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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가 말했다는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에 가라"는 대목과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중소기업인들은 경쟁해 나갈 근본적인 소양이 없다"는 부분이다. 프로필을 검색해보니 그와 나는 같은 년도에 출생한 베이비부머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세대로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다음 중 하나의 극단적 팔자로 양분된다. 비교적 잘 살거나, 아님 지독하게 못 살거나. 이는 학력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데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당시만 하더라도 3분의 1은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물론 개중엔 주경야독 따위로 신분상승을 이룬 사람도 적지 않을 터다. 하지만 대부분은 먹고살기에 바빴기에 생업 외의 공부라는 건 사실 사치로 분류되었던 게 현실이었다. 따라서 홍종학 장관 후보자의 서울대 운운 발언은 "민중은 개돼지와 같다"는 폭탄발언을 하여 자리서 쫓겨난 교육부 고위 공직자의 경거망동을 연상케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최근 초등학교 동창이자 기업인인 어떤 친구가 그간의 혁혁한 전공으로 마침내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 친구가 대학까지 졸업했는지의 여부까진 모르겠다. 어쨌거나 서울대를 나오지 않은 건 분명하다.
그래서 얘긴데 그 친구 앞에서 "서울대(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기업인은 소양이 없다"고 한다면 그 친구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소양(素養)은 평소 닦아 놓은 학문이나 지식을 의미한다.
한데 그 '소양'이란 게 서울대나 기타의 명문대만 달랑 졸업한다고 해서 터득되고 쌓아지는 것일까? 잘 배웠기에 대학교수를 하다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까지 한 사람이라지만 입이 있다고 그처럼 막말을 한 때문에 그는 지금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홍 후보자에 대한 '쪼개기 증여' 등의 증여세 납부 방식과 함께 거액이 들어간다는 딸의 특목중 입학 건 역시도 우리네 서민들로선 도무지 감당할 수도, 또한 이해할 수 없는 '딴 나라'의 무지갯빛 환상일 따름이다.
일국의 장관이라면 가문의 명예로까지 등재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관건이 되는 건 스스로의 자기반성과 고찰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장관이 좋다지만 깜냥이 안 된다면 '그까짓 거' 하면서 그 자리를 박차는 것도 남아라면 못할 게 뭐가 있으랴.
한 마디 더. 나는 비록 중학교조차 가지 못한 베이비부머지만 소양만큼은 만석꾼 이상으로 많다고 감히 자부하는 터다. 소양은 학력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나훈아는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에서 "간간이 너를 그리워 하지만 ~ 어쩌다 너를 잊기도 하지 ~ 때로는 너를 미워도 하지만 ~ 가끔은 눈시울 젖기도 하지 ~"라며 지난날을 회고한다.
세상에 많이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허나 상황이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처럼 도무지 그리 안 되었기에 못 했던 것임을 왜 시빗거리로 삼았단 말인가. 자고로 입은 화의 근원이라고 했다(口是禍門).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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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