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폴리페서에 대한 소고(小考)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폴리페서에 대한 소고(小考)

서준원 정치학 박사

  • 승인 2019-08-26 08:37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서준원사진(2)
서준원 박사
독일 유학 시절의 일이다. 어느 정치학 전공 교수가 연구차 필자가 공부하던 대학에 왔다. 명저를 남긴 저자이며 정치학 교수이고, 필자와 전공이 같은 탓에 더 반가웠다.

해당 교수는 모교에서도 정치권에서 나오면 꼭 돌아와 주길 기대할 만큼 학문적·인격적으로 인정받는 분이었다. 어느 날 권총을 찬 군인들이 연구실로 찾아와 ‘나라를 위해 일 좀 해달라’는 강권을 이기지 못해 억지로 이끌려 나온 분이다. 그러나 일부 운동권 학생들의 강한 반대 탓에, 안타깝게도 모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좁은 기숙사 방에서 온종일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하는 그 교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조리하기도 편하고 시간이 아까워서 늘 국수로 끼니를 채우다시피 지냈다. 안타까움에 집으로 모셔서 우리 음식을 내드리곤 했지만, 필자에게 그 교수는 부정적 의미의 ‘폴리페서’가 아닌 진정한 학자로서의 귀감이었다.

어느 날 청와대에서 부른다고 고심을 하길래, 독일 교수들의 사례를 들어 학자가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기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거들었다. 결국은 청와대에서 국정을 챙겼다. 대통령 비서실장과 회의를 하면 마치 학회에서 하듯이 가감 없는 토론이 펼쳐졌다고 한다.

1980년대는 정치환경이 암울했지만, 능력 있고 반듯한 교수 출신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치권에 몸담고 있었다. 이때는 어용교수라고 비난을 받았지만, 그래도 실력과 인품, 그리고 일 처리는 물론 학자로서의 소신이 돋보였고 국정에 큰 공헌을 했다고 본다.

기실, 교수들의 정치 참여나 공동체를 위한 기여는 바람직한 일이다. 학문으로 연마한 실력을 국정을 위해 쏟는다고 손가락질을 당해야만 할까. 배움과 연구는 다수를 위해 쓰임이 닿아야 한다.

독일의 경우 대학교수가 전문성을 인정받아 장관직으로 가는 사례가 허다하다. 국가에 봉사하고 대학으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는 금의환향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학문의 깊이는 물론 전문성과 함께 인품과 인격이 인정받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무장된 윤리의식과 책임감이 돋보인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적 열정이 평가받고 있어 지금도 교수들의 정치권 진입은 자연스런 현상으로 수용되고 있다. 대학으로 되돌아온 교수들은 1년 또는 한 학기 정도는 강의하지 않는다. 그간에 소홀했던 학문적 연구를 가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정치의 후진성 탓인지 폴리페서에 대한 인식도 안 좋고 게다가 멸시와 냉소적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권력지향적인 교수들이 그간에 지나치게 난장판을 친 탓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정당들은 싱크탱크를 빌미로 교수들을 대거 불러들이고, 일부 교수들 역시 줄을 대서 연을 이어가려고 아우성이다. 정치권의 유혹에 언제부턴가 오로지 벼락출세와 권력지향적인 욕망이 솟구친 것이다.

몰지각한 폴리페서들은 정치성향도 자주 바뀌고 정책에 대한 소신도 매우 취약하다. 게다가 이들은 윤리의식과 책임감마저 턱없이 부족하고 학자로서의 소신과 가치관마저 불투명하다.

대학교수 직위나 학문은 벼슬을 쟁취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폴리페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적 봉사와 책임을 지고 일할 기회를 얻는 선택된 자들이다. 그러기에 자긍심을 지녀야 마땅하다.

연일 조국 교수 사태가 시끄럽다.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쏟아져 나오는 우울한 소식들이 참 불편하다. 학자로서의 자존감과 공직자로서의 책임과 윤리의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거센 비난이 분출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퇴유곡으로 빠져드니 보기에도 안타깝다. 때로는 학자에겐 명예와 양심이 그 무엇보다 중하다. 조 교수가 진정한 교수이자 폴리페서라면 기성 정치인과 공직자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자신을 되돌아보길 권고한다.

