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물로 시작되는 순환, 반복, 진화, 초월의 몸짓 : '원형하는 몸'

  • 오피니언
  • 문예공론

[문예공론] 물로 시작되는 순환, 반복, 진화, 초월의 몸짓 : '원형하는 몸'

장주영/ 수필가, 교사

  • 승인 2021-11-16 11:42
  • 수정 2021-11-16 11:43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난 토요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는 현대무용가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이 공연됐다. 나는 무용평론가 이만주 선생님의 초대로 이 귀한 예술을 접하게 되었다. 깊이와 무게가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감동과 여운이 사골뼈 우러나듯 시간을 두고 밀려왔다. 그래서 주말 내내 공연을 떠올리며 깊은 사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용은 몸짓으로 현상을 전한다. 진위(眞僞)의 말이 없다. 오직 제목 만이 작품의 의도를 함축한다. <원형하는 몸>의 '원형'은 둥근 것을 뜻하는 원(圓, circle)과 본질로 간다는 원(源, origin), 그리고 심리학자 칼 융의 원형(原型, archetype)까지도 생각하게 했다.

먼저, 공연장을 묘사해본다.

무대 앞 상공에는 크고 묵직한 얼음이 매달려있다. 얼음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은 5m 아래 투명 반구 안으로 낙하한다. 무대의 벽은 대형 거울 2장이 맞대고 두 면을 이룬다. 바닥과 두 거울 벽이 만나는 세 모서리는 서로 수직을 이루며 3차원 공간을 만든다. 거울은 한 무용수를 비추어 두 명을 만들기도 하고, 똑같이 춤추는 다섯 명으로도 보이게 한다. 형상이 출렁이듯 거울에 비춰지기 때문에 무대 또한 녹고 있는 거대한 얼음 큐브 같다. 물방울 소리를 기저로 살갗에 소름이 돋는 추위가 느껴지는 음향은 파장이 길게 울린다. 그리고 어둡고 푸른 잉크 빛이 감도는 조명은 빙하를 안고 있는 깊은 바닷 속의 고독과 같다. 무대, 음향, 조명이 총체적인 한덩어리가 되어 무용가를 맞이한다.

1
차진엽의 '원형하는 몸' 독무
'똑, 똑, 똑', 얼음에서 녹아내린 물방울들이 투명 반구 안으로 낙하하는 소리다. 영하의 얼음이 0℃가 되어 물이 되는 이 찰나가 이 작품의 원점이다. 얼음에서 막 깨어난 차디찬 물방울 소리는 생명의 시작이고 원초적 순간이며 엄마의 배 속처럼 편안함을 주는 명상의 소리다. 인간의 내면에는 나만의 물이 흐른다. 차가운 심안으로 나를 성찰한다. 고요한 상태에서 절제해 바라보면 나라는 생명의 본질, 군더더기를 모두 뺀 생명의 근원은 물이다. 차진엽의 독무에서 발 끝으로 물방울을 표현하고 몸 전체로 물의 부드러운 흐름을 표현했다.

얼음은 물이 되고, 물은 안개로 바뀌어 수증기가 된다. 물의 순환은 지구 생명의 순환이다. 원 운동과 높이의 변화를 시간의 순서대로 x축에 나타낸 함수가 y=sin x 이다. 양과 음을 주기대로 반복하며 본질 안에서 규칙성을 가지고 변화한다. 원(圓)이고 반복이며 끝없는 환생이다. 그러나 실제 인간은 다르다. 물은 의지가 없지만 인간에게는 의지라는 것이 있다. 과거와 같은 삶이 오늘과 미래에 똑같은 패턴으로 기다리고 있다면 우린 암울할 것이다. 인간이 그리는 함수는 변수가 가득한 변화무쌍한 초월함수다. 주어진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강한 것, 바로 진화에 대한 강한 의지이다. 그리고 초월의 힘이 발휘되어 결과도 바꾸는 것은 여러 사람 간의 에너지이다. 검은 의상을 입은 4명의 무용수는 죽음, 각자의 고뇌, 새 생명, 그리고 관계를 통해 새 생명을 얻고 각기 새로운 색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2
원형하는 몸 포스터
심리학자 칼 융은 개인의 행동, 사고, 신념, 감정에 공통의 유형이 있음을 연구했다. 이를 원형(原型, archetype)라고 이름 지었다.

까닭모를 나의 행동 패턴은 무의식 속에서 내게 굴레가 된 신념과 관습에 의해 움직인다. 존재의 씨앗인 무의 식에 집단적 심리 원형이 있으며 그중 하나가 페르소나라고 불리는 사회적 가면(mask)이다. 차진엽의 안무에는 여성성도 표정도 화려한 의상도 없다. 모든 가면을 내려놓았다. 심지어 공연 첫머리에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여 그것 마져도 벗고 무대 밖에 내려놓는다. 코로나 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흑백의 의상은 인간의 움직임만 포착할 뿐이다. 그 안에서 틀에 얽매인 어떠한 신념도 찾을 수 없다. 동물적 움직임만 있다. 이것은 인간의 무의식을 조종하는 사회적 원형인 관념들을 과감히 배제하고 인간의 근원만 남긴다. 남녀가 섞여 춤을 추지만 그 어떠한 성(性)도 드러내지 않고 생명의 순환만 나타낸다. 최소의 미립자인 물의 변화에서 오는 통찰로 본질을 인지하고 전과는 다른 존재로 깨어난다.

