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는 삶의 축] 315. 휴식 같은 친구

  • 문화
  • 가요는 삶의 축

[가요는 삶의 축] 315. 휴식 같은 친구

욕쟁이 친구의 비밀

  • 승인 2017-12-0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김민우
강력본드보다 점착력이 강했던 끈적끈적한 가난이 원수로 작용했다. 그래서 중학교라곤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 또래들은 중학교에 갈 때 역전에서 구두를 닦았다.

공부 잘 했던 아들을 방기하고 술만 드시는 아버지가 싫어서 야반도주로 상경했다. 선배의 소개로 철공장에 들어갔으나 산재사고가 빈번하여 더 있을 수 없었다. 백기투항으로 귀가했으나 아버지는 여전했다.

한데 따지고 보면 엄마도 곁을 지켜주지 않는 그런 홀아버지는 나보다 더 측은했다. 세월이 더 지나 방위병으로 입대했다. '똥방위'라며 놀림을 받았지만 꿋꿋이 견뎠다. 전역을 했는데 더 이상 구두를 닦든가 노동을 할 순 없었다.

취직을 결심하고 전봇대의 구인광고를 훑었다. '창립사원 모집'이라는 델 찾아가니 영어회화 교재와 테이프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중학교를 못 갔으니 영어를 알 리 없었지만 왠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다행히 면접까지 잘 치르고 합격증을 받으니 천하를 다 얻은 듯 했다. 낮엔 영업을 하고 밤에는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친구의 집을 찾아가 영어를 배웠다. 그러한 열정 덕분에 일약 전국 최연소 영업소장으로까지 승진했다.

소장이 되니 관리하는 직원들이 십여 명 되었는데 한 직원이 하루는 대량판매를 목적으로 그만 욕심을 크게 냈다. 종업원이 엄청 많은 대형 식당 사장을 만나선 나를 미국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소장님으로 소개했단다.

"그러니 소장님이 모 월 모 일 몇 시까지 저랑 그 식당에 가셔서 영어 잘 하는 방법의 강의를 해 주셔야겠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판매를 많이 하고자 꾸민 수작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승낙했다.

그날로부터 우리 회사에서 만든 영어교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금 달달 외웠다. 미국인이 녹음한 회화 테이프 역시 가급적이면 본토 발음에 가깝게끔 따라했다. 이윽고 '결전'의 날,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데 부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조차 의식하지 못 할 만큼 나는 당시 혼까지 빠져있었다. 다만 어서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탈출하는 게 최대의 소원이었다. 그러자면 강의시간을 최대한 단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약속한 강의가 또 있어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며 질문이 쏟아졌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영어를 잘 할 수 있을까요?" "네, 그건 이 교재로 공부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임기응변을 무기 삼아 후줄근하게 쏟아지는 곤혹의 땀과 함께 밖으로 냅다 뛰었다. 저녁에 귀사한 직원은 내가 가고 난 뒤에도 식당의 종업원들은 발음까지 훌륭했다며 날 향한 칭찬이 자자했다고 전했다. "말도 안 돼."

세상의 모든 일은 어떤 공통현상이 있는데 그건 처음이라 힘들다는 편견일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그 관건은 바로 모사재인(謀事在人), 즉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에게 달렸으니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일을 힘써 꾀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고작 초졸 학력의 베이비부머가 오늘날 언론사의 객원 논설위원이 되고 책까지 발간한 작가까지 되었음은 '모사재인'의 힘과, 어떠한 경우에도 피하지 않은 돈키호테 적 무모함 덕분이었다.

그렇긴 하되 이러한 자화자찬의 이면에도 숨은 자탄(咨)과 자학(自虐)이 없는 건 아니다. 그건 바로 때론 '욕쟁이'로 돌변하기도 일쑤라는 사실이다. 평소 술만 취하면 전화를 해 오는 친구가 있다.

한데 이 친구 역시 욕쟁이인 까닭에 멀쩡한 정신에선 전화를 할 리 없다. 얼마 전에도 만취한 친구가 심야에 전화를 해선 마구 욕을 해댔다. 나 또한 반가운 마음에 똑같이 응수(?)했다.

절친한 친구간의 욕에는 사실 적의(敵意)가 없다. 되레 친밀감을 더욱 두텁게 만든다는 요소가 함유된다. 그 친구가 오늘 문자로 "넌 다 좋은데 그놈의 욕 좀 하지 말았음 좋겠다"는 다소 엉뚱한 궤변을 보내왔다.

