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낙엽을 밟으며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낙엽을 밟으며

김명순(대전문인총연합회장)

  • 승인 2021-11-24 16:51
  • 신문게재 2021-11-25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2021020901010006127
김명순 문인협회장
저녁 산책길을 나서는데 가로수 길에 노란 은행잎이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 나뒹군다. 은행잎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얼굴들이 그려진다. 낱장의 흑백 사진이 이내 천연색 동영상으로 변하여 이마 위 하늘에 영화관 스크린처럼 나타난다. 갑천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간다. 갑천 상류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은 고향을 향해 달려간다. 정림보를 지나 노루벌 흑석리로 달려가 두물머리 정방이 마을에서 머뭇거린다. 왼쪽으로 가면 한삼천 벌곡을 지나 대둔산 수락계곡으로 이어지고, 오른쪽 두계천은 금암리 고향 마을을 지나 계룡산 암용추 숫용추 발원지로 이어진다. 고향에서 내려오는 물빛에 얼굴을 비춰보고 강바람을 마시면 엄마 냄새가 나는 듯 행복하다.

산책길에서 매일 만나는 흰뺨검둥오리는 오리발을 내저으며 잠수질하느라 바쁘고, 언제나 홀로 서 있는 쇠백로는 기도하는 수도승처럼 부동으로 서 있다. 사람들이 가을이면 단풍을 찾아간다. 나무들이 오색 찬란한 옷을 벗는 가을 산에서 떨어져 누운 단풍잎을 거울 들여다보듯 보는 까닭은 자신의 삶을 비춰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땅에 태어난 것이 참 다행이며 행복한 것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분명한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한곳에 머물러 살아도 사계를 여행하며 날마다 다르게 변하는 자연과 동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의 변화를 모르고 열심히 사는 사람도 가을이 오고 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가을이 관조의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에는 온갖 꽃 빛에 반하고 꽃향기에 흥분하여 춤을 추지만 가을에는 단풍을 바라보다 낙엽을 밟으며 고개 숙인다. 찻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보며 사색에 잠기는 계절이다.

시인을 가리켜 자연을 관조하는 사람이라 했다. 시인은 사람을 스승으로 삼기보다 자연을 스승으로 삼는다. 자연에 존재하는 생명체에 자기 자신을 비춰보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꽃이 되었다가 낙엽이 되고, 우렁이가 되고 지렁이도 된다. 차에 치여 죽은 고라니가 되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짐승들만 차에 치여 죽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도 병들어 죽는 사람보다 횡사로 세상을 뜨는 사람이 더 많다. 죽는 줄도 모르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뛰어다니지 말고 천천히 걸어 다녀야 한다. 자연은 뛰어가지 않는다. 시계의 초침처럼 항상 같은 속도로 가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자연을 관조하며 산다면 언어가 아닌 마음이 통하는 삶으로 즐거워할 것이다.



계절을 관조하는 삶을 살다 보면 흐르는 시간을 관조하며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하루의 시간을 여행하는 즐거움도 있다. 아침에 뜨는 해를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은 하늘을 걸어가는 해를 바라보면 해가 웃어준다. 아름답게 석양을 물들이며 지는 해를 바라보기도 하고 밤에는 달과 별을 바라보며 독백의 시간을 갖는 일을 가끔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시간을 관조하는 삶이란 항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경건한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혹시 좋은 소식이 있을까 하여 텔레비전 뉴스를 본다. 그런데 뉴스 속에 뉴스가 없다.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소리를 전해주고 있다. 개인마다 자기 의견을 발설할 수 있는 유튜브가 일상화되다 보니 맑은 물을 흐리게 하는 유튜버들이 난무하고 있다. 자연을 관조하는 삶은 미디어로 흔들리는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가을 낙엽 진 나목의 침묵을 배워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유형이 무형을 낳고 무형이 유형을 낳는다. 관조의 시간이 무형이라면 삶은 유형의 시간이다. 이제 와 관조의 의미를 더듬다 보니 인생의 시간도 저물어간다. 오늘은 배추를 거둔 밭에 나가 마늘을 심어야겠다. 나는 아버지처럼 서서 쇠스랑 질을 하고 아내는 어머니처럼 엎드려 호미질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겨울을 지나 내년 하지까지 남새밭을 지켜줄 마늘을 심어야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파멥신' 상장 폐지...뱅크그룹 '자금 유출' 논란 반박
  2. "중부권 산학연 역량 모은 혁신 벨트 구축 필요"…충남대 초광역 RISE 포럼 성료
  3. [사설] 지역이 '행정수도 설계자'를 기억하는 이유
  4. 2월 충청권 아파트 3000여 세대 집들이…지방 전체 물량의 42.9%
  5.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1. [사설] 대전·충남 통합, 여야 협치로 풀어야
  2. 대청호 수질개선 토지매수 작년 18만2319㎡…하천 50m 이내 82%
  3. 대전교도소 수용거실서 중증 지적장애인 폭행 수형자들 '징역형'
  4. 2025 대전시 꿈드림 활동자료집 '드림이쥬3'
  5. "충청의 거목 고이 잠드소서" 이해찬 前총리 별세 지역與 '애통'

헤드라인 뉴스


선거 코앞인데…대전·충남 통합시장 법적근거 하세월

선거 코앞인데…대전·충남 통합시장 법적근거 하세월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후보자 등록이 다음 주부터 시작되지만, 통합시장 선거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일선에서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과 달리 통합시장 선출을 위한 제도적 준비는 하세월로 출마 예정자들의 속만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현재로선 통합시장 선거에 깃발을 들고 싶어도 표밭갈이는 대전과 충남에서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7일 대전·세종·충남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제9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은 다음달 3일부터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선거를..

대전 주요 외식비 1년 새 6% 인상... 도시락 싸는 직장인 많아졌다
대전 주요 외식비 1년 새 6% 인상... 도시락 싸는 직장인 많아졌다

대전 주요 외식비가 1년 새 많게는 6% 넘게 오르면서 직장인들의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김치찌개 백반은 전국에서 가장 비싼 음식으로 등극했고, 삼겹살을 제외한 7개 품목 모두 가격이 일제히 상승하며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는 이들도 늘어나는 모습이다. 27일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시스템 참가격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대전 외식비는 삼겹살 1인분 1만 8333원이 전년대비 동일한 것을 제외하곤 나머지 7개 품목 모두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많은 오름세를 보인 건 김밥으로, 2024년 12월 3000원에서 2025년..

故 이해찬 전 총리 대전시민분향소 지역정치권 추모행렬
故 이해찬 전 총리 대전시민분향소 지역정치권 추모행렬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서거에 대전 정치권이 정파를 넘어 애도의 뜻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전시당 인사들이 잇따라 시민분향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27일 더불어민주당 대전시당에 마련된 시민분향소에는 이날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뿐 아니라 여야 정치권 인사들도 분향소를 찾아 헌화와 묵념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김제선 중구청장과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출근 전 분향소를 찾아 헌화와 묵념으로 애도의 뜻을 전했다. 오후 3시에는 박정현 대전시당위원장을 비롯해 장철민·장종태 국회의원, 허태정 전 대전시장과 당원들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포춘쿠키 열고 ‘청렴의식 쑥’

  •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강추위에 얼어붙은 인공폭포

  •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100도 달성한 사랑의 온도탑과 무료배식의 긴 줄

  •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 코스피, 코스닥 상승 마감…‘천스닥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