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더위의 철학, 피서의 미학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더위의 철학, 피서의 미학

  • 승인 2025-08-11 17:04
  • 신문게재 2025-08-12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박남구 회장
박남구 (사)대전시컨택센터협회장
올해의 7월과 8월의 더위는 어느 해보다 기세등등하다. 창밖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르 흐르고, 태양은 마치 무례한 손님처럼 에어컨 바람을 찾아 이리저리 피하게 만든다. 연일 뉴스에서는 온열 질환 주의보를 반복 재생하고, 마트에서는 얼음이 물보다 비싼 상품이 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매년 겪는 여름이지만 해마다 그 강도는 더해지는 듯하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한 온도도, 우리의 마음도 뜨거워 질대로 뜨거워지고 있는 계절이다.

더위는 자연이 주는 일종의 시험 같다. 불쾌지수가 오르면 짜증은 가벼워지고, 인내는 쉽게 끓는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렇다. 똑같은 말 한마디가 여름엔 유난히 더 뜨겁게 들린다. 우리가 무더위 속에서 버티며 배우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냉정함이다. 몸이 뜨거울수록 마음은 차가워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서일까, 여름엔 유독 명상과 산책, 독서 같은 고요한 활동이 권장된다. 내면을 단련하는 계절, 그것이 여름이다.

그러나 피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운 것도 여름이다. 그래서 우리는 '피서(避暑)'라는 지혜를 만들어냈다. 예전에는 산이나 계곡, 바닷가로 몸을 옮기는 단순한 이동이 피서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의 피서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공간은 다양해졌고 방식은 진화했다. 도심 속 북카페에서 보내는 조용한 오후 실내 수영장이나 영화관 또는 AI가 추천하는 최적의 냉방 시간에 맞춰 집을 비우는 스마트한 피서법까지. 피서란, 결국 더위를 슬기롭게 피하는 삶의 방식인 것 같다.

피서는 단지 온도를 낮추는 활동이 아니다. 피서는 몸을 식히는 동시에 마음을 식히는 것이다. 잠시 떠나는 것, 잠시 쉬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생산적인 멈춤일 수 있다. 일 중독 사회에서 피서란 자기에게 주는 작은 자유 선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니 한나절이라도 자신을 피서지로 초대해 보면 어떨까? 여름에 지친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삼계탕이나 냉장고가 아니라 여백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한편, 피서의 방식은 계층 간 차이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누구는 해외 휴양지에서 여름을 보내고 누군가는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콘크리트 옥탑방에서 여름을 견딘다. 폭염은 평등하지만 피서는 불평등한 것 같다. 에너지 복지와 환경 정의가 필요한 이유다. 더위는 기후 문제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임을 깨닫게 한다.

이럴 때일수록 공동체적 의식이 필요하겠다. 지역 주민센터의 무더위 쉼터, 공공 도서관, 지하철역의 그늘 같은 공공의 피서라는 인프라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더위는 함께 나눌 때만 견딜 수 있다. 피서란 혼자 즐기는 사치가 아니라 모두가 누려야 할 생존의 조건일지도 모른다.

지구의 평균 온도는 오르고 있고, 더위는 점점 길어지고, 그 양상 또한 점점 극단화되고 있다. 이젠 피서가 단순한 계절적 대응이 아니라 기후 위기에 맞서는 생존 전략이 되어야 한다. 지구와 나, 개인과 사회, 국가가 함께 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여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러나 그 여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무덥고 힘든 계절이지만 여름은 우리에게 쉼과 회복 그리고 성찰을 권유한다. 더위를 참기보다 더위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 여름은 시련이자 선물이다. 그러니 올여름 당신만의 피서법으로 자신을 잘 돌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당신과 지구에 대한 예의이자 지혜가 아닐까 생각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영원한 2인자' 고 김종필 탄생 100주년, 중용·통합의 정신 기린다
  2. 천안법원, 보관 중인 돈을 돌려주지 않은 60대 변호사 '벌금 2000만원'
  3. 천안시, 공무원 기후위기 대응 역량 강화 특강
  4. 천안시, '손 씻기·위생관리' 수족구병 예방수칙 당부
  5. 천안직산도서관, '손 끝에서 살아나는 작은 세상' 운영
  1. 천안시, 26일 '제16회 작은도서관 학교' 운영
  2. 6·3 지방선거 기간 대전·세종 장애인 투표 과정서 혼선
  3. 판사 낭독 착오로 ‘징역 8년→8개월’… 144억 전세사기범 항소심서 다시 징역 8년
  4. 1조2천억 필수의료 특별회계 곧 시행…"우선순위 논의 시민협의체 필요"
  5. 생활고 이유 대전서 초등생 딸 살해하려 한 부부… 검찰 징역 12년 구형

헤드라인 뉴스


허태정 호(號) 긴축재정 공식화 하나…트램 0시축제 뇌관

허태정 호(號) 긴축재정 공식화 하나…트램 0시축제 뇌관

22일 허태정 대전시장 당선인 인수위원회 1차 브리핑이 예정된 가운데 지역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대전시가 당면한 각종 현안에 대해 허태정 호(號) 노선을 가늠하고 인수위 업무보고 과정 등에서 드러난 민선 8기 민낯에 대해 메스를 들이댈지 여부도 관심사다. 허태정 인수위는 이날 오전 11시 중구 선화동 옛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지난 9일 가동 이후 인수위원장이 시행하는 첫 기자회견을 연다. 이 자리엔 박정현 인수위원장, 이은구 부위원장, 박노동 운영간사 등이 참석한다. 인수위 핵심 관계자는 21일 중도일보와 통화에서 "업무보..

국내 `동전주` 219개 상장폐지 기로…대전 3~5개 기업 `위기`
국내 '동전주' 219개 상장폐지 기로…대전 3~5개 기업 '위기'

7월부터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되는 1000원 미만의 '동전주'가 국내 증시의 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지역에서도 3~5곳의 상장사의 주가가 1000원 안팎에 머물고 있어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9일 기준 국내 증시 상장사 중 주가 1000원 미만인 종목은 총 219개로 집계됐다. 전체 2877개 상장사 중 7.6%에 해당하는 수치다. 코스닥 상장사가 148개로 가장 많았고, 코스피 상장사가 42개, 코넥스 상장사 29개였다. 대전지역 소재의 주가 1000원 미만 종목은 3개..

2027년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부결에 소상공인 `탄식`... "처지 외면한 처사" 비판
2027년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부결에 소상공인 '탄식'... "처지 외면한 처사" 비판

2027년 최저임금을 업종별 차등 적용안이 최저임금위원회 표결 끝에 무산되면서 소상공인들의 탄식이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경기 상황에 직격탄을 맞은 숙박·음식업 등은 다른 업종보다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해야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상공인들의 처지를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저임금위원회는 최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7차 전원회의를 열어 내년 최저임금을 업종별로 달리 적용할지를 놓고 표결했지만, 반대 14표, 찬성 11표, 무효 1표로 출석위원 과반에 미치지 못해 부결됐다. 노사는 최저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하지(夏至)맞은 주말농장 ‘구슬땀’ 하지(夏至)맞은 주말농장 ‘구슬땀’

  • 나라를 위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나라를 위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여름철 풍수해 대비 장비 점검

  •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 수족구 예방…‘꼼꼼하게 손 씻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