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망부석이 된 정읍사 여인의 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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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망부석이 된 정읍사 여인의 정한

김선호 한밭대 명예교수·전 인문대학장

  • 승인 2023-11-22 11:24
  • 수정 2023-11-22 11:31
  • 신문게재 2023-11-23 19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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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호 명예교수
우리의 고전시가 중 '정읍사', '가시리'를 일러 '고려문학의 정수, 한국어문학의 절세, 우리 고전문학의 백미라 평가해도 무리는 아니라고 본다. 모두 현전 시가다. 고전문학의 특징 중 하나인 절절한 정한(情恨)이 감성적이며 서정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어문학의 고전 작품 중 정읍사를 고려 속요의 한 작품으로 다루어 왔던 것은 문제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정읍사가 비록 한국문학 형태상 고려 가요와 닮은 형태이고, 연시이고, 후렴(여음)이 있고, 특히 3음보로 고려 속요와 같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러하다 하더라도 고려 시대보다 앞서는 백제 때에 존재한, 그것도 한글로 적혀 전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요, 현전하는 백제 유일한 노래를 후대에 개국한 고려의 속요로 설정한 것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라 본다.

정읍사 가사를 해석(풀이)하면 "달님이시여, 높이 돋으시어/ 멀리 비치어 주십시오.// 시장에 가 계시옵니까?/(밤길에) 진 데를 디딜까 두렵습니다.// 아무데나 부려 놓고 오십시오/남편 가는 곳에 (길이) 저물까 두렵습니다"와 같이 대동소이(大同小異)다.



이 노래는 백제 때 '행상인의 아내'가 지은 것으로, 행상 나간 남편이 밤길에 무사하기를 바람'이 주제인 이 노래는 고려의 대표적 문학인 '시조'의 모태'로 본다. 까닭은 후렴을 제외하면 3장 6구의 '시조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설화를 보면. "정읍에 한 행상인이 집을 떠난 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아내가 등점산 위 바위에 올라가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달에게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하염없이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망부석'이 되었다 한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우리 한국문학의 절조라 일컫는 '정읍사'에 대해 감상해 본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정읍사에 井은 우물 정(井)이요 邑은 고을 읍(邑)이라. 우리 토박이 '우물'의 다른 말은 '샘'이 되고, '고을'을 축약하면 '골'이 된다. '샘' +'골' = '샘골'이 된다. '샘골'을 성적으로 비유하면 여성의 '거시기'다. 가사 첫째 연의 '달'(月`)은 오래전부터 천지신명으로 여겨져 왔다.



또 늘 여성의 호소 대상이다 '달'은 행상인의 아내의 청으로 높이 떠서 맑은 명경이 되어 남편의 행상 길을 보호해 주고 이제의 인공위성과 같이 감시해 준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남편의 직업은 행상인이고 장돌뱅이다. 행상인의 아내는 남편 장마다 다니며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장이 파한 뒤 다음 장으로 이동하면서 어찌 지내는지를 손금 보듯 알 수 있다.

그 예증이 2연의 '즌 데'/'진 곳'이다. 이 낱말 속에 행상인 아내, 똑소리 나는 아내의 예리한 숨겨진 속내, 그 속에 질문과 의혹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해답이 숨겨져 있음을 본다. 3연의 "노코시라"(놓고 오시라)나 "졈그를세라"(저물까 두렵습니다)도 사실 숨겨 았는 속셈은 2연의 '즌 데>에 빠지지 마시라'. 즉 한 남편만을 섬기는 아내와 여러 사내와 어울렸을 '주모'나 '새끼 가시나'는 정조면에서 비교 대상이 되질 못한다. '아내'가 '마른 곳, 건조한 곳, 깨끗한 곳이라면 '주막의 여인'은 질은 곳, 습한 곳, 더러운 곳'에 비견된다. '상반되는 비유'의 전형이다. 그러니 '주막집들의 질척대는 여인들'<즌 데>에게 빠지지 말고 짐일랑 어디에 두고 오던 어두운 밤길이라 집에 갈 수 없다는 핑계 대지 말고 어서 집으로 오시라는 것이 행상인 아내의 진솔한 질투와 염려다. 그 염려를 상스런 말로 탓하질 않고 고차원적인 비유를 써서 '달님'에게 빌었다. 그러나 짐작으로도 알 수 있듯이 무정한 남편은 진 곳에 빠져 버리고 소식을 알 수 없는 우리의 이웃인 행상인 아내는 마땅히 있을 법한 원망 한마디 남기지 않는 참스러운 마음을 지닌 채 망부석이 됐다.

문학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하여 어느 시대를 알려면 역사를 알아야 하겠지만, 문학을 들여다보면 현미경으로 보듯 좀 더 다양하고 그냥 지나쳐서는 아니 될 것들을 알게 되는 장점이 있다. 필자가 삼가 이 땅의 남자, 남성, 사내, 머슴아, 남편, 가장, 애비들에게 고하오이다, 제발 바라기 옆에 있는 이에게 진정 있을 때 잘하기를 바라오이다. 고맙소. 고맙소. 나 그대를 사랑하오! 가수 조항조가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 같소이다.

/김선호 한밭대 명예교수·전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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