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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력, 추진력, 덕성, 지혜, 리더십을 두루 겸비한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여장부, 여걸, 여성리더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바로 백춘희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대전 최초의 여성 정무부시장 업무도 2년 동안 많은 칭찬을 받으며 완수해냈고, 지금은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의롭고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백 전문위원이 촌음을 다퉈가며 형설지공 끝에 만 63세 만학도로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하며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고 주변에 선한 영향력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백춘희 전문위원을 만나 의리의 인생, 열정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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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전문위원님, 지난 달 배재대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으셨는데 이에 대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어릴 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느라 여상을 가게 됐고 제 때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다 보니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서 나이 먹은 뒤로도 사회 생활 틈틈이 계속 공부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나이 먹어서 공부를 한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요. 육체적인 노화 현상 때문에 정말 많은 고통이 수반되는데요. 집중해서 논문을 쓰는 지난 3개월 동안 '비문증( vitreous floaters)'에 시달리느라 매우 큰 고생을 했답니다. 비문증은 모기가 날라다니는 증세라는 뜻인데 눈앞에서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날파리증이라고도 합니다. 지금은 날파리가 한마리 날아다니지만 그때는 수십여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눈이 힘들었답니다.
비문증은 나이에 따른 변화나 여러 가지 안과 질환에 의해 유리체 내에 혼탁이 생기면, 망막에 그림자를 드리워서 마치 눈앞에 뭔가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끼게 되는 증세지요. 그렇지만 이런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고 학위를 취득하고 나니 많은 성취감을 느끼게 됐죠. 제 안에 잠재된 열정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대전시 정무부시장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다 내려놓고 비우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논문을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자기 개발에는 끝이 없는 것이고 공부가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공부는 하면 할수록 점점 재미를 느낍니다. 박사를 마치고 나니 방송통신대 시절 공부했던 문화교양학 공부를 다시 이어서 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공부가 하면 할수록 점점 재미있어지네요. 제가 대전시 정무부시장 시절에 문화 예술 관련 업무를 하다 보니 더 관심이 많아졌지요. 방통대에서 인문학 공부를 계속 하고 싶습니다. 문화교양학과 국어국문학 공부를 계속 할 생각입니다.
논문을 쓰고 난 뒤엔 평소에 관심 있던 불교문화 탐구를 위해 전국의 사찰을 많이 다녔습니다. 스님들의 족적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기도 하고 생각도 많이 정리했습니다. 여수, 순천 등을 돌면서 송광사에 가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 길을 걷고, 지리산 화엄사와 천운사, 불일암, 속리산 법주사도 들렀지요. 나이를 먹어갈수록 소박하고 아름다운 사찰이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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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전문위원님, 이번에 어떤 논문을 쓰셨는지 소개해주실까요?
▲<한국과 일본의 사회적 경제정책 비교 연구>로 학위를 받았는데요.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철학의 사회적 가치와 경제 정책 수립에 기여할 수 있는 논문을 쓰고자 했습니다.
대전시 정무부시장 시절 복지 업무를 하면서 일자리 양극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여기에 대해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저소득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에 대해 관심이 많았죠. 일본이 한발 앞서 사회적 경제를 도입하고 민(民) 중심으로 일을 하는데 우리도 관보다 민 위주로 가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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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전문위원님, 지금까지 살아오신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시겠는지요.
▲저는 어릴 때 집안이 가난해서 비관을 많이 했는데요. 군인 장교셨던 아버님은 전역 후 광산업과 목재상 등 사업을 하시다가 실패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설상가상으로 다리까지 다치셔서 목발을 짚고 다니셔야 됐습니다. 아버지가 경제 활동을 제대로 못 하시는 형편이다 보니 한 번도 새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고, 제대로 학비 한번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1남 4녀 중 셋째인 저는 빨리 취직을 해야 되는 형편인지라 청주여상에 3년 장학생으로 갔고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면서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입니다. 신문 배달도 해봤고 출판사 외판원 생활도 해봤죠. 한 번도 학비를 집에서 받아보지 못하고 항상 돈을 벌고 다녔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이때 당시 가정 형편 때문에 배움에 대한 열망을 접고 경제에 눈을 떠야만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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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여상때는 학도호국단 단장을 하면서 리더십을 키웠습니다. 영화 '써니' 에서처럼 학교에서 '세븐클럽'을 만들어 '짱'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 학도호국단장은 연대장, 총학생회장 역할이었죠. 그렇다고 모범생 역할만 한 것은 아닙니다. 몰래 극장도 다니고 미팅 주선도 하고 그랬거든요(하하하).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살아야 됐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인천에 가서 무역회사를 다녔고,이후로도 월급을 많이 주는 곳을 찾아다녔답니다. 그러다가 다시 청주로 돌아와 옷가게를 하면서 어린 나이에 부동산도 사고 팔았죠. 경제 관념이 강했습니다.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했으니까요.
