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졸다가 만난 천사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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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졸다가 만난 천사 이모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8-12-2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고종사촌 자혼이 있어 부천시 예식장에 갔다가 대전행 열차를 탔다. 타고 있는 열차는 오후 3시 54분 영등포역 발, 서대전역 5시 40분 도착 예정인 무궁화호였다. 먼 길이라 아침부터 서두른 탓인지, 나이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많이도 피곤했다. 열차와 전철을 여러 번 환승해서 타는 신경을 쓰는 바람에 피곤으로 짓눌렸는지도 모른다. 예매 지정 좌석에 앉자마자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로 옆 좌석에는 20대 정도로 가늠되는 남대생처럼 보이는 청년이 앉아 있고 그는 스마트폰 시청에 빠져 있었다.

졸음에 납치되어 나른함에 취해 있다가 손목시계를 쳐다보니 서대전 도착 예정 시간보다 무려 20분이나 더 지났다. 정신이 번쩍 들어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 서대전역 지났느냐고 물어 보았다. 하는 말이 서대전역을 벌써 지났고 계룡역을 지나서 논산으로 가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서대전서 내려야 하는데 어찌 졸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겸연쩍은 표정에 머리만 긁적거렸다.

청년이 친절하게도 스마트폰으로 코레일 시간표를 찾아 열차 시간을 알려 주었다. 논산서 내리면 서대전행 6시 57분 새마을호가 있으니 그걸 타라고 알려 주었다. 다급할 때 듣는 말이어서 그런지 구세주의 조언 같이 들렸다. 역시 젊은이는 정보기기 다루는 기능에 있어서는 연세 든 어른들의 아버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청년이 고마웠다. 느꺼운 감사의 인사를 하고 논산역에서 내렸다.

열차표 매표소로 바로 갔다. 매표하는 이모한테 서대전서 내려야 할 텐데 졸다가 여기까지 왔노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얘기를 듣더니 미소를 가득 담은 얼굴로 승차권 좀 보여 달라고 했다. 바로 보여 주었더니 차표를 끊지 말라고 했다. 쪽지에 몇 자 써서 싸인 해 줄 테니 승차권 대신 이걸 가지고 승차하라고 했다. 탑승 중에 승무원의 검표가 있으면 싸인 쪽지를 보여 주면 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주었다. 그 태도는 매표요원으로서 남한테 대하는 사무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기 가족을 대하는 따뜻함과 배려하는 마음이 그대로 친절함에 배어 있어 가족을 만나는 푸근함 그대로였다.

천사표 이모의 싸인 받은 쪽지를 받아든 채 시장하여 김밥 한 줄을 사서 먹고 6시 57분 1104호 새마을호에 승차했다. 싸인 쪽지에 좌석번호는 없었지만 천사표 이모가 조언해 준 대로 듬성듬성 비어 있는 좌석 중 한 자리에 앉아서 목적지 서대전역까지 왔다. 내려서 걷고 있노라니 천사표 이모의 사심 없는 배려와 친절미, 인간미가 가슴 뭉클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고맙게 해준 분한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얼떨결에 차만 타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렸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논산 역장실로 전화를 걸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했다. 그러나 논산역장실 전화번호는 찾을 수 없었다. 역장님께 미담 사례를 얘기하고 천사표 이모를 칭찬 격려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는데 허사였다.

천사표 이모가 만들어준 싸인 쪽지를 살펴보았다.

「 6시 57분. 새마을 1104호 오탑승. 논산역 소정미.732- 7273」 이라 씌어 있었다.

논산역으로 전화를 걸었다. 청년으로 추정되는 분이 전화를 받았다. 내 신분과 이름을 밝히고 전화 건 목적을 자초지종 얘기했다. 역장님하고 통화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마침 옆에 와 계시다고 해서 소정미 이모 천사의 미담사례를 자세히 말씀드린 후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역장님은 무척 좋아하시면서 자랑스럽고 훌륭한 소정미 이모 천사에 대해 흐뭇해하시는 것 같았다. 용장 밑에 졸장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훌륭하기가 그 직원에 그 역장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에 자리를 비웠던 소정미 이모가 들어왔다고 전화를 바꿔주었다. 못 다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한 나무의 그늘과 같은 존재로 모든 고객에게 즐거움과 편안함을 선사하는 소정미 천사 이모에게 칭찬으로 힘을 실어 주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호승님의「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시가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2연 후략 -



나는 벌써 시인이 되어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되어 사는 소정미 천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소정미 이모는 붙임성 있고 친절한 모습으로 교양미까지 있어 보였다. 거기다 사람을 편안케 해주는 마력으로 상대 마음을 밝게 해 주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외모는 준수하고 호감이 가는 미남형인데 짐승냄새를 풍기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은 양귀비 형의 틀림없는 꽃인데 저밖에 모르는 냉혈동물로 사는 여인도 있다. 비단 보에 개똥 쌌다는 말로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그런데 논산역 근무하는 소정미 이모는 소박하면서도 구수한 인상의 밝은 얼굴에 친절미까지 몸에 배어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끌리게 했다. 거기다 고객을 대하는 태도는 자신의 부모나 가족을 대하는 정성과 친절과 사랑이 배어 있어 묻어나는 신뢰감으로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정말 소박하면서도 정감을 느끼게 하는 외모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친절미는 금메달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보에 싸인 향내 나는 보석이 따로 없었다. 이런 보석을 소유하고 있는 논산역이 부러웠다. 논산 역장님이 부러웠다. 비단보에 싸인 향내 나는 보석이 전국 철도역마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졸음으로 소정미 천사 이모 같은 분을 만나는 행운이 보장된다면, 아니, 비단보에 싸인 향내 나는 보석을 얻을 수 있는 행운만 가져올 수만 있다면 졸고 또 졸다가 열 개 스무 개 역, 부산역이고 서울역이고 전국 어느 역이든지 가고 싶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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