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새롬의 세상만사] 어느 길의 팔자

  • 오피니언
  • 기자수첩

[박새롬의 세상만사] 어느 길의 팔자

  • 승인 2018-06-17 11:05
  • 신문게재 2018-06-18 21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는 경리단길이 있다. 900m 길이의 스트리트형 중심상가로, 2차로 차도를 사이에 두고 양측에 상가들이 즐비하다. 준공된 지 얼마 안 된 건물은 적지만 대부분 리모델링을 해 세련된 느낌을 준다. 그리스나 태국 요리, 일본 가정식 등 가게마다 한 나라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듯하다. 구획 내 270여개의 업소가 영업 중이다.

길에도 팔자가 있자면 경리단길은 돈이 붙을 운이었나 보다. 거리 입구에 있던 옛 육군중앙경리단은 국군재정관리단으로 통합돼 현재 연 17조원에 이르는 재정을 집행한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경리단길의 2015~2017년 임대료 상승률은 10.16%로 서울 평균인 1.73%의 6배에 달한다. 지난해 대로변 상가의 임대료는 월 250만~350만원 수준. 땅값 역시 국토교통부 '2018 표준지 공시지가'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14.09%나 상승했다.

거리에 사람이 몰리고, 그만큼 가게도 장사가 잘 되니 건물주는 임대료를 올렸을 것이다. 유명해서 유명해지는 거라는 말처럼, 경리단길의 가게들도 입소문이 나면서부터는 '경리단길에 있어서' 비싼 몸이 됐다.

어느 날부터인가 비슷한 이름들이 SNS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울에만도 망리단길, 송리단길, 공리단길이 있고 전국에는 수원 행리단길, 청주 운리단길, 경주 황리단길, 전주 객리단길, 인천 평리단길, 부산 전리단길, 대구 봉리단길, 김해 봉리단길, 광주 동리단길, 구미 금리단길, 창원 도리단길이 있다. 어느 '리단길'도 경리단처럼 원래 있던 이름에서 따온 건 아니다. 대구 봉리단길은 봉산문화거리고, 구미 금리단길은 금오산 올라가는 길, 인천 평리단길은 부평시장 뒷길 커튼골목이다. 부산 전리단길은 부산진구 전포 카페거리, 청주 운리단길은 청주고인쇄박물관에서 운천신봉동주민센터를 잇는 거리, 경주 황리단길은 황남동 내남네거리에서 남쪽 첨성로까지를 말한다. 돈이 붙는 그 거리의 팔자를 닮고 싶은 상가들의 마음과, 서울에 있다는 유명한 거리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흥미가 그 거리에 뜻도 맞지 않는 '리단길'을 붙였을 것이다. 지자체도 SNS 홍보에 적절한 아이템으로 여겨, 공식 홍보채널에 언급하기도 한다. 비슷한 상가 거리들의 '워너비(wanna be)'로, 경리단길은 세상에 인식됐다.

그랬던 경리단길이 쇠락하고 있다. 권리금과 임대료가 오르자 초기 임차인들은 다른 상권을 찾아 떠나고, 상가 1층마저 빈 점포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건물주들은 임대료를 내리지 않고 버티고, 상인들만 권리금을 포기한다. 대부분의 건물이 너무 작아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떴으면 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길의 팔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임대료가 많이 오르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내리막을 향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경리단길을 닮고 싶어 했던 다른 리단길들도 이 몸살을 앓게 되지는 않을까. 이 걱정은 기우였으면 좋겠다.
편집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속보>대전 갈마동 타이어업체서 화재
  2. <속보>대전 타이어판매점 1차 진화 마치고 주변확산 차단 중
  3.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4.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5. 천안 폐기물재활용시설 화재...3억 3460여만원 피해
  1. 두 어머니를 향한 16년 간의 효심
  2.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3. 골프존 GDR아카데미 'GDR퍼포먼스' 출시
  4. '장애인과 함께 걸어온 10년'… 31일 세종서 자립생활 기념대회
  5. 한기대, 2026 STEP 모니터링단 해단식

헤드라인 뉴스


머크, 대전 추가투자 가능성 시사… 지역경제 동반성장은 과제로

머크, 대전 추가투자 가능성 시사… 지역경제 동반성장은 과제로

머크(Merck)가 대전 생산센터 준공을 계기로 추가 투자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대전 바이오산업의 확장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KAIST와 공동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연구시설 확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대전이 머크의 아시아·태평양 생산거점을 넘어 연구개발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9일 열린 머크 대전 생산센터 준공식에서 머크 독일 본사와 독일 정부 관계자들은 대전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규모 생산시설 건립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외국인투자지역 입주에 따..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대전 갈마동 타이어 판매점 화재 진화완료…2~3층 창고에서 발생 추정돼

30일 오전 10시 2분께 대전 서구 갈마동의 한 타이어 판매점에서 발생한 화재가 4시간 31분 만인 오후 2시 33분께 완전히 진화됐다. 짙은 연기와 거센 불길이 치솟으면서 화재발생 직후부터 150건 이상의 신고가 소방당국에 접수됐으며, 대전소방본부는 대전시와 산림청 헬기 2대와 소방장비 98대, 인력 238명을 투입해 화재 진압과 방수 작업을 벌였다.소방당국은 최초 신고 18분 만인 오전 10시 20분께 관할 소방서의 모든 소방력을 동원하는 대응 1단계를 발령했으며, 현장 주변에서는 교통 통제와 주민 대피도 진행됐다.타이어판매점..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대전 예수' 와이스, 한화 돌아올까… 독수리 군단 마운드 재건 변수로

한화이글스의 가을을 뜨겁게 달궜던 '대전 예수' 라이언 와이스가 다시 독수리 군단의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까. 미국 메이저리그(MLB) 재도전에 나섰던 와이스가 자유계약선수(FA) 신분으로 풀리면서 한화 복귀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0일 미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와이스에게 걸려 있던 2027시즌 500만 달러 규모의 구단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바이아웃 50만 달러를 지급하면서 와이스는 새로운 소속팀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와이스에게 올해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 시즌이었다. 지난해 한화에서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대전 타이어전문점 화재

  •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포기마다 정성 담아’…맛있는 이웃사랑

  • 미래 진로직업 체험 미래 진로직업 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