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대지를 잃어버린 사람들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대지를 잃어버린 사람들

이은봉 시인·대전문학관 관장

  • 승인 2023-08-30 08:58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30830085252
이은봉 관장
지난 8월 23일은 절기상 처서(處暑)다. 처서는 이십사절기 중의 하나로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있다. 처서는 일 년 중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는 때를 가리킨다.

늦여름 더위가 물러가면 곧바로 가을이 온다. 그렇다. 지금도 가을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다. 하지만 낮에는 혹서(酷暑)가 계속되고 있어 사람들을 겁나게 한다. 이상 기온이니, 기후 위기니 하는 말들이 실감 나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 이상 기온이니, 기후 위기니 하는 말들이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환경오염과 결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환경오염은 흔히 수질오염, 대기오염, 토양오염으로 나누어진다. 물론 이들 환경오염이 모두 다 산업화의 산물, 근대화의 산물이라고 해야 옳다. 산업화, 근대화 이전에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 환경오염이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국내외적 요인에 의한 미세 먼지 문제, 곧 대기오염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이 일본의 핵폐수 방류로 인한 수질오염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오염된 바닷물로 인해 건강에 어떤 이상이 올는지 모르니 사람들이 심각하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과 같은 산업 문명 속에서 살아가게 되면 환경생태문제가 그치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환경생태문제라는 것이 본래 산업 문명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 시대의 산물, 근대라는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근대라는 이 시대에는 사람들의 삶이 수많은 건물과 빌딩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중심으로 영위될 수밖에 없다. 도시를 중심으로 영위되는 산업 문명의 삶에게는 처서, 입추, 백로 등의 이십사절기가 의미를 갖기 어렵다. 이들 이십사절기가 자신들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들 이십사절기는 근대 이전의 것, 곧 농경사회의 것일 따름이다.

근대 이전의 것, 곧 농경사회의 것일 따름이라는 말에는 그것들이 근대로 넘어오면서, 곧 자본주의 산업 문명 시대로 넘어오면서 다 버리고 온 것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 하지만 지금 그것들을 정말 다 버려도 되는가. 나는 사람들이 자연을, 대지를 버리지 못한다면 이것들도 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뜻 있는 사상가들이 거듭 '탈근대' 혹은 '근대 이후'를 말하고 있다. 혹자는 '근대 극복'이라는 용어를 통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어떻게 자본주의 다음 세계로 좋게, 따듯하게, 바람직하게 넘어갈 것인가. 이것이 그들이 저 자신을 괴롭히며 되묻고 있는 주제이다. 백낙청 선생도 그런 분 중의 하나이다. 그는 제대로 근대에 적응하며 바르게 근대를 극복해야 하는 이중과제가 오늘의 사람들에게 주어진 핵심문제라고 강조한다.

근대를 극복한 사회, 탈근대의 사회, 근대 이후의 사회……. 어떤 말로 표현하더라도 이들 용어에는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세상에의 꿈이 들어 있다.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세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일까. 지금과 같은 교통지옥이 횡행하는 도시 중심의 사회는 아닐 듯싶다. 정신없이 바쁘고 분주한 속도 중심의 도시 사회도 아닐 듯하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회, 끊임없이 경쟁이 부추겨지는 사회, 사람이 아스팔트 조각처럼 팽개쳐지는 사회도 아닐 것 같다.

그래서일까. 도시 중심의 삶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그곳에 자연이 십분 살아 있기를 바란다. 잎사귀 넓은 나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숲이 있고, 미역을 감으며 놀 수 있는 냇물이 있고, 투망을 던져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강물이 있는 도시 말이다. 무더운 여름날 숲 그늘에 누워 낮잠 한 번 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자연을 잃어버린 채, 대지를 잃어버린 채 허겁지겁 살고 있다. 그러니 꽃이 피는 줄도 알지 못하고, 열매가 맺히는 줄도 알지 못한다. 자연을 잃어버린 사람들, 대지를 잃어버린 사람들……, 이들에게도 미래가 있을까.

/이은봉 시인·대전문학관 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셔츠에 흰 운동화차림' 천태산 실종 열흘째 '위기감'…구조까지 시간이
  2. 노노갈등 논란에 항우연 1노조도 "우주항공청, 성과급 체계 개편 추진해야"
  3. 응원하다 쓰러져도 행복합니다. 한화가 반드시 한국시리즈 가야 하는 이유
  4. ['충'분히 '남'다른 충남 직업계고] 홍성공업고, 산학 결합 실무중심 교육 '현장형 스마트 기술인' 양성
  5. "행정당국 절차 위법" vs "품질, 안전 이상없어"
  1.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2. 김태흠 충남도지사, 일본 오사카서 충남 세일즈 활동
  3. 유성구장애인종합복지관, 여성 장애인들 대상 가을 나들이
  4.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5. "대전 컨택센터 상담사님들,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헤드라인 뉴스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절차 위법"-"안전 이상무" 팽팽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절차 위법"-"안전 이상무" 팽팽

정치권 일각에서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 논란을 제기한 가운데 23일 현장에서 열린 정부 안전점검에서도 서로 극명한 견해차를 드러냈다. 안전 논란을 처음 들고 나온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동구)은 행정당국의 법정 절차 위반을 대전시는 자재의 품질과 교량의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점에 각각 방점을 찍었다.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동구)에 따르면 이날 점검은 국토교통부, 국토안전관리원, 건설기술연구원, 대전시 등 관계자가 참석했다. 회의 이후 장 의원은 대전시가 중고 복공판을 사용하면서 법정 절차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적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한 충남도의 명산과 습지가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힐링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청양 칠갑산을 비롯해 예산 덕산, 공주 계룡산, 논산 대둔산, 금산 천내습지까지 각 지역은 저마다의 자연환경과 생태적 특성을 간직하며 도민과 관광객에게 쉼과 배움의 공간을 제공한다. 가을빛으로 물든 충남의 생태명소를 알아본다.<편집자 주> ▲청양 칠갑산= 해발 561m 높이의 칠갑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칠갑산 가을 단풍은 백미로 손꼽는다...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개물림 피했으나 맹견 사육허가제 부실관리 여전…허가주소와 사육장소 달라

대전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목줄을 끊고 탈출해 대전시가 시민들에게 재난안전문자를 발송한 사건에서 견주가 동물보호법을 지키지 않은 정황이 여럿 확인됐다. 담장도 없는 열린 마당에 목줄만 채웠고, 탈출 사실을 파악하고도 최소 6시간 지나서야 신고했다. 맹견사육을 유성구에 허가받고 실제로는 대덕구에서 사육됐는데, 허가 주소지와 실제 사육 장소가 다를 때 지자체의 맹견 안전점검에 공백이 발생하는 행정적 문제도 드러났다. 22일 오후 6시께 대전 대덕구 삼정동에서 맹견 핏불테리어가 사육 장소를 탈출해 행방을 찾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 재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 한화이글스 우승 기원 이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