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달콤쌉싸레한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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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달콤쌉싸레한 외로움

  • 승인 2018-01-26 09:3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호퍼 3
에드워드 호퍼의 '누워 있는 누드'를 보고 그렸다. 호퍼는 현대인의 고독을 잘 표현한 화가다. 그림= 우난순 기자
지난해 늦가을, 볕 좋은 휴일에 대청호변을 하루종일 걸었다. 그런데 중간에 복병을 만났다. 호숫가 어느 마을에 들어갔다가 두시간 넘게 발목을 잡혔다(?) 간신히 빠져 나왔다. 절집 같기도 무당집 같기도 한 조그마한 집이 햇살 좋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길래 불쑥 들어갔다. 집 주인은 이제 도에 입문한, 일테면 어중간한 스님이었다. 대청호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뜰에서 스님은 나를 앉혀 놓고 '썰'을 풀기 시작했다. 스님의 파란만장한 삶의 여정은 길고도 길었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에 버금가는 신화 같은 인생사였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런데 그 사연 많은 스님이 도대체 날 놔줄 생각을 안 했다.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태어난 직후부터 시작해 결혼해서 아들 둘 낳고 살다 남편 여의고 전국 방방곡곡 떠돌다 대청호변에 안착하기까지 대하소설 같은 인생 스토리가 장구했다. 어중간한 스님은 꾸준한 명상을 통해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지만 내 눈엔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한 사람의 여인이었다.

장담컨대, 천하의 붓다나 예수도 죽는 날까지 이 외로움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리라. 외로움은 누구나 생을 다할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 이건 어쩌면 숙명과 같다. 그러나 외로움이나 고독은 순기능도 있다. 특히 예술가에겐 외로움이 창조의 원천이 된다. 가난과 고독은 소금처럼 예술가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을 빚에 쪼들리며 살았다. 조카와 형수, 전처의 아들까지 부양하며 그 빚을 갚느라 선금을 받고 소설을 써댔다. 청년시절엔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4년이란 시간을 고통스럽게 견뎌냈다. 지병인 간질병과 성격도 괴팍해서 남과 어울리지 못했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 병마와 가난과 고독은 도스토옙스키를 대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도스토옙스키 못지 않게 극적으로 산 인물이 또 있다. '대베리아'라고 일컬어지는 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요즘 같은 겨울이면 유독 하나의 그림이 떠오른다.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갔을 때 그린 작품이다. 역관 이상적의 의리에 감복해 그렸다. 초라한 오두막과 소나무 한 그루와 잣나무 세 그루.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보고만 있어도 쓸쓸함과 한기가 몸으로 전해지는 것 같다. 절대고독의 경지라고나 할까. 찾는 이 없는 절해고도 같은 제주도에서 절절한 고독을 맛보며 김정희는 '세한도'라는 걸작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영국정부에 특이한 직책이 생겨 눈길을 끈다. 이름하여 '외로움 담당 장관'. 외로움이나 고독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다. 이 사적인 영역에 드디어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왜일까.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지금, 외로움이 화두가 되다니. 인간에겐 두 가지 불치병이 있다고 한다. 허영과 고독인데 이 것 만큼 인간의 정체성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단어는 없다. 허영심의 뒤끝엔 허탈감과 공허가 따라온다. 이 사치스러운 감정의 골은 의외로 깊어 때론 인간에게 치명적인 독이 된다. 죽느냐, 사느냐. 햄릿의 딜레마는 연극무대에서만 통용되는 건 아니다. 외롭고 고독하다는 느낌은 생과 사를 가르기도 한다.

외로움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지만 가장 큰 문제는 중·노년 남자의 외로움이다. 요즘 들어 부쩍 홀로 사는 남자들의 고독사가 뉴스를 장식한다. 그들의 죽음의 형태는 비슷비슷하다. 죽은 지 빠르면 일주일, 아니면 5·6개월 후에 발견돼 참혹함을 전해준다. 방안엔 술병이 나뒹굴고 구더기가 온 몸에 들끓고 있거나 악취가 진동하는 처참한 광경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온데간데 없다. 가족들과도 오래 전에 인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았기 때문에 사망통보를 해도 오지 않거나 시큰둥하다고 한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초고령사회를 앞둔 우리사회는 앞으로 이런 비극을 더 자주 접할 지 모른다. 남의 일이 아니란 얘기다.

10여년 전에 한번은 엄마가 나한테 진지하게 물었다. "너 재혼 안 할래? 혼자 산 지 오래됐잖니?" 나는 "아니, 생각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엄마는 "지금은 젊으니까 괜찮지만 나중에 늙으면 외로울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땐 다시 찾은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었기 때문에 노년의 외로움 같은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허나 나이 50이 넘은 지금은 살짝 겁이 난다. 나도 어느 날 아무도 모르게 혼자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면 어떡하나 생각하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혼자 밥먹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여행가고…. 혼자라는 걸 즐기지만 언제까지 천상천하 유아독존일 순 없을 것 같다. 오늘 밤 친구에게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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