다. 야근을 하던 어젯밤의 일이다.

문제의 그 친구가 또 다가왔다. 마치 절해고도인 양 별도로 관리 운영하는 시스템인지라 3층 경비원들은 여간해선 야간 근무자가 상주하는 1층 안내데스크엔 오지 않는다. 아무튼 그 젊은이는 다시금 내 주변을 배회하면서 무언가를 부탁하려는 기색으로 역력했다.

'척 보면 삼천리'랬다고 나는 그가 또 다시 담배 부탁을 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미안하지만 담배 좀 하나만……" 순간 무언가 쐐기를 박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늘은 내가 000씨한테 쓴소리를 한 마디 하렵니다. 올해 나이가 어찌 됩니까?"

"서른하나입니다." 참았던 질타를 퍼부었다. "내 아들이 서른다섯이오. 그래서 하는 말인데 000씨는 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도 평소 그처럼 담배를 꿔달라고 합니까? 입사한지도 한 달이 넘었고, 또한 급여를 받은 지가 얼마나 됐다고!"

그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막무가내 노가다판이라고 해도 이런 경우는 없는 겁니다. 담배 태울 경제적 능력이 없다면 나 같았음 자존심 상해서 벌써 끊었소! 아무튼 나로선 이게 당신한테 주는 마지막 담배요. 다시는 이런 부탁 하지 마쇼!"

어려서부터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래서 또래들이 중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처서판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다. 더 지나선 소위 '노가다'를 했다. 비록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함께 일하는 어르신들 앞에서 담배를 태울 수 있는 특권(?)만큼은 '합법적으로' 주어졌다.

그렇긴 했더라도 언감생심 그 어떤 어르신들께도 감히 담배를 꿔달라곤 할 수 없었다. 그건 예의와 상식에도 크게 어긋날 뿐 아니라, 금세 "싸가지 없는 놈"으로 찍히는 자충수의 부메랑이 되는 때문이었다.

담배는 마치 불륜의 마녀(魔女)와도 같아서 처음부터 아예 안면조차 트지 않는 게 상책이다. 다만, 이미 그의 포로가 되었다손 치더라도 어르신에게 담배를 꿔달라고까지 하는 건 상당한 결례다.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하는 노동을 일컬어 쉬 '노가다'라고 한다. 이는 또한 행동과 성질이 거칠고 불량한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일본어 '도카타(dokata = 土方)'에서 유래된 이 말은 일본말의 잔재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도 무언가 부정적 표현을 하자면 이 용어가 자주 인용되는 게 현실이다. 예컨대 "이건 알바가 아니라 차라리 노가다야!"라는 따위의 푸념이 그 방증이다. 기왕지사 배운 게 담배라면 하는 수 없다.

금연을 하면 좋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므로 그걸 "하라 마라"의 범주에선 빼겠다. 다만 새삼 강조코자 하는 건, 어르신에게 담배를 꿔달라고까지 하진 말자는 거다. 아무리 예절이 상실된 세상이라지만 아버지에게 담배를 달라는 자식은 여태 못 봤다.

"왜 나를 잡나요 왜 나를 잡나요 ~ 남의 속도 모르면서 (중략) ~ 나를 나를 왜 자꾸 잡나요 ~" 하춘화의 <남의 속도 모르면서>라는 가요다. 가뜩이나 비싼 담배를 거저 달라고 나를 자꾸 잡는 사람은 정말 싫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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