"사돈 남 말 하네. 죽으면 욕도 술도 다 끊어"라고 답신을 보냈다. '모사재인'과 더불어 돈키호테와 같은 저돌(?突)을 양수겸장으로 삼으며 치열하게 살아왔건만 사는 꼬락서니는 여전히 후줄근하다.

이처럼 세상살이가 마음대로 안 되니까 푸념과 원망의 어떤 지렛대로 욕도 하는 거다. 어쨌거나 친구야, 욕을 할 수 있는 친구라도 있을 때가 좋은 거다. 내 맘 알지? 넌 나의 휴식 같은 친구니까.

"내 좋은 여자 친구는 가끔씩 나를 보며 얘길 해 달라 졸라대고는 하지 ~ 남자들만의 우정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하다며 말해달라지 ~" 김민우의 <휴식 같은 친구>를 듣는다. 어느덧 한 해의 해넘이인 12월이다. 송년회 때 욕쟁이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홍경석-인물-210
홍키호테-210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박헌오의 시조 풍경-32] 시의 몰골
  2. 신문 지면으로 본 60년 전 대전의 한가위 풍경! "급증한 귀성객, 물가 걱정 속에서도 타오른 영화와 온정의 물결"
  3. 고속도로 통행료 20번 넘게 안 낸 차량 37만대…4년 새 두 배
  4. 대전 국공립 중학교 내 정보교사 배치 10곳 중 4곳 불과
  5. 천안시 성거읍 주민자치회, '천흥사지 역사·문화유산 사진전' 개최
  1. 이서영 충남경찰청장, 귀성길 교통안전 집중 점검
  2. 몸짓으로 채우는 원도심…대전ART마임페스티벌 10월 16일 개막
  3. 빈집털이 예방부터 절도범 검거까지…대전경찰, 추석 연휴 맞춤형 순찰·신속 대응
  4. 천안법원, 골프채 판매사기 혐의 '징역 1년'
  5.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 추석 맞이 민생활동… "이웃에게 따듯한 온기를"

헤드라인 뉴스


갑천습지에 일제 금 수탈현장…동굴입구와 산책로 기초 드러나

갑천습지에 일제 금 수탈현장…동굴입구와 산책로 기초 드러나

대전 갑천습지와 도솔산에 일제강점기 금을 수탈한 광산의 존재가 근래에서야 알려진 가운데 동굴 입구로 추정되는 장소가 또다시 발견됐다. 또 갑천습지 산책로가 유실된 지점에서 돌을 차곡차곡 쌓아 하단 기초를 다진 흔적이 드러나면서 이곳에 산책로가 일제의 금 광산에서 채석한 돌을 운반하는 목적으로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974년까지 관찰되는 광산 입구 26일 중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전 갑천습지와 도솔산 그리고 월평공원이 있는 서구 월평동에서 광산으로 개발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동굴 입구 추정지가 새롭게 발견됐다. 갑천을..

형소법 개정 일주일 앞두고… 명칭부터 수사 인력 어떻게 달라지나
형소법 개정 일주일 앞두고… 명칭부터 수사 인력 어떻게 달라지나

내달 2일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과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앞두고 대전지역 형사사법 체계에도 큰 변화가 시작된다. 가장 큰 변화는 검사의 직접 수사와 보완수사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사가 검토한 뒤 필요한 부분을 직접 추가 수사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검찰청 역시 폐지되고 대전지검과 대전고검은 각각 대전지방공소청과 대전고등공소청으로 전환된다. 이에 따라 대전경찰의 수사 부담과 책임은 한층 커질 전망이다. 일반 형사사건의 1차 수사를 맡은 경찰 단계에서 사..

대전 국공립 중학교 내 정보교사 배치 10곳 중 4곳 불과
대전 국공립 중학교 내 정보교사 배치 10곳 중 4곳 불과

중학교 정보 수업 시수가 두 배로 늘어 2027년이면 전 학년에 적용되지만, 국·공립 중학교 세 곳 중 한 곳에는 정보교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대전을 비롯해 강원, 전남, 전북 등의 지역에서는 정보교사 배치율이 절반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북 익산시을, 국회 교육위원회)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6년 3월 1일 기준 전국 국·공립 중학교 2657곳 가운데 정보교사가 배치된 학교는 1706곳(64.2%)에 그쳤다. 나머지 951곳(35.8%)은 정보교사 없이 정보 수업을 운영..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