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미투', 남녀의 권력 투쟁인가

  • 전국

[우난순의 필톡]'#미투', 남녀의 권력 투쟁인가

  • 승인 2018-03-09 09:0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미투 2
그림= 우난순 기자
"권력은 본질적으로 짓밟는 것이다." 잔인한 말이지만 권력의 속성을 꿰뚫는다. 권력은 절대 나눠 갖지 않는다고 했다.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이지 않은가. 권력투쟁의 선봉에서 권력의 단맛, 쓴맛을 맛본 마오쩌둥도 말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평등한 권력은 없다. 동등한 관계는 어디까지나 유토피아에서나 가능할 뿐이다. 현실은 먹느냐 먹히느냐의 정글의 법칙이 존재한다.

무리가 있으면 우두머리가 있는 법. 아프리카 사바나의 사자들과 시베리아 대 평원을 어슬렁거리는 늑대들의 세계를 보라. 늠름한 수컷이 대장이 되어 무리를 이끈다. 대장이 쇠약해지거나 능력이 없으면 2인자는 우두머리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린다. 결국 2인자가 대장을 몰아내고 왕좌에 앉는다. 공통점은 동물이건 인간이건 대개 수컷이 대장이라는 사실이다. 인간 사회에 옛날 옛적 모계사회가 존재했다고는 하나 아주 미미한 역사의 한 부문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그래서 수컷의 권력을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본다. 수컷이 암컷에게 일삼는 성적 치근거림은 당연하다는 이치다. 동물의 본능 차원에서 보면 일리가 있다. 인간도 동물의 범주에 속하니까 말이다.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도 있다. 동물의 성 행위는 단지 종족 보존을 위한 것이라는 데 있다. 인간은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 쾌락이다. 동물은 발정기 때만 섹스를 하지만 인간은 아무때나 섹스를 즐길 수 있다. 거기엔 남녀가 따로 없다.

헌데 지금 우리 사회에 부는 '#미투' 운동은 무엇을 말하는가. 일일이 열거하기 벅찰 정도로 '나도 당했다'는 여자들의 고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굴비 엮이듯 유명 정치인, 예술가 할 것 없이 남자들의 성폭력이 까발려지고 있다. 그 중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과 추가 성폭행 논란은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차기 대권주자로 주목받던 안희정 전 지사는 정의롭고 반듯한 이미지로 연예인 못지않은 많은 팬을 거느린 정치가였다. 인권과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차밍한 정치인이 저항할 수 없는 낮은 위치에 있는 비서를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성적 착취를 일삼은 것이다. 왜 여자는 늘 남자와의 관계에서 열등한 위치에 서 있을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특징을 계급으로 논했다. 당연히 남성들의 성폭력도 계급과 관련 있다고 보았다. 여성이 겪는 성폭력은 결코 인간사회의 보편적 특징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남성의 생물학적 특징에서 비롯된 결과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진화생물학과는 배치되는 견해다. 다시 말하면 계급의 불평등은 남녀의 불평등을 초래해 권력에서 배제된 남자들이 더 낮은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지만 힘 있는 위치에 있는 남자들의 폭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으로선 "사또가 되면 되도록이면 많은 여자와 자는 게 목표"라는 변학도(영화 '방자전'에서)의 소망이 남자들의 욕망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인류사에서 여성은 피해자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성은 강자였고 여성은 약자의 위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서양 중세의 '초야권'이나 중동지역의 '명예살인'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명예살인이 지금도 자행된다는 사실이다. 남성에게 성폭행 당한 딸이나 누이가 집안의 수치여서 죽여 마땅하다는 논리다.

문명의 발달은 인간의 의식을 고양시켰다. 하지만 남성들은 성적인 문제는 이 부문과 별개의 문제로 간주한다. 남성들의 강간과 성추행은 도처에서 벌어진다. 정치권, 문화?예술계, 직장, 학교, 종교단체, 군대 가릴 것 없이 성폭력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곤 무조건 여성들에게 책임을 지운다. 짧은 치마를 입어서, 화장이 진해서, 술을 먹어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상황이다. 그들은 여성을 잠재적 꽃뱀이라고 규정한다.

