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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용 (사)부패방지국민운동총연합 전국여성중앙회장 |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성인식은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아이가 더 이상 부모의 보호 아래만 머무르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공동체 앞에 책임을 지는 성인으로 인정받는 출발점이었다. 특히 유대인의 성인식, 바 미쯔바(Bar Mitzvah)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히브리어로 '율법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이 의식은 만 13세가 된 소년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삶의 선언이다. 이 순간부터 자녀 교육의 주체는 부모가 아니라 하나님이며, 아이는 율법을 스스로 지키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바 미쯔바는 단순히 한 번의 축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인간'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교육적 장치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왜 이토록 성인식을 중시할까. 유대인들에게 자녀는 단순히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맡기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표는 조기 학습이나 성취 경쟁이 아니다. 아이를 '온전한 유대인'으로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온전한 유대인이란 성숙한 성인의 판단력을 갖추고, '나'보다 '우리'를 우선하며, 약자를 돌보는 정의와 평등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유대교의 황금률, 곧 "네가 싫어하는 일을 타인에게 행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바로 이 성인식이 지향하는 정신을 가장 잘 드러낸다.
성인식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유대 가정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엄마의 암송교육', '아빠의 밥상머리 교육', 그리고 아이와 함께 규칙을 세우는 훈련을 통해 성인식을 준비한다. 또한 성인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대인 부모가 특별히 강조하는 덕목은 '신뢰'와 '언어 사용'이다.
사실 우리 민족에게도 이러한 성인식 전통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남자의 관례, 여자의 계례가 바로 그것이다. 관례는 성인이 되었음을 인정받고 이름을 새로 받으며 사회적 책임을 다짐하는 절차였고, 계례는 여성이 어른으로서 품위와 책임을 갖추었음을 공적으로 인정받는 예식이었다. 그러나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 같은 성인례는 점차 사라졌다. 대신 졸업식, 입학식 같은 단편적인 의례만 남았을 뿐, 청소년이 어른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의무를 성찰할 기회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청소년들은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많은 지식을 쌓아가지만, 정작 인성·예절·공동체 정신은 상대적으로 소홀해지고 있다. 더구나 경제적 자립 능력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 부족하여 성인이 된 후에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념식이 아니라, 시대에 맞는 '현대적 성인식'이다. 이 현대적 성인식은 몇 가지 중요한 가치를 담아야 한다. 첫째는 인성 교육이다.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우선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둘째는 예절 교육이다. 부모와 어른에 대한 존중, 사회적 규범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는 경제 교육이다. 돈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 그리고 자선의 의미와 자립심을 체득해야 한다. 넷째는 윤리 교육이다. 책임 있는 언행, 신뢰와 성실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유대인의 성인식은 단순히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스스로 삶의 주체로 서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과 권리를 짊어진다는 '인생의 선언문'이다. 한국 사회 역시 성인식을 단순히 전통 복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청소년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경제적 자립심을 심어주는 교육적 기회로 삼아야 한다. 성인식은 우리 사회가 다음 세대를 성숙한 시민으로 길러내는 중요한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우리의 청소년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고, 우리 사회의 미래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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