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소제방죽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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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소제방죽 도깨비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 회장

  • 승인 2022-03-23 15:01
  • 신문게재 2022-03-24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백남우=대전향토문화연구회장
백남우 대전향토문화연구회 회장
대전은 삼대 하천이 도심을 흐르는 수변 환경이 좋은 도시다. 유년 시절을 회상해보면 원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주변에는 논과 같은 습지가 많았다. 어릴 적 논길을 혼자 걸어갈 때 길가에 둠벙(물웅덩이)이 있으면 물귀신이 물로 당긴다는 이야기가 떠올라 무서운 마음에 잰걸음으로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저수지 혹은 방죽으로 불리는 곳은 가뭄 시에 수원 되기도 하지만 전통의 생태연못이기도 했다. 이곳에는 여러 가지 수초와 함께 다양한 수생 식물과 습지 동물이 사는 공간이기도 했다. 쌀방개, 똥방개, 까불이방개(물매미), 소금쟁이 등 볼거리가 많았다. 더운 여름날 아이들은 방죽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멱을 감기도 했다. 물가에 모여드는 말잠자리(왕잠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흔한 밀잠자리를 먼저 잡아 무명실에 다리를 묶었다. 그리고 족제비싸리 가지를 하나 꺾어 끝에 메어 채를 만들었다. 다음에는 호박꽃 수술의 꽃가루를 밀잠자리 몸통과 날개에 문질러 노랗게 칠을 했다. 왕잠자리가 날아오면 "어다리 어다리" 외치며 원을 그리면서 채를 돌렸다. 말잠자리가 짝짓기를 위해 붙으면 잽싸게 낚아채 손가락 사이에 날개를 끼워 잡아두었다. 커다란 저수지인 방죽은 풍광이 아름다워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긴 방죽 둑 끝에 서면 바람에 이는 수면의 잔물결과 함께 풍겨오는 비릿한 해캄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 맴도는 듯하다. 장마철 물이 불어나면 방죽의 수면 위를 낮게 날며 벌레를 잡는 제비들의 날갯짓이 멋져 보였다.

대전에는 과거 이름있는 큰 방죽들이 많았다. 홍도동의 '잔다리방죽', 대흥동의 '테미방죽', 소제동의 '개나리방죽(소제방죽)' 등이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이름마저 희미해져 아는 이들도 드물다. 대전역 동편 카페촌으로 알려진 소제동 철도 동관사촌은 대전에서 가장 큰 방죽인 소제방죽이 있던 곳이다. 호반에는 삼매당팔경으로 유명한 박계립의 삼매당과 우암 송시열이 거처했던 '기국정'이 있었다. 주변에는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연꽃이 만발한 중국 항주의 서호에 버금가는 호수였다. 요즘 소제동은 소문난 카페촌들이 생겨 많은 이들이 찾는 지역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소제방죽'은 두 가지 전설이 전해져 온다. 하나는 흔히 알고 있는 장자못(長者못) 전설로 스님과 인심이 고약한 부자 영감과 며느리가 등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소제방죽 도깨비 전설이다. 우암의 외손인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이 어려서 숫방이(탄방)에서 외가인 소제로 놀러 왔을 때다. 우암이 어린 유회당에게 걱정하는 소리를 하자 이에 마음이 상한 유회당이 혼자 늦은 저녁에 숫방이 집으로 간다고 집을 나선 것이다. 우암은 걱정이 되어 하인들을 시켜 뒤쫓아 가보게 했다. 한 참 후 하인들이 돌아오자 우암께서 어찌 되었나 하인들에 물어보았다. 하인들은 어린 권이진이 집을 나서자 소제방죽 도깨비들이 횃불을 들고 튀어나와 가마에 어린 유회당을 모시고 "권판서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하며 숫방이 집에까지 모셨다고 하니, 우암은 정승이 아니고 판서더냐? 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대전은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근대적 도심이 형성됐다. 그러나 지역의 전통마을 해체와 전통 경관의 훼손 또한 피하지 못했다. 그 해체된 터전에 세워진 것이 대전 소제동 철도 동관사 지역이다. 지금은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유명한 카페촌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원래 대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소제호가 있었던 자리였다. 소제방죽은 예전부터 물 천냥, 물고기 천냥, 개나리 천냥으로 장자못으로 불리어 왔다. 소제동은 멋진 카페촌만이 아닌 삼매당팔경과 조선시대 명유 우암송시열이 효종임금과 북벌을 논하던 장소이기도 했다. 우암과 그의 외손자 유회당 권이진의 전설인 '소제방죽 도깨비전설'을 스토리텔링 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물과 도깨비불이 어울리는 '도깨비 축제'를 열어 볼 만하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카페촌으로 여기던 공간이 역사적 장소로 바뀌면서 소제호라는 멋진 공간과 그곳에서 있었던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 속의 도깨비 전설을 모티브로 지금은 없어져 대동천 일부로 남겨진 소제호의 물과 도깨비불의 향연을 펼쳐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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