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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00000 언론사의 객원 논설위원입니다." "아, 그렇군요." 아들이 며느릿감에게 나를 어찌 소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본업인 경비원으로 알려주었는지, 아님 그날 준 명함처럼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기자라고 했는지는 일부러 물어보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명함이 적지 않다. 우선 00000 언론사의 객원 논설위원을 필두로 월간 00000 취재본부장이 그 다음이다. 이어 정부기관인 00000의 정책기자와 지자체인 0000의 홍보블로그 기자(시민기자의 개념)가 기다리고 있다.
이밖에도 또 있지만 자화자찬의 농도가 짙은 듯 하여 생략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아들인 김동선 씨가 만취 상태로 변호사를 때리고 막말을 퍼부어 논란이 되었다는 부분에 대하여 '310화. 엄마의 일기'에서 비판한 바 있다.
한화그룹은 중소기업이자 프랜차이즈 업종이 아닌 굴지의 대기업 집단이다. 따라서 소위 오너리스크로 인한 소비자 불매운동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지금도 김 회장의 셋째아들이 괘씸의 용광로인 연유는 대형 로펌의 신입 변호사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외에도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고 물으며 오만방자했다는 부분이 자꾸만 귀를 거슬러서이다.
심지어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변호사들에게까지 "허리 꼿꼿이 펴고 앉아라."라는 폭언까지 했다니 이쯤 되면 그야말로 '막가파 중의 막가파'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시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는 경상도 사투리의 말은 곽경택 감독의 2001년 작품인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였다.
나는 직업이 박봉의 경비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경비원은 사실 중책(重責)의 직장인이다. 내 허락이 없으면 처음 방문한 사람은 감히 건물의 그 어느 곳도 출입이 불가하다. 또한 내가 툭하면 야근을 하기에 다른 직원들은 퇴근하여 집에서 편히 쉴 수도 있는 것이다.
경비원으로 입사하기 전에는 언론사와 출판사에서 20년 이상 밥을 먹었다. 덕분에 오늘날 투잡 쓰리잡으로 언론사에 글을 올리는가 하면 이 칼럼의 집필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김 회장의 셋째아들 문제가 불거지면서 뉴스 검색어에서까지 톱(Top)을 달리자 비난의 불길은 급기야 피해자 변호사들에게까지 튀었다.
이를테면 "왜 그런 망나니 같은 청년에게 당하고도 입을 닫고 있냐?"라느니 "변호사는 돈만 주면 악마의 변호까지 맡는다더니 그 말이 하나도 안 틀리네" 따위의 비웃음이 바로 그 방증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까마득한 과거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라고 배웠다.
하지만 지금도 이 말을 그대로 믿는 '멍청한' 국민이 있을까? 전태일(全泰壹) 열사가 열악한 조건의 평화시장에서 일하다가 겨우 스물둘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랐던 때가 지난 1970년 11월 13일이다.
그가 분신 항거한 지 47년이나 지났건만 한국의 노동시장 현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게 현실이다. 김동선과 같은 있는 자들의 '갑질 행태'는 여전하고 경비원은 박봉에다 1년 단위의 계약직이란 변방으로 밀려나 있다.
설상가상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이란 카드에 지레 겁을 먹고 만만한 경비원부터 해고하는 기업과 아파트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적 엄동설한의 한파인지라 나는 진작부터 글쓰기로 투잡, 쓰리잡의 영역을 개척해왔던 것이다. 전태일이 일했던 평화시장에는 전체 인원 2천 명에 공용 화장실이라곤 고작 3개밖에 없었다.
그처럼 말도 안 되는 노동자에 대한 핍박 등은 급기야 '분신'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강요했음은 구태여 사족의 강조일 것이다. 전태일과 나는 공통점이 많다. 초등학교 중퇴의 그처럼 나 또한 초등학교조차 겨우 졸업했다.
전태일이 노동자에 대한 극도의 냉대에 몸으로 항거한 반면, 나는 글로써 부당한 현실을 조금이라고 개선코자 노력해왔노라 감히 자부한다. 결론적으로 김 회장 셋째아들의 경거망동 일파만파는 재벌의 자식이라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웅크리고 있었다.
'골프와 자식은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기는 하되 이는 핑계에 불과한 면피성 발언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봄에도 우린 겨울을 말했죠 ~ 우리들의 겨울은 봄 속에도 남아있다고 ~" 김세화의 <겨울 이야기>라는 곡이다.
이 노래에선 겨울을 자못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지만 경비원에게 있어 겨울은 고통의 계절이다. 눈이 쏟아지면 치워야 하고 야근 때는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떤다. 고뿔에 한 번 걸리면 봄이 올 때까지는 잘 낫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경비원이란 직업에 애써 긍지를 갖고 책임감까지 스스로 부여하는 건 어쨌든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 감사하다는 안도감에서 기인한다. 내게 있어 겨울을 녹여줄 수 있는 '사랑'과 몰두의 요체는 바로 글쓰기다.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는 질문에 "넵, 저의 아버지는 작가 겸 기자이며 또한 경비원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답하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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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