이제 여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고 경제력도 갖췄다. 독립성도 커졌다. 그래서 여성들은 존중받고 싶어 하는데 남성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내 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헤게모니 싸움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지난해 메갈리아 논쟁도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고 권력이 여성들에게 쉽사리 넘어올 지는 의문이다.

1980년대 초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에 나온 콩트가 잊혀지지 않는다. 터프한 여자 몇 명이 남자 한명을 밤새도록 술 먹이고 노래시키고 희롱해서 경찰에 입건됐다. 남자는 자기가 당한 수모를 엉엉 울며 경찰관에 진술하고 여자들은 툴툴대는 장면이었다. 그걸 보며 '저럴 수도 있나?' 생각하며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여태까지 봐 왔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성폭력에 치를 떨고 있지만 여자들이 남자보다 우위에 있으면 역전될 수 있을까. 모든 현상은 권력의 문제다. "남자들아, 고마 해라. 마이 해 묵었다 아이가."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2024년 한층 나아진다
  2. [독자칼럼]국가 유산청 출범을 축하 한다.
  3. 월드비전 위기아동지원사업 전문 자문위원 위촉
  4. 2024 금산무예올림피아드 임원 출정식
  5. [인사]대전 MBC
  1. [인터뷰]91세 원로 시인 최원규 충남대 명예교수
  2. 연이은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한국가스기술공사 근절 대책 밝혀
  3. 대전서부경찰서, 여름철 자연재난대비 대책회의
  4. 산내종합사회복지관과 월드비전 대전세종충남사업본부 협약
  5. 월드비전 대전세종충남사업본부-대전M치과의원 복지증진 위한 협력

헤드라인 뉴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올해 한층 나아진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올해 한층 나아진다

세종시 '도심 캠핑' 인프라가 2024년 한층 나아진 여건에 놓일 전망이다. 2023년 홍수 피해를 입은 세종동(S-1생활권) 합강캠핑장의 재개장 시기가 6월에서 10월로 연기된 건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호수공원과 중앙공원을 중심으로 '상설 피크닉장'이 설치되는 건 고무적이다. 17일 세종시 및 세종시설공단(이사장 조소연)에 따르면 합강캠핑장 복구 사업은 국비 27억여 원을 토대로 진행 중이고, 다가오는 장마철 등 미래 변수를 감안한 시설 재배치 절차를 밟고 있다. 하지만 하천 점용허가가 4월 18일에야 승인되면서, 재개장 일..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WHY이슈현장] '충청의 5·18', 민주화 향한 땀방울 진상규명은 진행형

5·18민주화운동을 맞는 마흔 네 번째 봄이 돌아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온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1980년 5월 민주화 요구는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뜨거운 열기로 분출되었는데, 대전에서는 그동안 교내에서 머물던 '계엄령 해제'와 '민주주의 수호' 시위가 학교 밖으로 물결쳐 대전역까지 진출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광주 밖 5·18, 그중에서 대전과 충남 학생들을 주축으로 이뤄진 민주화 물결을 다시 소환한다. <편집자 주> 1980년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전개된 5·18민주화..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27년만의 의대증원' 예정대로… 지역대 이달말 정원 확정

법원이 의대증원 처분을 멈춰달라는 의대생·교수·전공의·수험생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배상원 최다은 부장판사)는 의대교수·전공의·수험생 등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1심과 같이 '각하'(소송 요건 되지 않음)했다. 다만 의대생들의 경우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각(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음) 했다. 법원 판단에 따라 의료계가 재항고할 것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대전 발전 위해 손 잡은 이장우 시장과 국회의원 당선인들

  •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의정활동 체험하는 청소년 의원들

  •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 불기 2568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요식…관불의식 하는 신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