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기록프로젝트] 철거 시작된 대전 용문동1·2·3구역, 추억도 기억도 묻혔다

[대전기록프로젝트] 철거 시작된 대전 용문동1·2·3구역, 추억도 기억도 묻혔다

14년 재건축 논의 불구 메모리존과 이주민 기록 못 남겨
1970년대 지어진 양옥주택 즐비… 철거장막 날마다 확장

  • 승인 2020-05-03 18:40
  • 수정 2020-05-13 09:25
  • 신문게재 2020-05-04 5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재개발과 재건축을 앞둔 동네와 마을의 기록을 남겨보자는 '메모리존' 조성 취지에 공감을 얻으며 [대전기록프로젝트]가 첫발을 뗐다. 중도일보는 이를 출발점 삼아 연중 시리즈로 [대전기록프로젝트]를 이어간다. 대전시의 재개발과 재건축, 도시재생 정책 방향, 기록이 시급한 주요 동네의 모습, 전문가 토론과 타 도시의 사례를 현장감 있게 살펴본다. <편집자 주>

KakaoTalk_20200503_071443792
철거를 앞둔 용문동 1.2.3구역 일대 모습. 이곳은 여전히 사람들이 보행하는 골목이고, 곳곳에 이주하지 않은 주민들의 집들도 있다. 사진=이해미 기자


①[르포] 철거가 시작된 대전 서구 용문동 1·2·3구역



우르르 쾅쾅. 맑은 하늘에 천둥이 내리꽂힌다. 가림막 안쪽 세계는 오늘도 무너진다. 불규칙한 중장비 소음이 들려올 때마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하늘 높이 쌓인다. 가림막 바깥쪽 세상은 폭풍전야다. 동쪽에서 북쪽으로 용문동 일대를 감싸는 장막이 하나둘 늘어만 간다.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변신을 꿈꾸는 용문동 1·2·3구역 재건축사업현장에서 철거가 시작됐다.

"고향이던 세종을 떠나 용문동에 정착했던 1950년엔 집이 10채도 안 됐어요. 우리 아버지가 흙으로 덧발라서 집을 만들었는데, 대들보며 구들장까지 직접 만드셨죠. 큰 역사랄게 없는 동네인데, 그래도 몇몇 집은 나름 추억이 있을 거예요."



용문동 1·2·3구역 조합의 배려로 류완희 조합장의 아버지가 지은 집으로 향했다. 재개발 구역을 항공뷰로 찍은 사진을 보면 조합장의 집은 다른 집들과는 방향이 다르다. 다른 집들은 열 맞춰 동쪽으로 나란히 서 있지만 70년 동안 자란 나무를 품은 이 집은 '동서'로 확연히 틀어져 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라는 증거다. 

KakaoTalk_20200420_133524986
1950년대에 지어진 흙집. 부엌과 방, 다락방까지 있다. 이주하며 잡동사니가 널려있지만 류완희 조합장은 이곳에서 부모님과 7남매가 살았다고 한다. 사진=이해미 기자
사람이 떠난 집은 볼품 없었다. 집기들은 사방에 널려있고, 거미줄과 잡초들만 무성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뒤주, 7남매의 흔적이 남은 앉은뱅이책상, 사람들 불러모아 밥 한 끼 나눠 먹던 가마솥과 아궁이만이 세월의 흔적을 지켜내고 있었다.

류완희 조합장은 "아버지가 직접 지으셨지만 살면서는 불편했죠. 비만 오면 물을 퍼냈고, 짚으로 지붕을 올린 탓에 수차례 바꾸기도 했고요. 그래도 7남매가 옹기종기 컸고, 좁은 집인데 셋방도 줬던 기억도 나네요"라며 옛 추억을 떠올린다.

순복음교회 뒷골목은 철거가 시작된 길 건너편과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반대편 수풀들이 제멋대로 자랐다면 이쪽은 여전히 사람의 손길을 탄 집들이 있었다. 아직 이주하지 않은 주민들이 남아있는 탓이다.

이주를 앞둔 한 주민은 "이쪽 철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서 조금 더 살려고 한다"며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쉽게 떠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용문동 1·2·3구역은 본격 재개발이 논의되면서 2017년 문화재 지표조사를 통해 동네의 개괄적인 역사는 기록해뒀다. 다만 떠나간 이주민들의 기록은 남기지 못했다. 평범한 도시형 마을이었다는 이유로 기억과 기록을 남길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다.

류완희 조합장은 "용문동은 30년 이상 된 집들이 대다수다. 830세가 살았는데 사라지는 것들이 왜 아쉽지 않을 수 있겠나. 오전에도 아버지 집 다녀왔다. 많이 아쉽다. 용문동 1·2·3구역은 이렇게 재개발 바람에 사라지지만, 다른 동네라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골목골목을 돌아 용문동을 빠져나오던 길, 팔십이 훌쩍 넘은 노인과 마주쳤다. 약봉지를 든 노인은 "용문동의 역사? 여기는 딸기밭이 많았지. 유등천에서 멱 감고 놀기도 했고. 아주 먼 옛날얘기라 다들 잘 모르지"라며 오래된 골목으로 걸어갔다.
이해미 기자 ham7239@

KakaoTalk_20200503_071416351
주민들이 떠나고 남은 집들. 용문동에는 1970년대 지어진 양옥 형태의 주택들이 많았다. 사진=이해미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2. 대전시와 5개구, '시민체감.소상공인 활성화' 위해 머리 맞대
  3. 세종시 '학교급식' 잔반 처리 한계...대안 없나
  4. [한성일이 만난 사람]여현덕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인공지능(AI) 경영자과정 주임교수. KAIST-NYU 석좌교수
  5. 세종시 재정 역차별 악순환...보통교부세 개선 촉구
  1. 세종시 도담동 '구청 부지' 미래는 어디로?
  2. 더이상 세종시 '체육 인재' 유출 NO...특단의 대책은
  3.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4. 세종시 교통신호제어 시스템 방치, 시민 안전 위협
  5. 세종시 '공동캠퍼스' 미래 불투명...행정수도와 원거리

헤드라인 뉴스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17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높다. 관련 발언이 나온다면 좀 더 진일보된 내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정부 최초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2주 차 부처 업무보고가 16일 시작된 가운데 18일에는 행정안전부 업무보고가 진행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추가 발언을 할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하기 위해..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2026년 세종시 행복도시 신도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내년 청사진을 그려냈다. 이에 본지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각 생활권별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행정수도 진원지 'S생활권', 2026년 지각변동 오나 2.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변화 요소는 3. 정부세종청사 품은 '1~2생활권', 내년 무엇이 달라지나 4. 자족성장의 거점 '3~4생활권', 2026년 던져진 숙제..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