서준원 정치학 박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중증화상·중독·사지절단 응급진료 역량 확충 필요"…대전·세종 응급실 진료 분석해보니
  2. 대전 구청장 선거전 본격화…현역 "수성" vs 도전자 "변화"
  3. 청주교도소 특별사법경찰대장 박경민 대전교정청 '이달의 모범교관'
  4. '연구비 자율성 강화'에 과학기술계 "환영… 세심한 후속 관리 필요"
  5. 정치색 없다는데…교육감 선거 진영 프레임 반복
  1. 대전 구청장 선거전 가열…정용래·서철모 출마 선언
  2. [르포] "멈춰야 할 땐 지나가고, 지나도 될 땐 멈추고"… 우회전 일시정지 단속 현장 가보니
  3. 민주당, 충남 아산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로 전은수 영입
  4. 대전교육청 산업재해 증가세 "더 이상 아프고 싶지 않아"
  5. ‘우회전 시 일시정지 꼭 해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멈춰? 그냥 가? 헷갈려요"… 우회전 일시정지 시민 혼선

"멈춰? 그냥 가? 헷갈려요"… 우회전 일시정지 시민 혼선

29일 오전 9시 30분께 대전 용소네거리. 출근길 정체는 어느 정도 빠졌지만 주택가에서 도안동로와 건양대병원 방면으로 빠져나가려는 우회전 차량 흐름은 적지 않았다. 차량 대부분은 속도를 조금 줄인 뒤 그대로 우회전했다. 바퀴가 완전히 멈춰 선 차량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가 시행된 지 시간이 흘렀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서행'과 '일시정지'의 경계가 흐릿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오전 9시 36분께였다. 우회전 일시정지 집중단속을 앞두고 경찰 차량과 경찰관들이 교차로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자 우회전 차량들이 눈..

6·3 지방선거, 대전·충청 분위기 고조… 선대위 띄우고 공동선언도
6·3 지방선거, 대전·충청 분위기 고조… 선대위 띄우고 공동선언도

6·3 지방선거를 30여 일 앞두고 기선을 잡으려는 여야 각 정당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전 선거대책위원회를 띄워 본격적인 선거 체제에 돌입했고,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4개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충청권 공동대전환'을 선언하는 등 선거 열기가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다. 먼저 더불어민주당 대전, 세종, 충남, 충북 4개 시·도지사 후보들은 29일 오전 세종시청에서 '충청권 공동대전환'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번 공동선언은 민주당 충청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이재명 정부의 '지방주도 성장' 기조에 맞춰 충청을 변방이 아닌..

대전 버드내초 인근 신생 핫플레이스로 `주목`…신규 창업점포 지속적 증가
대전 버드내초 인근 신생 핫플레이스로 '주목'…신규 창업점포 지속적 증가

대전지역 곳곳에서 신생 상권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평소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다시금 유동인구가 늘어나며 신규 점포 등이 하나둘 문을 열고 있어서다. 기존 상권과 달리 신규 창업 점포가 눈에 띄게 눈에 띄게 확장되자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는다. 29일 소상공인 365 빅데이터가 추려낸 대전 신생 핫플레이스는 중구 유천1동 '버드내초등학교' 인근이다. 신생 핫플레이스란, 상권이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장소로 최근 들어 급부상하는 곳을 뜻한다. 5만 1045㎡ 규모의 해당 상..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기자간담회 갖는 이장우 대전시장…오늘 예비후보 등록 예정 기자간담회 갖는 이장우 대전시장…오늘 예비후보 등록 예정

  • 때 이른 더위에 장미꽃 ‘활짝’ 때 이른 더위에 장미꽃 ‘활짝’

  • ‘우회전 시 일시정지 꼭 해주세요’ ‘우회전 시 일시정지 꼭 해주세요’

  • ‘74명 사상’ 안전공업 건물 철거 돌입…현장감식 병행 ‘74명 사상’ 안전공업 건물 철거 돌입…현장감식 병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