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아파트를 사랑한 민족, 밀도를 이해한 사회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아파트를 사랑한 민족, 밀도를 이해한 사회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 승인 2025-05-01 14:31
  • 신문게재 2025-05-02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50501095532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꿈이다. 자산으로서도, 삶의 기반으로서도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가치를 지닌 대상이다. 여유가 생기면 더 넓고, 더 좋은 곳을 찾아 나서는 우리의 모습은 익숙하다. 그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산업화 이후 급격히 진행된 도시 집중 현상이 큰 몫을 했다. 모두가 도시로 몰려들면서 한정된 공간에 더 많은 인구를 수용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주거 공간은 수직적으로 확장됐다. 이제는 10층을 훌쩍 넘는 고층 아파트가 도심 곳곳에 들어서며, 우리는 고밀도 공간에 적응한 '도시의 생명체'처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공간에 대한 감각은 주거 공간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더 오래 가기를 바라면서도 점점 얇고 가벼워지기를 기대한다. 전기차는 좁은 공간에 배터리 셀을 최대한 많이 넣어 얼마나 멀리 주행할 수 있느냐가 구매의 핵심 기준이 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밀도'라는 개념과 싸우며 살아간다. 작은 공간에서 최대의 성능과 가치를 뽑아내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생존 방식이다.

이제 이 감각은 에너지 문제에도 적용돼야 한다. 대도시의 삶에서 전기는 물과 공기처럼 필수적인 자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전력을 지방에서 생산하고, 대도시로 송전하는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공식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신규 송전선 건설은 토지 보상, 주민 민원, 환경 논란 등으로 10년 이상 지연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제는 대도시도 전력을 외부에 의존하는 대신, 자급자족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시 안에 전력 생산시설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도시의 공간은 제한적이고, 주민들의 요구도 다양하다. 여기서 중요한 기준이 바로 에너지 밀도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고밀도 발전원이 필요하다.

에너지 밀도란, 단위 질량, 부피, 또는 면적당 저장하거나 방출할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휘발유는 약 45메가줄(MJ)/kg의 에너지 밀도를 가진다. 반면, 우라늄-235는 핵분열을 통해 약 80,000,000MJ/kg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이는 휘발유 대비 약 180만 배의 차이다. 태양광은 어떨까? 태양광 패널은 보통 제곱미터당 150W 정도의 출력을 낸다. 하지만 하루 일조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실제 수요 대응은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아파트 옥상 전체를 태양광 패널로 덮어도 꼭대기층 몇 가구의 수요밖에 충당하지 못하며, 별도의 부지를 이용한다면 아파트 단지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 발전소를 지어야 한다. 이는 태양광이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저밀도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반면, 원자력은 밀도의 대명사다. 원자력은 핵분열 반응을 통해 원자의 핵에 응축된 결합 에너지를 방출한다. 이 에너지는 원자 껍질에 존재하는 전자 간 상호작용, 즉 화학반응을 통해 방출되는 에너지보다 훨씬 크다. 화학반응이 복숭아의 껍질을 떼어내는데 필요한 힘을 낼 수 있다면, 핵반응은 복숭아의 단단한 씨를 쪼갤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더라도 원전을 도심 가까이에 설치하는 것에 대한 시민의 우려는 여전하다. 최근에는 사고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소형 모듈 원자로(SMR) 기술이 빠르게 개발되고 있으며, 그 안전성이 주목받고 있다. SMR은 기존의 대형 원전보다 작고 유연하게 설계돼 지역 단위 전력 수요에 맞춘 분산형 발전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결국 문제는 기술의 가능성과 사회적 수용성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있다. 송전망은 더 이상 확장하기 어려우며, 재생에너지로만 도시를 지탱하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우리는 고밀도 도시를 살아가고 있으며, 그 도시를 지탱할 수 있는 고밀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아파트는 단지의 형태를 넘어서, 한정된 공간에서 인간의 삶을 최적화해 온 구조물이었다. 에너지 역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작고 강한 공간, 작고 강한 에너지. 우리가 사랑해 온 삶의 방식은, 미래의 에너지 방식과 맞닿아 있다. 조재완 한국원자력연구원 경제성분석실 선임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천 연수구, 지역 대표 얼굴 ‘홍보대사 6인’ 위촉
  2. 시흥시, 별빛 축제 ‘거북섬’ 점등식
  3. 행정수도와 거리 먼 '세종경찰' 현주소...산적한 과제 확인
  4. 대전 방공호와 금수탈 현장 일제전쟁유적 첫 보고…"반전평화에 기여할 장소"
  5. 호수돈총동문회, 김종태 호수돈 이사장에게 명예동문 위촉패 수여
  1. [경찰의날] 대전 뇌파분석 1호 수사관 김성욱 경장 "과학수사 발전 밑거름될 것"
  2. 초등생 살해 교사 명재완 무기징역 "비인간적 범죄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3. "아산으로 힐링 가을여행 오세요"
  4.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5. "일본에서 전쟁 기억은 사람에서 유적으로, 한국은 어떤가요?"

헤드라인 뉴스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사실상 큰산 넘은 CTX… 행정수도 완성에 발맞춰야

대전과 세종, 충북을 급행철도로 연결하는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가 민자적격성조사 문턱을 넘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비례)이 행정수도 세종 완성을 위한 CTX의 조기 개통 로드맵 마련을 주문했다. 황 의원은 21일 대전 동구 한국철도공사 본사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철도공사(코레일)·국가철도공단·에스알(SR)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 50번에는 행정수도 세종 완성이 있고, 그 주요 내용을 보면 전국 접근성 개선에서 서울에서 1시간 전국 주요 도시에서 2시간 접근 가능한 교..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2025 AAPPAC 대전총회 개막…"지역의 영감이 세계로 확산되다"

과학과 예술의 도시, 대전시가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에 우뚝 섰다. 21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한 '2025 아시아·태평양 공연예술센터연합회(AAPPAC) 대전총회'가 3일간의 일정에 돌입했다. '지역적 영감에서 세계적 영향으로(From Local Inspirations to Global Influences)'를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에는 세계 20개국 80여 개 공연예술 기관 관계자가 참석해, 지역이 품은 창의성과 상상력이 세계로 확산되는 길을 함께 모색했다. 첫 번째 세션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K-컬처'에서는 한국 문화예술이..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방사능 위협 여전한데…유성구 뭐했나

대전 유성구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원자력안전 교부세 신설이 수년째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입법이 좌절된 이후 올해 초 또다시 관련법이 제출됐지만,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 나아가 144만 대전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 사안인데 행정당국의 이슈파이팅 부족으로 현안 관철은 멀기만 해 보인다. 21일 취재에 따르면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대전유성을)이 대표발의 한 이른바 '원자력안전교부세법'(지방교부세법 일부개정안) 7월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다. 현재 위원회 차원에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최고의 와인을 찾아라’

  •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제80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즐거운 대학축제…충남대 백마대동제 개막

  •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두꺼운 외투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