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44강 起死臥死(기사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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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144강 起死臥死(기사와사)

장상현/인문학 교수

  • 승인 2022-11-15 10:12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144강: :起死臥死(기사와사) : 서서 죽으나 누워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

글 자 : 起(일어날 기), 死(죽을 사), 臥(누울 와),

출 처 : 고금청담(古今淸談), 임종대(林種大)의 한국고사성어(韓國故事成語)

비 유 : 이러나, 저러나 결과는 마찬가지를 비유함

조선 제 17대 효종(孝宗) 때 무인 출신 우의정 이완(李浣/ 1610 ~ 1674)은 본관이 경주이고, 호(號)가 매죽헌(梅竹軒)이며, 시호(諡號)는 정익공(貞翼公)이다.

젊은 시절 사냥을 좋아했던 그가 하루는 노루를 쫓다가 날이 저물어 깊은 산속을 헤매게 되었다. 그런데 산중에 대궐 같은 큰 집이 있어 대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갓 스물이 될까 말까 한 아름다운 여인이 나와서 말했다.

"여기는 손님이 머물 곳이 못 되니 그냥 돌아가도록 하십시오."

이완이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이 깊은 산중에 날은 저물고 인가도 없는 데 어디로 가겠소? 아무 데라도 좋으니 하룻밤 쉬어가게 해 주시오."

여인은 "잠자리를 드리지 않으려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손님께서 여기에 머무시면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들어오시오."

이완은 주저하지 않고 "좋습니다. 나가서 맹수의 밥이 되나 집 안에서 죽으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이렇게 해서 이완은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여인이 홀로 깊은 산중에 있게 된 사연을 들었다.

"이곳은 도둑의 소굴입니다. 저는 본래 양가의 딸이었으나 여기에 잡혀 와서 벌써 한 해를 넘겼습니다. 비록 비단으로 몸을 감고 구슬로 치장했으나, 감옥살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저의 간절한 소원은 하루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좋은 사람을 만나 평생을 편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친 여인은 밥을 짓고, 도둑들이 사냥해온 고기로 반찬을 장만하여 술과 함께 상을 차려왔다. 이완은 배부르게 먹고 거나하게 취하여 여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수작을 벌였다.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인가 싶소. 또 정절을 지켜 몸이 깨끗하다 하더라도 누가 믿어 주겠소? 인명은 재천이라 했으니 생사는 하늘에 맡겨 두고 귀한 인연이나 맺어 봅시다."

이완은 여인을 꼬여 한바탕 뜨거운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다. 그때 뜰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재촉했다.

"큰일 났습니다. 도둑의 우두머리가 왔습니다." 그러나 이완은 침착하게 말했다.

"이제 당신이나 나는 일어나도 죽고, 누워 있어도 죽을 거요. 그냥 이대로 있도록 합시다."

이윽고 도둑의 우두머리가 방으로 들어왔다.

"웬 놈이 감히 이곳에 들어왔느냐? 이완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이 천천히 말했다.

"노루를 쫓다가 길을 잃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소이다."

"그러면 행랑에나 머물 것이지 감히 남의 유부녀를 범하다니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사람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 법이오. 무엇을 두려워하겠소!"

도둑은 굵은 새끼로 그를 묶어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여인으로 하여금 멧돼지를 삶고 술을 가져오게 했다. 도둑은 고기를 썰어 우물무물 씹으며 술 한 동이를 다 마셨다. 묶여 있던 이완이 말했다.

"여보시오 나도 한 잔 합시다. 아무리 인심이 야박하기로서니 어찌 사내가 옆에 사람을 두고 혼자만 술을 마신단 말이요!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나도 고기 맛이나 보고 죽읍시다."

도둑은 "참으로 큰 그릇이로다" 하며 포박한 것을 풀어 주면서 말했다.

"이제 비로소 대장부를 만났습니다. 장차 나라의 큰 간성이 될 인재를 내 어찌 죽이겠습니까. 우리 같이 한 잔 합시다. 도둑은 다시 술상을 차려오게 하여 서로 취하게 마셨다.

"저 여인은 이제까지는 나의 아내였으나 그대와 이미 정을 통했으니 지금부터는 그대가 가지시오."

도둑은 이완에게 형제의 의를 맺자고 하며 말했다.

"내가 뒷날 어려움을 당하여 내 목숨이 그대의 손에 달리게 될 때가 있을 것이오, 그때 오늘의 정의(情誼)를 잊지 않는다면 고맙겠소."

이완은 그의 말대로 뒷날 과거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현령. 군수. 부사 등을 거쳐 평안도 병마절도사에 올랐다. 그리고 1636년에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김자점(金自點)을 도와 정방산성(丁方山城) 싸움에서 크게 승리했다. 효종이 송시열(宋時烈)과 북벌을 계획하자 신무기 제조, 성곽 개수 및 신축 등 전쟁 준비를 완벽하게 해냈다.

그러나 효종의 갑작스런 별세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그 후 수어사, 포도대장 등을 거쳐 우의정에까지 올랐다. 그는 보기 드물게 문무(文武)를 겸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가 포도대장 시절 어느 날 큰 도둑을 잡아 처형하려다가 자세히 보니 바로 옛날 형제의 의를 맺었던 그 도둑이었다.

이완은 효종에게 도둑과의 지난날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용서케하여 인재로 등용하였다. 도둑은 무과에 급제하여 성(城)을 지키는 부장이 되었다.

옛 한 구절의 글을 음미해보자

天下有大勇者 猝然臨之而不驚 無故加之而不怒 比其所挾持者 甚大而其志甚遠也(천하유대용자 졸연임지이불경 무고가지이불노 비기소협지자 심대이기지심원야)

천하에 크게 용기 있는 자는 갑자기 큰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으며, 이유 없이 당해도 성내지 않는다. 이는 그 품은 바가 심히 크고 그 뜻이 심히 원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장부 기질을 소유한 자만이 나라를 바로세우고, 위기 대처가 가능할 수 있다.

장상현/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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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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