저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그나마 토양분이 된 것은 책을 많이 읽은 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는 대하소설과 역사소설을 좋아해서 삼국지를 비롯한 중국 고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삼성출판사 외판원 시절에 특히 책을 많이 봤네요.
저는 주로 여름에 책을 많이 봅니다. 여름이면 50권씩 책을 읽으며 살았지요. 제가 굉장히 검소하게 사는 편인데요. 집에 에어컨이 없고, 냉장고도 30년째 안 바꾸고 씁니다. 논문을 마쳤으니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중국 고전을 많이 보는데 지금은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있습니다. 삼국지도 다시 읽을 생각입니다. 책을 많이 읽고 마음의 양식을 쌓는 시간이 참으로 즐겁습니다.
제가 주군처럼 모시던 권선택 전 대전시장님이 시장직을 물러나시면서 저 역시 힘이 없어지고 우울해졌는데 세상에 대한 원망을 버리고, 주위의 좋은 친구들 덕분에 새 힘을 얻어 다시 의욕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답니다.
한중민간경제협력포럼 위원으로 있으면서 지난해에는 대전에서 중국기업인과 대전기업인 300 여명이 참여하는 큰 행사를 치렀지요. 민간외교의 물꼬를 트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 중국과 냉전관계가 되면서 소원해졌지만 다시 한번 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추진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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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 지방정부 상임위원을 맡아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면서 우리 지역과 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지요. 대전세종충남여성벤처협회 고문을 맡아 관에 대해 어려움이 많은 여성기업인들과 관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곳을 가던지 맏언니 역할, 리더 역할을 줄곧 해왔습니다. 쉴 시간이 없이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살다 보니 현직에 있을 때와 진배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관계를 굉장히 중요시하게 생각하는데요. 설령 아는 친구가 배반을 몇 번을 해도 다 이해하고 용서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련을 겪으며 살아와서 남의 어려운 사정을 너무나 잘 압니다.
역경은 다 지나가게 돼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고통을 겪은 후 꽃을 피워보게 되고, 새로운 인생의 모멘텀이 됐던 게 권선택 전 대전시장님을 만난 덕분입니다. 그 분이 정치적인 역경을 겪으시게 된 게 몹시 마음이 아픈데요. 그 분의 인품은 정말 훌륭하십니다.
저는 인간적으로 그 분을 존경합니다. 세공사가 원석을 연마시켜 다이아몬드를 만들듯이 권 전 시장님은 저라는 원석을 연마시켜 보석으로 만들어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분에 대한 은혜를 잊지 않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제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권선택 전 시장님이 당선되실 때 메이커 역할을 잘 해냈다는 점입니다. 권 전 시장님은 제 인생의 은인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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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위원님,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요.
▲대한민국 인구의 50% 이상이 수도권에 과밀화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기업과 사람이 편중돼 있다 보니 지역 경제도 어렵고, 지역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지역 혁신, 지역이 강한 나라, 균형발전을 모토로 삼고 지역에 맞는 혁신, 심의, 의결 등 정치 입안에 도움을 주는 기구입니다. 7월에 대전을 혁신도시로 지정하고, 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을 했죠.
지역의 균형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공공기관들이 지역에 많이 내려오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대전은 국책은행들이 내려오고, 서울대가 내려오면 기업 유치도 쉽고 균형발전이 쉽게 이뤄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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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위원님은 수많은 모임의 리더를 하고 계신데요. 일부만 소개해주실까요?
▲제가 수년 전 대전의 오피니언 리더층 전문직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인의 향기'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요. 경제인, 교육자, 문화인 등 직업군도 다양합니다. 앞으로도 인생을 계속 함께 할 최고의 친구들입니다.
한남대 CEO 과정 23명을 모집해서 '블루포럼'이란 모임도 조직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비전과 열정을 가진 청춘들의 모임이죠. 20대, 30대, 40대, 50대 젊은 기업인들이 모였는데요. 저만 60대니까 제가 큰누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블루포럼은 대전, 충남, 세종 기업인들의 동남아 기업 진출을 돕고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내 일처럼 도와주고 있습니다. 베트남에 자전거를 기탁하기도 하고 캄보디아를 돕기도 했죠.
저는 중증장애인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밥 봉사도 오랫동안 했습니다. 장애인 목사님 부부 인품이 훌륭하셔서 계속 도와드렸지요. 유능한 청년 블로거들과 등산도 10년 이상 오랫동안 다니면서 끈끈히 우정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젊을 때는 100대 명산을 다 다녀서 연골이 나갈 정도였습니다. 정무부시장 직 마치고 고향 후배인 정호 원장네 세우리병원에서 연골 수술을 받았지요.
제가 젊은 친구들이 많은 것은 소통을 잘하기 때문인데요. 소통의 첫 번째는 듣기와 경청입니다. 나이 어린 후배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 보니 후배들이 많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각계각층의 젊은 친구들이 많은데 끊임없는 소통이 비결이지요. 젊은 친구들에게 배울 점도 많고, 귀담아 들을 말도 많습니다.