무색의 작은 빛에서 시작된 공연은 4명의 무용수에게 각기 다른 유채색의 그림자를 부여한다. 그리고 하늘극장의 지붕이 열리고 자연 빛에 무대 위의 무용수와 관객 모두가 드러난다. 각양각색. 그리고 빛에서는 마스크에 의해 다시 감추어 지는 나. 사회 속 보편적 우리들…….

깨달음은 빛의 존재를 상상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곳에 의식의 빛을 비춤으로써 얻는 것이다.ㅡ칼 융

얼음을 씹어 먹듯 무의식의 원형을 깨부수고 끊임없이 새롭게 잉태되는 나, 분명 예전의 나는 아니지만 나라는 본질은 그대로이다. 어둠에서 보이는 내면의 나. 부끄럼도 가식도 내려놓은 나를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 무수히 변형된 다른 원들을 그려나가며 생을 살아감을 물로 표현한 예술. <원형하는 몸> 심의(深意)의 몸짓은 모든 것을 얼음처럼 차갑게 표현했지만, 나의 내면은 뜨거움으로 가득했으니 이 얼마나 역설적 통찰인가?

장주영/ 수필가, 대전도시과학고등학교 교사

2021111101000854700025943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대 상용직 노사갈등 160여일 만에 마침표…학내 신뢰 회복 과제
  2. 대전 갑천 엑스포다리 불꽃쇼 취소… 인파 밀집·안전사고 우려
  3. 포항서 방화 추정 불… "경찰 수사 절실"
  4. 대전 미분양 아파트 늘었는데…내년 주택시장 괜찮을까
  5. 사람 몰리는 오월드, 적자는 눈덩이… 도시공사 새 사장, 해법 나올까
  1. 단양수중보 녹조, 수공·환경청은 알고 단양군·충북도는 몰랐다
  2. 2030년 완성기 맞는 세종시… 읍면동 활력 도모 방안은
  3. 허태정 슈퍼위크…정부지원 촉구 시도지사 연대강화
  4. 제3회 서포 김만중 문학기행 성료…한글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서
  5. 대전시 민선 9기 공약 77개 확정… 8조 3244억 투입

헤드라인 뉴스


[2026 국감] 병무청 국감, 예체능 병역특례 제도 등 쟁점

[2026 국감] 병무청 국감, 예체능 병역특례 제도 등 쟁점

12일 대전정부청사에서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의 병무청 국정감사에선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이번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일부 선수들의 부적절한 언행과 함께 대중문화 분야와의 공정성 문제 등이 지적됐는데 홍소영 병무청장은 "국민 의견을 고려해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병무청 국정감사는 예술·체육 분야 병역특례 제도가 쟁점으로, 여야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제도 개선을 주문하고 나섰다. 앞서 국방부와 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상대로 열린 국감에서도 병역특례 제도에 대한..

이번엔 대동교… 트램 공사로 15일부터 왕복 2차로 축소
이번엔 대동교… 트램 공사로 15일부터 왕복 2차로 축소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공사에 따라 오는 15일부터 동구 대동교 일대 차량 통행이 일부 제한된다. 60년 넘은 노후 교량을 철거하고 새 교량을 건설하는 공사로 2028년 6월까지 약 21개월간 기존 왕복 4차로가 2차로로 축소된다. 특히 19일부터 유성구 대덕대교, 11월에는 충남대학교 앞 온천교 개축공사까지 예정돼 있어 트램 공사에 따른 교통 불편이 대전 주요 도로 곳곳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12일 대전시에 따르면 도시철도 2호선 13공구에 포함된 대동교 개축공사로 10월 15일부터 대동오거리~베스티안병원네거리 구간의 차량..

대전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손실 메꾸려 임대주택 분양 전환
대전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손실 메꾸려 임대주택 분양 전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대전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 장기간 지연으로 손실액이 증가하자 공공임대주택을 줄이고 분양주택을 늘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미뤄진 사업 기간, 주민에게 이주비와 주거비 등은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고, 화재와 폭염 등에 따른 건강 피해조사는 물론 준공 때까지 거주할 이주대책도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문제도 나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장종태 의원(대전 서구갑)이 국토교통부와 LH가 제출한 대전역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을 분석해 12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이 사업은 2022년 6월 착공해 2026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덕구의회 파행에 뿔난 주민과 단식 돌입한 김찬술 구청장 대덕구의회 파행에 뿔난 주민과 단식 돌입한 김찬술 구청장

  • 코로나19 무료 예방접종 오늘부터 시작 코로나19 무료 예방접종 오늘부터 시작

  • 대전 주말 축제 ‘북적북적’ 대전 주말 축제 ‘북적북적’

  •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 모래판 위에서 펼쳐진 한판 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