큰 세상에서 개척자의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등산을 좋아해서 저는 약속에 대해 정확한 사람입니다.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지요. 스트레스 극복은 주변의 친구들이 많으니 친구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다 보면 다 잊혀집니다. 제가 인성검사를 해보니 절대 초긍정 성격으로 나오더군요(하하하).
중앙정치인 중엔 청렴결백한 분인 설훈 국회의원과 소통이 잘 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방향성을 제시해주시는 친 오빠 같은 분입니다. 제가 삼부아파트 사는데 동네 아줌마들과도 소통이 정말 잘 됩니다. 정치 봉사 모임을 잘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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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의원님은 정말 열심히 살아오셨고, 점점 업그레이드해오신 자수성가의 대명사신데요. 어떤 인생관을 갖고 있으신지요.
▲제가 오드리 햅번을 정말 존경하고 좋아하는데요. 세계적인 은막의 스타인 오드리 햅번은 노년에 유니세프 대사가 되사가 되어 사회를 위해 봉사했는데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한 말이 인상적이죠. '사람에게는 두 손이 있는데 한 손은 너를 위한 손이고, 한 손은 남을 위한 손'이라고 했지요. 이 말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서 스스로 고개 숙이고 저를 채찍질하게 됩니다. 격의 없고 겸손한 사람이 되길 원하죠.
저는 수많은 실패 끝에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남편의 사업이 부도났을 때 정말 힘들었는데 생선가게로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그때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손에 류마티스 관절염 증상이 오고, 습진에 걸리기도 했죠. 수없이 많은 고난과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던지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사람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갖고 있어야 되죠.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현실의 어려움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바닥을 치고 나서야 절대 초긍정 사고를 갖게 됐습니다.
박사 학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냐 하겠지만 저에겐 무시를 당했던 아픔이 있기 때문에 열심히 실력을 쌓자고 결심하고 만학도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큰 뜻을 품고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중국의 한신처럼 저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제 실력을 쌓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저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지요. 누가 떠들어도 절대 흔들리지 않고 한 귀로 들으면 한 귀로 흘려 듣고 고언이든, 조언이든 잘 받아들입니다.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바닷가 조약돌은 부드러운 물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겁니다.
예전엔 카리스마 리더십이었다면 지금은 끊임없는 소통이 중요합니다. 부드러운 사람들이 세상을 이끌어갑니다. 저는 실리보다 명분, 의리를 가장 중요시하고 살다 보니 때로는 손해 보는 일도 있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배짱으로 삽니다.
제가 즐겨 읽는 삼국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제갈공명입니다. 뛰어난 지략가인 제갈공명은 자기 자신을 낮출 줄 알았죠. 훌륭한 인물을 도와주기 위해 많이 노력합니다. 제가 돌쇠, 장비 같은 스타일이지만 손자병법의 병법, 병술을 실제 적응하는 제갈공명처럼 지략가이기도 합니다. 부드러운 물결이 동그랗고 예쁜 조약돌을 만드는 것처럼 제 인생도 롤러코스터 타듯이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영예로운 순간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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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위원님은 중도일보 독자권익위원님이신데요. 중도일보에 바라는 말씀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실까요?
▲중도일보는 69주년을 맞기까지 지역 정론지로서의 소명의식이 있으실 텐데요. 열심히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해주시는 신문이 됐으면 합니다. 코로나 정국에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은 기업인들의 사기 저하가 심합니다. 이들의 애로사항과 애환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중부권을 대표하는 중도일보는 창간 69주년을 맞아 더욱 발전하시면서 대한민국에서 우뚝 서는 정론지 역할에 충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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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위원님,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실까요?
▲저는 신의를 가장 중요시하는 사람입니다. 향기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귤나무를 심으면 과일도 먹고 향기도 맡을 수 있지요. 가시나무를 심으면 반드시 가시에 찔리게 돼 있습니다. 귤나무를 심고 향기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일을 최선을 다해 하면서 나라의 대통령을 만드는 킹메이커 역할도 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람 관계, 인간관계에 있어서 저는 한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갑니다. 능동적인 삶, 개척자의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사귈 때 남성, 여성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납니다. 다양한 계층을 차별이나 선입견 없이 만나니까 친구 층도 다양하고 넓습니다. 젠더 의식도 점점 변하고 있지요. 뭐든지 동등하게 생각했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앞으로도 국가와 나라가 필요로 하는 역할, 킹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고 싶습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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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희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은 누구?
▲1957년 청주 출생. 청주여상, 대덕대 사회복지학과,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배재대 행정학과 석사, 박사 졸업. 새정치민주연합 권선택 후보자 캠프에서 여성총괄본부장 역임. 대전시생활체육회 자원봉사단장, 대전시 장애인체육회 자문위원, 세우리병원 자문위원장, 전 대전시 정무부시장, 더불어민주당 참좋은 지방정부위원회 상임위원, 대전세종충남여성벤처협회 고문, 배재대 대외협력교수,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혁신마을공동체 전문위원, 중도일보 독자권익위원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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